by for healing Aug 15. 2024
엄마의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후, 엄마는 빠르게 혼자의 삶에 적응해 가셨다.
원래도 병원 때문에 서울과 지방을 번갈아 다니던 습관이 몸에 배어서 인지,
'지금도 병원에서 아빠가 일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열흘 후에 병원으로 내려가 봐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직 니들 아빠가 죽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열녀 춘향이 났네) 떨어져 살아 버릇해서 그런지 막상 죽었는데도 그거 하나는 좋다.'
그렇게 남편에게 데이고도 뭔 소린지 알 수 없는 사부곡을 읊어대며...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엄마한테 오만 정이 다 떨어졌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우리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엄마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빠를 용서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부부사이의 일은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
아무튼 함께 살자는 오빠의 청을 단칼에 거절하셨다.
애초에 우리 엄마는 누구랑 같이 살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게다가 며느리 하고는 더더구나...
올케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자란 1남 4녀 중 셋째 딸이다. 내가 본 올케의 첫인상은 따뜻하다기보다는 차갑고 이기적인 느낌이었다. 친정도 크게 챙기는 것 같지 않고 어렵고 가난한 환경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 같은...
결혼 전에는 여섯 식구가 작은 집에서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았다고 들었다. 그러다가 오빠를 만나 결혼을 하고, 그런대로 번듯한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였음에도 집이 좁네, 가구를 더 큰 걸로 살 걸 그랬네, 친구들은 이번에 더 큰 평수로 집 장만을 했네 등등... 나로서는' 신혼인데 저 정도면 두 사람이 살기에 꽤 괜찮은 출발이지 않나?'싶은데, 주어진 것에 별 감사가 없는 것 같은 모습에 시누이 입장(?)에서 마음이 좀 편치 않았다. 엄마는 하나뿐인 며느리라고 이것, 저것 그야말로 아낌없이 퍼주는데 시댁에 뭔가를 해오는 걸 보면 아주 옹색하고... 심지어 자기 집에 선물로 들어온 걸 마치 새로 사 온 것 인 양 포장해 오고(오빠가 알게 되어 부부싸움 나는 바람에 들킴)... 그야말로 손이 작아도 작아도 저렇게 작나 싶은 게, 그건 손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라 시댁에 대한 마음의 문제였다.
하여, 결론적으로 엄마는 그런 며느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 역시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절대 (NEVER) 같이 살 수는 없다.
그 이유를 이야기하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의 입장에서 본 견해이다.
*엄마 가라사대~~☆
1. 나는 완벽주의자인데, 딸은 그렇지 않다.
2. 나는 깨끗한 걸 좋아하는데, 딸은 그렇지 않다.
3. 나는 정리정돈이 생활화되었는데, 딸은 그렇지 않다.
4. 나는 모든 것에 계획성이 있는데, 딸은 그렇지 않다
*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찌 됐든 울 엄마 참 안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노인네가 정말!!!!!
말을 듣다 보니 많이 억울하다. 나는 그렇게까지 덜렁거리지도 않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청소를 하고 있으며, 그리고 나만의 계획과 철학이 있으며 정리, 정돈이 생활화되어 있다. 즉, 나만의 질서가 있다는 말이다. 이 모든 게 엄마의 입장에서 평가된 이야기이다. 항상 모든 것은 양쪽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정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감히 내 의견을 다시 이야기하자면, 엄마 마음에 흡족하게 맞춰 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엄마는 집에 TV나 냉장고 수리하시는 분들이 다녀가시고 나면 꼭 거실 청소를 다시 하시곤 했다. 그러면 나는 엄마 뒤를 따라다니며
"엄마, 그거 아저씨들 모욕하는 거야, 저 아저씨들이 무슨 전염병환자야? 더러워서 그래? 왜 그러는 거야, 진짜? 그거 병이야, 엄마~" 하고 진심으로 놀렸다.
그러면 당황해서 손을 내저으면서(참고로 우리 엄마는 교회 권사님이시다)
"얘는 누가 더러워서 그러니? 그냥 낯선 사람들 양말 자국 남는 게 께름칙해서 그러지" 했다.
'그게 병입니다. 권사님~~~'
이모들이나, 교회 손님들이라도 다녀가고 나면 마시고 간 커피잔과 그릇들, 숟가락들 소독해야지, 방마다 청소해야지-성격이 깔끔하고 까다로워서 도우미 아주머니는 부르지도 않음. 한번 불렀었는데 옆에서 엄마가 같이 따라다니며 일하니까 너무 불편해하시길래 내가 그냥 가시라고 했음-
몸살이 날 정도로 일이 많아져서 우리 집엔 손님이 차라리 안 오는 게 엄마를 도와주는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어디 그뿐인가?
쓰고 난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아무리 귀한 손주들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졌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뒤따라 나온다.
"이렇게 정리 안 할 거면 도로 니네 집에 가!"
이게 이게 할미가 사랑하는 손자, 손녀에게 할 소립니까? 네? 권사님!!!!!
그리하여
"아들네도 싫다, 딸네도 싫다, 내가 돈이 없니? 건강이 없니? 혼자 편히 살고 싶다"
라는 엄마의 의견을 존중하여 혼자 살되, 일단은 우리와 같은 아파트 바로 옆동에서 사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날부터 나의 시간표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엄마에게 안부전화하기, 남편 출근하면 모닝커피 마시러 마실 가기, 같이 장 보러 마트 가기, 함께 점심 먹고 수다 떨다가 저녁 식사하기, 집에 와서 쉬다가 자기 전에 취침인사차 전화하기... 무슨 말인고 하니, 잠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같이 있는다는 뜻 ㅎㅎ 이럴 바엔 그냥 같이 사는 게 나을지도ㅎㅎ
그야말로 아이들은 기분 내키는 대로- 엄마, 아빠한테 야단맞으면 '힝' 하고 할머니 집으로 갔다가 할머니한테 한소리 들으면 또 '힝'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두 집살이에 좋아라 하고... 워낙에 할머니를 따르던 아이들로서는 신나기 짝이 없는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그야말로 시트콤 같은 일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