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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사 중

눈 질끈 감고, 침 세 번 꿀꺽 삼키자.

by for healing


큰 아이가 어렸을 때 수영교실에서 첫 수업을 하는데 엄마들은 이층에서 참관하고 있었다. 다른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이크가 켜지며 선생님의 호출 소리가 들렸다.

"○○이 어머님 손들어 보세요!! ○○이 얼굴에 물 묻는 거 싫다고 울어서 오늘 수업 못해요!! 나중에 더 크면 데리고 오세요"

보니까 물이 묻을 때마다 얼굴을 몇 번을 닦는지 저러다 얼굴이 닳아서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또 한 번은, 한글을 아직 모를 때 교회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는데 부족해서 우리 아이를 포함해서 몇 명이 못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미안하다며 다음 주에 주겠다고 했더니 우리 아이가 하는 말이,

"안 주셔도 돼요, 어차피 읽을 줄도 모르는데요, 뭐" ㅎㅎ 이 솔직함... 선생님 생각에 다른 아이들도 못 읽기는 마찬가지인데 우습기도 하고 아이가 별나기도 하다며 전화를 주셨었다.

이제는 어른이 된 그 아이는 옷장 안에 옷을 하얀색부터 검은색 순으로 걸어놓았고, 옷걸이의 꼬불어진 부분이 죄다 안쪽을 향하게 맞춰놓았으며 유난히 냄새에 민감하여 아무도 못 맡는 냄새가 자꾸 난다며 빨래를 몇 번이나 새로 하곤 한다.


둘째 아이는 어떤가?

어렸을 때 바다에 데리고 가면 모래가 발에 묻는다고 대성통곡을 하곤 했고...

초등학교 입학하고 이틀인가 학교에 갔다 오더니

"이제 학교 그만 갈 거야" 하길래

"왜?" 했더니

"유치원에서 배운 거라서 다 아는 거야"

아마 학교라니까 새로운 걸 배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니까 그만 다녀도 되는 줄 알았나 보다.

어른이 된 그 아이도 자기 방안의 모든 소가구와 침구세트를 하얀색으로 맞추겠다며 몇 날 며칠을 발품을 팔아 다녀 기어이 하얀 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하얀 벽에 까만색 스티커로 세계지도를 붙였는데 자기가 역사적, 정치적으로 싫어하는 나라들은 빼고 붙이는... 뭐랄까...

개성들이 넘친다..... 별난 딸내미들....


할머니의 지나치다 싶은 깔끔함과 결벽증은 이처럼 손녀들에게서도 별난 성격과 개성으로 나타났고 그 중간 세대에 끼어있던 나 또한 이들을 향해 뭐라 할 수 없는 특이함을 내보인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걸보고 '4차원' 또는 '튄다'라는 표현을 쓴다고 하던데, 나는 대체로 생각이나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때로는 그런 이야기가 불편해서 내 의견을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쟤가 튀려고 저러나' 할까 봐... 솔직하게 얘기하면 조금 부정적이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아마도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모나거나 반항적이었던 성격이 성인이 되어서도 몸만 커졌지 내적으로는 언제든 드러낼 수 있는 분노의 발톱을 숨기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부분은 엄마나 우리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유별스러운 것과는 약간 색깔이 다른 듯도 하다. 뭐, 그쪽으로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그걸 뭐라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고 아무튼 별나고 다루기 힘든 사람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신앙을 가지고 난 후에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공사 중이다.


그런 성격은 어렸을 때에는 강박증이나 소심한 집착 같은 사소한 버릇으로 표출되곤 했는데,

색연필을 사면 처음 샀을 때와 똑같이 하얀색부터 연노랑, 노랑, 연두, 초록...... 검정까지 그 순서대로 꽂아놓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색연필이 한 개 없어지기 라도 하면 온 교실 바닥을 기어 다니며 찾아다녔다. 남자아이들이 장난으로 순서를 흐트러놓으면 잡아먹을 듯 쫓아가 응징했었다.

(큰 아이가 옷을 색깔별로 맞추어 걸어 놓는 것이 나를 닮았나 싶기도 하다.)

♡바다를 싫어하는 이유가 발을 씻고 나오면서 모래가 발에 묻는 게 싫어서였고...

(작은 아이가 나를 닮아서 깜짝 놀랐음.)

♡사진 찍는 건,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너무너무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이고...

♡낯선 장소, 낯선 사람과의 만남 또한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이고...

♡포장지에 묶인 끈은 될 수 있는 대로 가위로 자르지 않고 끝까지 손으로 풀어야 하며...(신혼 때 남편이 도와준다고 가위로 잘랐다가 나의 도끼눈에 기겁했음)

♡선물 받은 값비싼 그릇들과, 지금은 흔하지만 그때는 귀했던 누군가에게 35년 전에 받았던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빨대를 아직도 보관 중(처음 본 예쁜 빨대여서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있다가. 지금은 너덜너덜해져서 사용불가)이며....

책가방에 책을 넣을 때에도 양쪽 책두께가 안 맞으면 그걸 맞추느라 지각을 할 판이었고 옷소매나 양말을 접었을 때 양쪽이 똑같지 않으면 옷핀으로 꽂고 다녔으며...

꽃과 보석류를 안 좋아해서 연애할 때 단도직입적으로 남편에게 꽃이나 보석류 선물금지령을 내리고 대신 단돈 만원이라도 좋으니 현금으로 줄 것을 요구하기도(남편이 엄청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지갑에 지폐를 넣을 때에 천 원, 오천 원, 만 원, 오만 원권 순서는 물론, 인물의 머리가 같은 방향에 맞춰지게 넣고 다닌다. 장을 보고 거스름돈을 받아 지갑에 넣을 때에도 그 바쁜 와중에 걸으면서 그걸 맞추느라 넘어질 뻔 한 경험 다수...

그뿐인가!

♡욕실 타월도 접었을 때 둥글게 말린 부분이 앞으로 보이게 진열해야 한다거나, 두루마리휴지가 수납장에 항상 개수가 맞춰 채워져 있어야 한다거나(한 개 사용하면 바로 채워야 함)...


이 이야기를 들은 교회 권사님 한분이 걱정스럽게

" 그거 일종의 '강박증'이야"라고 말해 주길래

"저도 알아요, 어릴 때부터 이랬어요. 근데 별로 불편하지 않아요" 하고 넘어갔다.

이제 와서 어쩌겠어~

유난히 깔끔 떨고 정리 잘하는 우리 엄마도 이런 나를 보고

"야~너 안 거두고 대충 사는 줄 알았더니, 너두 참 가지가지한다, "

하며 코웃음을 쳤다. 우 씨... 뭐래?

이게 다 엄마 닮아서 그러는 건데!

그리고 바로 생각했다. 현대를 살면서 강박증이나 우울증에 안 걸리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예민하다는 게 생각보다 참 밉상이다. 더 나아가서 참 꼴사납게 보인다. 한마디로 "그래 너 잘났다, 여러 가지 한다"인데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지려나 희망을 가져보지만 우리 엄마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우리 세 모녀는 이제는 더 이상 나열하기에도 민망한 예민함과 까칠함을 가지고 서로를 향해

"너는 왜 렇게 까칠하니? 너 그렇게 살면 주위 사람들이 다 싫어해, 피곤해하고~"

남 얘기 하듯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해본다.

"우리, 거슬리는 거 있을 때마다 말하지 말고, 눈 질끈 감고, 침을 세 번만 꿀꺽 삼켜보자, 우리.... 알았지? 이러다 눈알이 빠지고 입안에 침이 다 마르는 한이 있어도 한번 지켜보자!!! 알았지?"


ㅎㅎ못 지킬 걸 알기에 중간중간 '우리'라는 단어에 얼마나 힘을 주어 말을 했는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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