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or healing Aug 8. 2024
하긴 그렇다.
나는 참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 대단한 애국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TV에서 애국가가 나오면 그렇게 눈물이 나오곤 했다. 그러면 옆에서 남편이 깜짝 놀라 물었다.
" 왜 그래?"
"그냥"
"그냥, 왜?"
"그냥, 우리나라가 잘 됐으면 해서..."
나는 민망했고, 남편은 어이없어했다.
설거지하고 돌아서다 TV화면 속에서 누군가가 울고 있으면 영문도 모른 채 눈물이 나곤 했다. 그러면 남편이 장난기 가득 물었다.
"당신 무슨 내용인지 알고 우는 거야?"
"아니"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우냐?"
"몰라, 그냥 저 사람이 우니까"
그 후부터는 TV에 슬픈 장면이 나오면 먼저 휴지부터 건네주는 게 남편의 할 일이 되었다.
때로는 내가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의 경기를 보다가 우리 타자들이 안타를 너무 잘 치면 신나서 막 좋아하다가도 상대투수가 화면에 클로즈업되면 그 투수가 너무 짠해서 눈물을 글썽거리곤 했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웃고 있다가 눈물을 흘리기까지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는 놀라운 기록적인 감정의 흐름을, 특히 눈물을 흘리는 탁월한 재주를 보며, 처음에는 마음이 너무 착해서 그런 줄 알았다던 남편도 이쯤 되면 정이 많고 착한 게 아니라 좀 모자라서 그런 거 아닌가 하면서 '그래, 당신은 약간 모자라는 거야'라고 웃으며 결론을 내린 적도 있을 정도다.
문상객이 뜸해진 새벽녘, 아빠의 영정 사진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그간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어릴 때 친구들이 "니네 아빠 의사라며? 좋겠다"라는 말 을 해줘서 항상 자랑스러웠던 일-
아빠가 군위관이었기에 장교복에 선글라스 끼고 파이프담배 입에 물고 지프에 태워 ' ○○해군병원' 구경시켜 줄 때 폼 잡으며 병원 구석구석 뛰어다니며 병원 식구들에게 사랑받았었던 일-
그 당시에 돈 많은 애들이나 다닐 수 있었다던 사립초등학교에 다니며 통학버스 타고 교복 입고 다녔었던 일-
"우리 딸, 얼굴에 점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다음에 의술 좋아지면 아빠가 꼭 고쳐줄게. 너 놀리는 것들? 얼굴에 점이 없으면 뭐 해? 우리 딸 발바닥도 못 따라오는 것들인데, 우리 딸이 백 배나 예뻐"라고 말해 줘서 진짜 내가 예쁜 줄 알고 사춘기 전까지 착각하며 잘난척하며 살았던 일-
"우리 딸, 얼마 필요해?"라며 용돈 팍팍 줘서 등록금걱정도 안 하고 아르바이트 한번 안 하고 대학생활을 여유롭게 보냈던 일-
그러고 보니 다 돈, 돈, 돈이었네. 부자아빠라서 누릴 수 있었던 일. 하기야 뭐 그것도 없는 거 보다야 낫지.
그건 참 기분 좋고 행복한 기억이었다.
그런데 나쁜 기억, 상처라는 게, 그게 또 그렇다.
그게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지거나 잊히는 게 아니더라고...
남편말처럼 세월이 지나서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용서해 드릴걸...'
가슴을 쥐어뜯으며 땅을 뒹굴며 후회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일이고...
처음으로 아빠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과 가정을 지키겠다며 아빠 옆을 지키던 어린 나의 비장했던 각오, 밤중에 내가 받았던 술 취해 꽐라 된 아빠의 불륜녀의 수많은 전화, 엄마의 눈물, 오빠의 분노, 반복되는 아빠의 외도, 나의 결혼식에도 다녀갔다는 어디까지 참아야 할지 몰라 부들부들 떨던 불륜녀의 대담한 도발, 아빠가 서울에 올라와 온 식구가 위태롭게 저녁을 먹던 날, 자신이 떳떳지 못했기에 오히려 자격지심에 지레, 아버지를 무시한다며 오빠를 향해 주먹을 날리던 뻔뻔함과 말리던 엄마에게 자식 교육을 이따위로 시켰냐며 미친놈처럼 날뛰며 밥상을 엎고, 오빠를 때리지 말라고 매달리던 내 눈물도 안중에 없이 밀치던 아빠의 거친 손길... 난장판이 되어버린 저녁상... 마침 그날은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나의 소풍 전날.. 안 가겠다는 나를 달래서 소풍 보내는 엄마와 나의 두 눈은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 그때 나의 고등학교3학년 소풍 단체사진은 지금 보아도 가관이다.
........ 또 무슨 일이 있었지?
이 모든 아픔이 어떻게 하면 무뎌질까?
서로가 좋은 아빠와 딸 사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너무 아프다.
아빠의 마지막 가는 길, 그 사진 앞에서
'그동안 고생했어, 우리 아빠로 있어줘서 고마웠어'
라는 인사 한마디 할 수 없어서 가슴이 시리다.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하다.
저 쪽에서 남편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참으로 힘든 장례식이다.
빨리 이 장례식이 끝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