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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가 아닌 good-night

good-night, 엄마...

by for healing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날, 이제는 대학생이 된 두 딸과 남편, 그리고 나는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 긴 공백을 깨고 남편이 나를 안아주길래 무슨 위로의 말을 해주려나 했는데 불쑥

"여보, 나 너무 힘들다, 나 좀 위로해 주라"

순간 잘못 들었는 줄 알았다. 당신 엄마가 아니고 내 엄마가 죽은 거야, 지금!! 뭐라는 거야?

"당신 너무 슬픈 거 아는데, 그래, 당신이 제일 힘들지... 근데 나는... 나는... 우리 엄마하고 산 날보다 장모님하고 산 날이 더 길잖아... 염치없는데 나... 너무 슬프고, 너무 힘들어..."


둘이 붙들고 한참 울었다. 말이라도 참 고맙다. 정말로 장모님을 친엄마처럼 좋아하고 따르던 사람이다. 부모님이 새로 생겼다고, 이제는 자기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는 부모님이 생겼다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던 사람이다. 아버지를 여섯 살, 어머니를 스물두 살에 여읜, 부모 없이 살았던 외로움과 서러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어서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또 눈물이 났다. 아이들까지 들어와 서로 부둥켜안고 위로하다가 울다가 하기를 반복하다가 부스스 일어나 누구에게랄 것 없이 중얼거렸다.


'괜찮아, 나는 엄마 살아계실 때 진짜 잘해드렸어.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잘해드렸고 좋은 딸이었기 때문에 후회 없어. 불효자들이나 '살아계실 때 잘할 걸'후회하면서 운다잖아? 나는 엄마랑 사이도 좋았고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최고의 베프였어, 그러니까 이제 안 울 거야'


"넌 진짜 좋은 딸이야. 지금까지도 최고의 딸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이렇게 고생만 시켜서 어떡하니? 엄마한테 이렇게 잘하는 딸이 또 있을까? 엄만 참 복도 많다. 너 같은 딸을 둬서... 딸이 하나 더 있었으면 너도 외롭지 않았을 텐데, 오빠가 너무 무뚝뚝해서... 그래도 이제 니 딸들이 다 커서 친구처럼 지내는 거 보니까 너무 좋다. 꼭 너랑 나 보는 것 같아. 엄마가 너무너무 고맙고, 고생시켜서 미안하고 사랑해, 우리 딸~"

엄마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거의 매일같이 내게 해주었던 말이


이모들도 병문안 왔다가 나를 보고 늘 하는 말이

"얘~큰언니가 입이 닳도록 니 칭찬이다. 그렇게 잘할 수가 없다고~너 아주 생긴 것과 달리, 효녀 났다 ㅎㅎ"

물론 수고한다고 칭찬하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그래, 난 엄마한테 잘했어. 좋은 딸이었어. 그건 엄마도 인정했잖아. 나중에 천국에서 엄마 만나면 다시 확인해 볼 거야. 엄마, 나 그만하면 꽤 괜찮은 딸이었지? 이제 정말 그만 울 거야, 아우~엄마 때문에 너무 울었더니 머리가 다 띵하네~'

스스로 자꾸만 되뇐다.


멈출 것 같지 않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바로 엄마 집으로 가서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엄마의 빈집에 앉아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두 다리를 뻗고 소리 내어 울었다.

이제는 겨울에 양말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닌다고 염려해 줄 사람도,

옷 좀 따뜻하게 입어라, 감기 걸린다고 겉옷 여며줄 사람도,

맛있는 반찬 해놓았다고 가져가라고 불러줄 사람도,

위도 안 좋은데 커피 좀 줄이라고 잔소리해 줄 사람도,

운전 좀 살살해라, 여자애가 왜 이렇게 터프하냐며 말려줄 사람도 없다.

사진정리, 그릇처분, 엄마의 옷가지, 그 많던 퍼즐상자...

독수리 다섯 자매가운데 엄마를 제외한 이모들이 하루 종일 짐정리를 도와주셨다.

'고인의 짐정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목록에 들어갈, 슬프고 아픈 작업이었다.

그리고는 엄마가 살던 아파트를 비워주었다.


매일 저녁, 엄마 아파트 앞 놀이터에 앉아 불이 꺼진 빈 창가를 올려다보기도 하고,

엄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보기도 하고,

카톡을 보내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볼 때에는 '아주 신파를 찍는구나' 하며 흉봤던 일들...

아~이런 거였구나!

빈자리, 공허함, 엄마의 부재...

어렸을 때에는

'엄마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야'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그럴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지금은 그저

'엄마 없이 살 수 있을까?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이 엄마와 함께였는데~아직 엄마랑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이 남았는데~

지난 1월에 남편이 나에게 엄마 모시고 두 딸 데리고 여자들끼리 좋은 시간 보내고 오라고 해서 동유럽 여행 갔을 때, 엄마가 너무 좋아하면서 우리 다음에도 이렇게 또 가자고 했었는데~ 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먹먹하고 아린 슬픔만 남아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어김없이 엄마의 불 꺼진 창을 보려고 놀이터에 나갔는데, 어! 그 집에 불이 켜져 있다.

깜짝 놀라서 올려다보다가 '아아~오늘이구나, 누가 이사 들어온댔는데' 했다.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엄마의 핸드폰도 더 이상 걸리지 않았다.

뭔가 뜨겁고 뭉클한 것이 목구멍으로 내려갔다.


'끈 떨어진 연'

바로 그 심정이었다.

남편도 있고 딸들도 있지만 기댈 큰 산이 없어졌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잠잔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이 땅에서 하늘나라로 이사 간다.

그래서 'good-bye'가 아니라 'good-night '으로 받아들이라고 하셨다.

오늘 나는 언젠가 다시 만날 엄마에게 인사를 한다.

"우리 또다시 엄마와 딸로 만나자. 그때는 더 재미있게 살아보자구...

Good night,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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