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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1일에 새로 쓰는 유서

남기고 싶은 글...

by for healing

'유서'

나는 자살하는 사람만 쓰는 건 줄 알았다.(무식 ㅎㅎ).

그래서인지 뭔가 어감이 좋지 않았다.


엄마는 해마다 새해 첫날이 되면 새롭게 '유서'를 고쳐 쓰셨다.

예를 들어, 2000년 새해 1월 1일이 되면

[지난 1999년을 건강하고 평안하게 살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맞이하는 2000년 한 해도 주님께 맡겨드립니다.]

이렇게 시작되어 그 뒤에는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을 쓰셨다.


살아계실 때, 나에게 늘 하던 말씀이

"혹시 엄마가 말을 못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죽게 되면, 안방 장식장 서랍 안에 봉투 하나 있거든? 그거 열어봐. 그리고 통장하고 도장은 □□□에 있고, 비밀번호는 엄마 음력생일이다. 꼭 기억해 둬"


엄마를 잃는 슬픔은 나이와 상관이 없다.

나는 나이 50이 되어서 엄마를 보내드렸다. 물론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사람들도 많지만

그 슬픔은 아마 내가 70살에 엄마를 잃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호상'이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장례는 엄마가 권사님이었고 평상시에 원했던 대로 기독교식으로 치르기로 했다.

" 장지는, 아무리 두 분 사이가 그랬었어도 아버지 옆으로 모시는 게 어떻겠니? 아버지 옆에 준비해 놓은 자리도 있고 하니까"

오빠 의견에 나도 그러자고 해서, 아빠 병원이 있던, 지방 선산에 연락해 일을 맡겼다.


그러다가 손님이 뜸한 저녁시간에, 갑자기 엄마의 '유서'가 생각났다.

"오빠!! 엄마가 죽은 뒤에 보라고 써 둔 편지가 있다고 했었는데... 나한테 얘기했었는데... 꼭 엄마 죽은 뒤에 보라고 했었는데!!..."

"뭐? 그 그 그걸 왜 이제 말해? 그 그 그거 어디다 두셨는지 알아?"

평상시에 말도 없고 놀랄 일도 전혀 없는 오빠가 말을 다 더듬었다.

"알아, 어디다 둔다고 나한테 말해줬어..."

"빨리 가서 가져와!!!"

상복에 카디건만 걸치고 두 딸을 데리고 엄마 집으로 차를 몰고 갔다.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세 모녀는 엄마 냄새와 가지런히 정리된 엄마의 물건들을 보며 엉엉 울면서 그 봉투를 찾아들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왔다.

"그럼 너도 이거 처음 읽는 거야?" 오빠의 물음에

"어~엄마가 꼭 엄마 죽으면 오빠랑 같이 보랬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 살아 있을 때 몰래 읽을 기회도 많았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먼저 봐도 됐었는데... 난 참 순진한 듯...


'남기고 싶은 글들'

아~겉봉투에 쓰인 글귀부터 너무 슬프다.

오빠와 나는 소리 죽여 울며 엄마의 글을 읽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1. 이 날까지 살게 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2. ○○, ○○너희 두 남매의 엄마여서, 그리고 우리 네 강아지(손주 네 명의 이름)들의 할머니로 살 수 있어서 많이 행복했다.

3. 엄마가 죽거든 최소한의 경비로 화장해 다오.

4. 내가 섬기던 교회에 {일정금액을 쓰셨다} 헌금해 다오.

5. 네 강아지들에게 {일정 금액} 나누어 주고, 나머지는 얼마 안 되지만 두 남매 똑같이 나누어가져라.

6. 아들, 교회에 나갔으면 좋겠구나. 청년 때의 믿음이 회복되길 기도한다.

7. 다시 한번 너희들과 한 가족으로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를 '엄마'로, 그리고 '할머니'로 받아준 너희 모두... 고맙고 사랑한다. 천국에서도 늘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마, 안녕...


이 노인네가 아주 작정하고 우리를 울릴 생각이었다.

손주들이 오열하며 할머니의 편지를 읽는 것과 동시에 오빠와 나는

"어?!!! 화장해 달래, 엄마가!!!"

그때부터 그야말로 난리법석~~

아빠 옆으로 가기로 한 매장일정을 취소하고 부랴부랴 가까운 화장장을 급하게 수소문하여 예약했다.

그렇게 엄마는 불륜과 배신의 아이콘인 남편곁으로 가지 않는 통쾌한 복수를 날리고

마이웨이, 혼자의 길을 선택했다. 멋지다~울 엄마!!!


엄마는 우리에게 많은 걸 남겨주고 가셨다.

영정사진 밑, 단에는 매일 아침 읽으시던 손때 묻은 성경책과 엄마의 삶이 담긴, 딸과 사위가 내드린 책, 그리고 성경필사한 노트 8권이 놓였다.

많은 문상객들이 엄마의 지나간 삶과 장례모습을 보고

"장권사님의 삶은 여느 노인들과 달리 참 배울 바 많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다 가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

이라는 칭찬과 함께 엄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셨고, 특히 새해 첫날이면 어김없이 쓰셨던 그 유서이야기를 듣고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며 당신들도 죽기 전에 꼭 미리 써 놓겠다고 하셨다.


그 생각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감사했던 일, 미안했던 일, 아이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말이나, 사랑한다는 말, 혹은 살림의 tip들, 그동안 차마 말로 하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들...

나의 마지막이 언제가 될지 모르기에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때를 대비해서 '남기고 싶은 글'을 미리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는 도대체 언제부터 그걸 쓰기 시작했을까?

60세되는 새해? 아니면 70세? 벌써 쓰기 시작했어야 하나?


이거 봐!! 엄마가 안 계시니까 금방 버퍼링 걸리잖아~

어쩌지? 물어볼 데가 없네... 살아계실 때 그걸 못 물어봤어~이렇게 엄마가 빨리 떠날지 몰랐잖아...


모르겠다, 지금이 10월이니까 돌아오는 새해부터 쓰자.

엉? 그러다 그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오만가지 생각~이렇게 생각이 많아서야~


아니다! 그래, 지금이야! 생각난 김에 오늘부터 쓰는 거야.

미리 써둔다고 나쁠 거 없으니까.....


노트북보다는 손 편지가 좋겠다.

왠지 더 정감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아, 그런데 글씨가 너무 좀~~ 그렇다.

할 수없지, 엄마 글씨 못 쓰는 거야 딸들이 다 아는 거니까.

보면서 마지막으로 울다가, 웃으면서 흉보겠지,

"근데 우리 엄마 글씨 너무 못 쓴다, 그치?"


아~그런데 어쩌지?

막상 쓰려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서 펜만 빙그르르 돌린다.

정확히는 막막하다기보다 먹먹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잖아도 눈물 많은 사람이... 시작부터 너무 슬프다... 딸들과 남편에게 남길 마지막 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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