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고 웃게 하는 너는...
내가 네 에미니라...
by for healing Sep 12. 2024
우리는 일상으로의 회복을 서둘렀다.
큰 딸은 작곡을 전공했다. 중학교 때부터 음악으로 진로를 정하고 나서는 한 번도 '지겹다, 힘들다' 소리 없이 꾸준히 준비했다. 무언가 말을 하기 전에 결정되고 나서 부모에게 알리는 성격이다. 때로는 그게 섭섭하기도 했는데 제 딴에는 먼저 알렸다가 잘 안되면 엄마, 아빠가 실망할까 봐 그런다는 게 이유였다.
"엄마, 아빠! 나 뭐 중요한 결정할 거 있는데 기도해 주세요"
이게 다였다. 그 한 가지 예가, 한국에서 음대를 다니던 중에 미국에 있는 음대에 지원해서 합격하고 심지어 장학금까지 받고 가게 되었다며 어느 해, 성탄절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쁜 소식이 있다며 알려주던 그런 딸이다.
기독동아리에서 단기선교로 여러 차례 국내, 해외로 봉사를 다녀오는 등, 나이에 비해 훨씬 일찍 철이 든,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든든한 큰 딸... 맡은 일에 늘 최선을 다하는 아이...
대부분의 코리안 장녀가 그렇듯 책임감 강하고 모든 일을 계획성 있게 해 나가는, 요즘 아이들 말로 완전 'T'라고 하나? 엄마의 스케줄까지 관리해 주고, 너무 철저해서 때로는 엄마인 나도 어렵게 느껴지는ㅎㅎ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도...
그런가 하면 둘째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온몸이 다 알게 하는 스타일이다.
누가 봐도 막내 티가 팍팍 나는... 무슨 일을 했다 하면 온 집안이 요란하다.
우당탕탕.. 와르르... 쨍그랑...
그래서 우리는 그 아이가 뭘 좀 할라치면 세 식구가 합창을 한다.
"넌 좀 가~~~~~만히 있어!!!!"
사전에 무언가를 계획하면 온 집안이 떠들썩하다.
"나 내일부터 이거 할 거야, 저거 할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알아 "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심지어 아는 것도 많다. 본인 표현대로 '얕고 넓은 지식'의 소유자이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어렸을 때 너무 많이 아파서
'부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했던 아이였지만 지금은 똑똑하고 말 잘하고 어디에 내놓아도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 성격으로, 오죽하면 즈이 아빠가
"너는 주둥이만 봐서는 하버드를 가야 되는데... 쯧"
라고 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소질이 있는 듯하여 미술을 전공하려고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열심히 해오던 중, 어느 날 학부모 상담이 있어 학교에서 선생님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기분 좋게 돌아온 날, 아빠가 어릴 때부터 두 딸에게 해 주었던
"평생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살아라"
라는 말을 인용하며
"아버님, 어머님~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이 길은 제 길이 아닌 것 같사옵니다. 저는 성격상 한 자리에 궁둥이를 몇 시간씩 붙이고 작업하는 일이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정적인 일은 소인과 맞지 않는 듯하옵니다. 하여 오늘부로 소인은 미술을 그만두겠사옵니다."
라며 내내 잘해오던 미술을 입시 1년을 남겨놓고 때려치워 우리 부부를 기함시킨 인물이다.
자식 고집 못 꺾는다고 결국 1년 공부하고 국문학과에 진학했지만 어학에 관심이 많아 영어며 스페인어며 계속 공부하러 바쁘게 다녔다. 첫째와 달리 모험심이 뛰어나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완전 감성 충만, 모르는 사람과 단 몇 분 만에 친해지는 놀라운 친화력 ENFP... 어디서 저런 게 나왔을꼬!!
분명 내 배로 낳은 자식인데 둘이 어쩌면 저리도 다른지...
엄마가 살아계실 때에 하던 말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부모 떠나 외국 나가서 공부하냐? 영어, 그까짓 거 좀 못하면 어때? 한국사람이 한국말만 잘하면 되지. 그냥 한국에서 공부해도 다 못한다. 꼭 공부 못하는 것들이 외국 나가서 돈지랄하는 거지, 뭐~더군다나 계집애들이 위험하게 어딜 나가겠다고 그래?"
손녀들과 떨어지기 싫어하던 할머니로 인해 미뤄두었던 유학을 두 딸들이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어쩌다 보니 거의 반년에서 일 년 간격으로 큰 아이는 미국으로, 작은 아이는 스페인으로 아주 글로벌하게 이산가족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그잖아도 눈물 많은 나는, 아이들의 빈 방을 들여다보며 울 일밖에 없었는데...
내가 섭섭하다고 아이들 공부를 막을 수도 없고...
물론 그동안 어학연수차 짧게 나간 경험이 있어 떨어져 지내보긴 했지만...
큰 아이는 영상 통화할 때면 빈 말이라도
"엄마 보고 싶어, 아빠는 뭐 해? 공부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
이런 말이라도 하는데,
작은 아이는, 저것이 막내라서 엄마 떨어져 어떻게 지내나~ 짠한 마음에 전화 걸기 전부터 목이 메어서 내 딴에는 감정 다스리고 화면을 보면 이게 무슨!! 샤워 타월을 머리에 쓰고 다리를 꼬고 침대에 발라당 누워서 과자를 와그작와그작 먹으며 마치 거기가 오래전부터 살던 자기 집인 양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엄마!!(웃음 활짝) 여기 진짜 ○좋아, 천국이 따로 없어~~"
그걸 보는데 이건 진심으로(지금 생각해도 섭섭해서 눈물이 난다) 아니, 장난이 아니고 정말로 화가 나다 못해 섭섭함과 왠지 모를 배신감에 눈물이 나면서(나는 왜 화가 나면 눈물이 날까?) 나도 모르게 말소리가 뾰족해져서 어른답지 못하게,
"어~그래~살판났다. 끊어!!!"
뚝!!!
나중에 그때의 서운함을 큰 아이에게 이야기했더니 바로 동생에게 전화해서 엄마가 많이 섭섭해하더라고 왜 전화를 그렇게 받았냐고 한마디 했단다. 그랬더니 둘째가 하는 말이, 사실은 자기도 엄마와 통화하고 난 후에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작은 아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엎드려 아예 통곡(ㅋㅋ)을 했다.
마침 눈치 없는 남편이 나를 찾다가 방문을 열며
"여보! 밥 먹....ㅈ....ㅏ...."
하다가 통곡하는 나를 보고는 슬며시 다시 문을 닫고 나간다.
나는 안다.
나는 앞으로도 별일 아닌 일로 혼자 오해하고 섭섭해하면서 입을 비죽거리며 울 것이고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우리 엄마 전에는 농담도 잘 받아들이고, 어지간해서는 안 울더니 왜 저래?' 하며 답답해하겠지...
그리고 그런 일은 계속 반복되겠지...
내가 우리 엄마와 그랬던 것처럼...
그래, 이게 엄마와 딸의 사는 이야기지...
뭐, 별거 있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