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or healing Sep 16. 2024
"아버님! 조금만 더 웃어보세요~그렇죠!"
"어머님! 고개 조금 오른쪽으로~ 너무 돌리셨어요, 네, 됐어요"
"어머님! 좀 웃으세요, 너무 표정이 굳으셨어요. 아니 눈만 웃지 마시고요~"
"자! 이제 찍습니다~아! 아버님! 또 안 웃으신다~ 따님들은 잘하시는데..."
딸들이 유학 가기 전에 가족사진이라는 걸 찍어보자기에 사진 찍는 걸 누구보다 싫어하는 나였지만 아이들이 외국 나갈 때 가지고 가고 싶다는 말에 설득당하여 찍기로 하였다. 이 사람 자세를 바로해 주면 다른 사람이 삐딱해져 있고, 이 사람 표정을 바로 잡으면 저 사람이 굳어 있고...
사진관을 나오면서 어찌나 할 말이 많던지...
'그러게 평상시에 좀 웃어 버릇했으면 좋았을걸,
우리 식구 사진 찍어주기 힘들었겠다, 얼굴에 쥐 날 뻔했네, 사진기사 그거 못할 직업이더라, 아빠는 근육이 아예 굳었더라, 엄마는 웃으라는데 왜 웃지를 않아? 언니는 어쩜 그렇게 눈웃음을 치냐?막내는 아주 웃음이 옵션이다 집에서 그렇게 좀 웃어보지, 이거 힘들어서 어디 다시 찍겠디?'
몇 주 후에 찾아온 사진을 보고는 모두가 다 뒤로 넘어갔다.
세상에 그렇게 인자하고 온유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다 품어줄 것 같은 부모가 우리 부부라니!
세상에 그렇게 천진난만하고 티 없이 순수한 눈망울과 천사의 미소를 가진 아이들이 우리 딸들이라니!
우리 모두 함께 외쳐!!
"누구냐, 이 낯선 가족은???ㅎㅎㅎㅎ"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낯선 가족사진을 품고 아이들은 각자의 공부를 위해 떠났다.
뭐라 뭐라 해도 유학생활중에 그 사진을 본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희 집은 유전자가 하나야? 네 식구가 똑같이 생겼어!! 붙여넣기한 거 같아 ㅎㅎ"
였단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거실 벽에 걸려있는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때 저런 표정을 어떻게 지었지?ㅎㅎ'싶다.
갱년기가 왔는지 마음이 허해지고 괜스레 우울해져 눈물이 많아지는 요즈음이다.
딸아이들이 없는 틈을 타, 스트레스도 풀 겸해서 숫기 없는 이 성격으로 큰 용기를 내 '드럼'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조금 쳐왔던 게 도움이 되었는지 박자감이 좋다며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익힌다고 선생님이 칭찬해 주셔서 모처럼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았다. 역시 칭찬은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을 업시킨다. 아이들이나 남편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못 받을 때면 대충 마트에 갔다 왔다고 얼버무렸다.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막말로 카바레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왠지 나만의 비밀이 생긴 것 같아 스릴 넘치고 신이 났다. 나중에 큰 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머리를 휘날리며 드럼스틱을 돌려가며 멋지게 연주하는 꿈을 꾸며...
그런데 삼 개월 좀 넘게 배워서 어느 정도 쉬운 곡에 맞춰서 완성도 있는 음악이 나오려 할 즈음,
선생님이 우물 안 개구리요, 남 앞에 나서는 걸 무지무지 싫어하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
"다음 달에 ○○축제에 나갑시다. 우리 학원에서 기타하고 드럼 하고 색소폰 하고..."
그다음에 뭐라 뭐라 하는데... 청천벽력!!!
나는 알았다.
이제 내가 이 학원을 그만 다녀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일단 처음에는 아직 그럴 실력이 안된다고 사양했지만 다 고만고만한 실력이라며 이런 무대에 자꾸 나가봐야 실력이 는다며 아직 시간 많으니까 그동안 열심히 연습하면 된다며 선생님도 뜻을 굽히지 않기에 ㅎㅎ선생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축제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아마 그게 부담스러워서라는 걸 아셨을 듯) 그다음 주에 바로 짐을 쌌다.ㅠㅠ
나의 일탈, 나의 유일했던 취미생활은 그렇게 소심한 나의 성격으로 인해 막을 내렸다.
후에 전화로 이 이야기를 들은 딸들은 한심하다는 듯이
"그걸 왜 안 나갔어? 얼마나 좋은 기회야? 엄마도 집에만 있지 말고 그런 데에 자꾸 나가봐야 돼. 배운 거 써먹고, 드럼 치면서 스트레스 날리고, 얼마나 멋있어? 엄마 나이에 그렇게 드럼 치는 게? 아니~이런 얘기는 보통 엄마들이 자식한테 해주는 말 아니야? 얘들아 넓은 세상을 봐라, 견문을 넓혀라, 많은 걸 경험해 봐라, 이러면서... 진짜 못났어!!!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엄마, 친구도 별로 없는데 같이 연주하면서 친구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특히 남자친구, 하이고 아까 버라, 똑똑한 거 같은데 하여간 좀 마이 모자라요, 우리 엄마가, 모지리여사님! 낄낄"
숨도 쉬지 않고 한 번에 내뱉는다.
즈이들이 더 안타까운가 보다. 아주 엄마 놀리기에 신이 났다.
그러게~
듣고 보니 그렇네~
나는 왜 이렇게 못났다니~~~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나는 모자라는 게 확실하다.
모지리여사... 또 울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