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or healing Sep 23. 2024
아이들이 공부를 위해 외국으로 나가고 남편과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리 대화가 잘되는 부녀관계는 아니었다.ㅎㅎ
남편이 들으면 섭섭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70% 정도는 남편 쪽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좀 애매한 게, 요즘 젊은 세대가 보면 '무슨 저런 왕보수 아빠가 있어?' 할 수도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남편이기 때문이고, 이건 그냥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라고 슬쩍 떠넘겨보면 어떨까 싶다. 물론 개중에는 많이 개방되고 신세대 사고방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더 나아가 그들의 입장을 100% 이해해 주는 부모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남편과 나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먼저 이야기했듯이 남편은 외롭게 살았던 사람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다 보니 여자형제들 사이에서 외아들로 자라면서 정서적으로는 외롭고, 경제적으로는 어렵게 공부를 마쳤다. 한 학기를 공부하고 휴학하고 그 사이에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며 돈을 모아 다음 학기를 공부하는 식으로...
그렇게 살다 보니 일찍 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중한 꿈도 다른 사람들보다 컸을 터이다.
우리와는 달리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라고, 처음 우리 부모님께 소개했을 때 의외로 부모님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며 사람만 성실하면 좋다고, 아들 하나 더 생긴 셈 친다며 좋아하셨고 남편은 첫 만남에서 OK를 받았다.
남편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여 ㅎㅎ 우리의 연애코스는 언제나 군밤 한 봉지를 사들고, 눈에 띄는 아무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기였다.
버스 제일 뒷좌석에 앉아 목적지 없이(아니지, 목적지는 무조건 버스종점이지) 계속 타고 달리는 게 그때는 너무 좋았다. 기분 내키면 돈을 조금 더 써서 공항버스를 타고, 보내는 사람 없고, 맞이할 사람 없는'공항놀이' 기분을 내기도 했다.
월급을 받았으니 한턱내겠다며 고급 레스토랑에 가자고 하면 나는 만두랑 라면을 제일 좋아한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함박스테이크를 제일 좋아한다. 요즘도 남편은 심심하면 농담을 한다.
"옛날 남자 친구들하고는 좋은 레스토랑에서 팝송 들으며 우아하고 고상하게 칼질하면서 함박스테이크 썰었을 텐데 나같이 가난한 사람 만나서 늘 간장에 만두 찍어먹어서 억울했겠다. 모지리여사~"
이런 눈물 나는 연애 끝에 결혼했고 두 딸이 태어났다.
여기서 문제가 조금씩 발생하기 시작하는데ㅎㅎ
이렇게 자상한 남편이 딸들에게는 아내에게 하는 것만큼 살갑고 너그럽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딸들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그 흔한 표현으로 대신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예뻐하는데... 그걸 옆에서 보는 나는 너무나 알겠는데, 그 표현이 너~~~ 무 서툴러서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전혀 그 사랑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건 비단 우리 집뿐 아니라 한국의 우리 나잇대의 아버지들 대부분의 문제라고는 하지만 남편은 아버지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셔서( 본인 말에 의하면 아버지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단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특히, 칭찬은 생략하고 잘못된 것만 지적한다든가,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바라본다던가, 걱정한다고 하는 말도 무뚝뚝하게 툭툭 내뱉고,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속상하다는 표현대신 '그러게 아빠가 조심하랬잖아' 라며 나무라 듯하고...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니 딸들은 점점 아빠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가고...
남편은 보수적인 사람이다.
우리 집 가훈은 ' ~다운 사람이 되자'이다.
어른다운 사람, 아이다운 사람, 교사다운, 학생다운, 아빠다운...
그러니 학생들이 머리를 염색한다거나, 교복치마를 짧게 줄인다거나 귀를 뚫는다거나, 이런 게 용납될 리가 없다, 그에게는...
짧은 치마, 터질 것 같은 교복 블라우스, 예쁜 귀걸이, 바닥을 쓸고 다니는 똥바지, 빨갛게 물들인 머리, 친구들이 다 하고 다니는 그런 게 하고 싶다, 우리 딸들은...
팽팽한 기싸움, 절대 물러서지 않는 부녀간의 의견대립, 세대 간의 갈등...
솔직히 나는... 남편도 이해가 되고 딸들도 이해가 된다.
물론 학생이 그러고 다니는 게 내 눈에도 예쁠 리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친구들 다 하고 다니는데 한번 해보고 싶겠지' 싶기도 하다. 딸들은 마음을 몰라주고 야단만 치는 아빠 때문에 늘 속상하다. 마음의 상처가 크다.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 당신이 눈 딱 감고 한 번만 참아봐, 우리 애들이 어떻게 하나 한번 보자~친구들 다 하는데 얼마나 하고 싶겠어? 말리면 더 한다니까, 요즘애들은? 옛날에 우리도 그랬잖아? 어른들이 하지 말라면 괜히 더해보고 싶었잖아? 우리 옛날을 생각해 봐"
" 저게 꼬락서니가 뭐냐? 학생이 학생다워야지!! 아우~난 죽으면 죽었지 저런 꼴은 못 봐!!!"
"못 보면? 못 보면 어쩔 건데? 죽여? 당신 맘에 안 든다고 딸을 죽여? 막말로 당신은 옛날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당신 부모님 맘에 들게 하고 다녔어? 내가 보기에 당신도 만만치 않았을걸? 그렇게 말 잘 들었을 거 같지는 않아, 애들이 어디서 나왔겠냐?"
남편~찌릿
나~깨갱
내 말이 먹혔는지 일단 아빠가 며칠째 아무 말이 없자, 어느 토요일, 딸이 염색약을 사가지고 와서 내밀며 나에게 다시 검은색으로 염색을 해 달라고 한다, 말로는 머리에서 빨간 물이 너무 많이 빠진단다. 일요일까지 하고 있다가 학교 가기 전에 하지 왜 하필 오늘이냐고 물었더니
"내일 주일이잖아, 빨간 머리로 교회 나가면 엄마, 아빠 욕먹잖아, 나 때문에~"
똥바지도 버렸단다. 바지단이 너무 더러워졌다나? 가만있으면 좋겠구먼 옆에서 남편이 한마디 한다.
" 온 동네 쓰레기를 다 쓸고 다니는데 안 더러워지면 그게 더 이상하지"
옆에서 옆구리를 쿡 찔렀다. 눈치 없는 걸로는 세계챔피언이다, 증말...
돌아다보니까 그런 딸이 대견해 죽겠는지 콧구멍이 벌렁거린다. 자기 뜻에 따라준 딸이 예쁜가 보지?
이전의 예쁜 딸로 돌아왔다.
나는 그냥 딸을 꼭 안아주었다.
아빠보다 성숙한 딸이다.
당신은 모르지? 당신이 진거야~~ 자기만 몰라요~~
나는 알고 있었다. 그때 딸아이는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서 따라주기도 했지만 중간에서 엄마가 힘들 것을 알고 그랬던 거다. 다 컸다, 우리 딸!!
남편에게 좀 더 아이들에게 여유 있게 사랑을 표현해 보라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아빠랑 엄마가 부모역할이 처음이라 서툴러서 그러니까 너희가 좀 이해해 줘" 하니까
"우리도 자식역할이 처음인데 어떻게 이해해? 그래도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오래 산 아빠, 엄마가 우리를 이해해 주는 게 맞는 거 아니에요?" 한다.
뉘 집 자식인지 몰라도 말은 진짜 @@@ㅋㅋ 잘한다. 그래, 니들 말이 맞다~
그런데 어쩌니? 앞으로 이렇게 부딪힐 일이 얼마나 더 많을까? 또 니 동생은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이 이런 일을 겪으며 살아갈꼬?
아우, 난 모르겠다. 일단 도망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