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for healing Sep 26. 2024
우리 네 식구는 모든 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
가족사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외모도 닮았거니와 성격도 닮았다.
네 사람 모두 다혈질인 데다가 자존심은 쓸데없이 세고 나름 정의감에 불탄다.
어쩌다 외식을 하러 나가거나 휴가를 가면 예의 없거나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 뒷목 잡을 일이 많아 아예 목에 깁스를 해야 할 지경이다.
특히 큰 아이는 아빠와 성격이 거의 똑같다.
성격이 강하고 고집이 센 편이다. 음악을 해서 그런지 예민하고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언제나 계획을 세워 행동하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아무리 아빠라지만 자기가 보기에 '이건 아니다' 싶을 때에는 한 번씩 도전장을 내미는 딸이다.
그러다 보니 둘이 맞을 때는 기가 막히게 잘 맞지만 한번 부딪히면 그야말로 와장창이다.
다행히 큰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나가면서 오히려 떨어져 지내는 시간 동안 부녀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작은아이는 언니와 달리 소심하고 겁이 많다.
아빠와 언니가 한바탕 전쟁을 치를 때면 큰 눈을 깜빡이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방으로 들어가 곤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는데 꼭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에 관하여는 할 말이 진짜 많은데 태어날 때부터 많이 아팠던 데 비해 너무나 똑소리 나고 당차게 성장했다. 어릴 때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인형 같다고 쳐다볼 만큼 너무 예쁜 아이였다. 때문에 큰아이가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다. 본인도 한 미모 하는데(엄마눈에만 그런가?ㅎㅎ) 원형탈모까지 생기고 심지어 동생이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심각하게 울며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했단다.ㅋㅋ
성장하면서 어릴 때만큼의 미모(?)가 사라졌다며 즈이 언니가 "살면서 나모르게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놀리기도 했다.
여하튼 그 아이는 우리 집의 괴짜이다.
예를 들어, 주일에 옷차림이 좀 난해할 때 ㅎㅎ 아빠가
"옷이 그게 뭐냐? 좀 단정하게 입지"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아바마마" 이러질 않나...
수능을 앞두고 진지하게 손을 잡고 기도해 주면서
" 하나님이 항상 너와 함께 계시니까 떨지 말고, 지금까지 공부한 거 잘 기억나게 해달라고 시험시작하기 전에 꼭 기도하고 시작해, 알았지?" 심각하게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청심환을 입에 털어 넣으면서 발랑 뒤집어져 소파에 눕더니 하는 말이
"우왕~나 너무 떨리는데 어케?!?! 그냥 하나님이 혼자 들어가시면 안 될까?"
내가 정말 못 산다. 짠한 마음에 먹먹하던 남편과 내가 그만 어이없어 웃음이 터졌다.
그런 아이들에게 유독 엄하게 대하는 남편이 나도 참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비록 바람난 아버지였긴 했지만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사랑받았던 유년기를 보냈었다.
그에 비해 남편의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학교선생님으로, 한 번도 외아들이었던 자신을 안아준 적도 없었고 손을 잡아준 기억도 없었단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시면 신나게 놀다가 누나와 여동생 둘, 총 1남 3녀, 아니다, 그때 막내여동생은 돌이 안되었을 때니까 3남매가 문 앞에 차렷하고 서서 "다녀오셨습니까 "라고 인사했던 기억(무슨 군대도 아니고), 남매가 벽을 보고 손들고 벌을 서던 기억... 그리고 한마디 말없이 밥만 먹던, 그냥 아버지가 많이 무서웠던 기억뿐이었단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그렇다고 그런 걸 우리 딸들에게 그대로 재연할 것까지야...
본인도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면서... 그런 아버지는 되지 말아야지 했다면서...
어찌 보면 아이들의 유학은 꼭 아이들의 공부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서로 떨어져 지내면서 그동안 표현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들을 조금씩 쏟아내기 위한 그 누군가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깨어지기 전에 실금이 가는 것을 보수하기 위한 밑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이야기를 마치 남 이야기하듯 아무렇지 않게
넷이서 영상통화를 하면서...
"아빠, 나 초등학교 3학년 때 혼낸 거 기억나? 와~그때 진짜 너무했어!"
"그때 니네가 거짓말하고 싸우니까 그랬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아, 나 그때 아빠가 친아빠 아닌 줄 알았잖아 ㅋㅋ"
"인마!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게 거짓말하는 거하고, 싸우는 거라고 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딸인데 어떻게 종아리를 때릴 수 있냐고!!! 다음 날 치마 못 입었잖아!!"
"그게, 인마, 사랑의 매라는 거야, 무식하게 손으로 때리지 않고~ 다 니들 잘 되라고~~~ "
" 우와~두 번만 잘되라고 했으면 딸 잡았겠네요~ 그럼 ㅋㅋㅋ"
"그리고, 엄마는 어쩜 옆에서 말리지도 않냐? 다른 집은 아빠가 혼내면 엄마가 말린다던데"
" 니 아빠는 말리면 더해, 같은 성씨끼리 죽이든 살리든 알게뭐야!!!나두 아주 징글징글했다~"
"암튼 울 아빠 대~~ 단해요"
"이 자식이~"(헛기침만 수십 번 ㅎㅎ)
어렸을 때의 기억은 참 오래도록 우리를 따라다니면서 지금의 나를 조금씩 무너뜨린다.
남편은 어릴 때 무서웠던 아버지의 쓴 뿌리가, 나는 바람피우던 아버지로 인한 불신의 쓴 뿌리가, 우리 아이들은 어떤 쓴 뿌리가 그 아이들의 인생에서 치유돼야 상처로 남을까?
부부싸움만 칼로 물 베는 게 아니다.
오늘 우리의 쓴 뿌리가 조금 뽑혀나갔다.
이렇게 조금씩 시작해 보자.
얘들아~
엄마, 아빠 심심해~
공부 그만하고 빨리 와, 우리하고 노~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