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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좋아하는 아이, 집 밖을 좋아하는 아이

엄마는 뭐든지 찾아

by for healing

큰 아이의 유학생활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이 고된 일상이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리 장학금을 받고 갔다 하더라도 여유 있게 보낸 유학이 아니었기에 엄마, 아빠에게 경제적으로 부담 주는 게 미안해서 자기 딴에는 아르바이트해 가며 생활비를 보태고 조금이라도 싼 숙소가 있으면 몇 번이나 이사를 다니곤 했다. 그 멋진 나라 미국까지 가서 친구들과 놀러 다닌 기억이 손에 꼽을 정도라니 내 딸이지만 정말 대단하다 싶었다. 더욱 감동이었던 것은 일찍 학점을 따서 빨리 돌아오려고 밤잠도 줄이며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우며 새벽까지 학교연습실에서 거의 매일 연습하곤 했는데 어느 날 실기시험을 보려고 들어갔더니 나이 많은 교수님이

"니가 늦은 시간에 매일 샌드위치 먹으면서 연습하는 거 봤다." 하시면서 싱긋 웃어주시더란다.

그러면서 딸이 하는 말이 더 감동이었는데

"엄마~그 교수님이 내가 밤마다 연습한 걸 다 봤다면서, 내가 고생한 걸 알아주는데 창피하게 울컥하는 거야. 근데 학교 끝나고 나중에 집에 와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이다음에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하나님이 나한테 '너 세상에서 수고하고 애쓴 거 내가 다 안다' 그러시면 그땐 얼마나 좋을까? 어떤 기분일까?그치?"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얘는 뭐지? 어떻게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을 했지?

고생하는 딸이 짠해서, 또 대견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집 떠나면 다 효녀, 효자가 된다더니 철이 드나 보다. 신앙도 더 돈독해지고...


자, 반면에 스페인에 계신 우리 막내는..

학교공부보다, 야외활동에서 더 큰 유익을 얻는다는 모토아래 열심히 바깥세상을 즐기면서 국제적인 교류로, 사교의 폭을 넓혀가고 있었다고 한다. 각 나라 족속과 4~5명이 한집에 같이 살면서 언어도 배우고 각 나라의 문화도 익히는, 정말 자기 성격과 딱 맞는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본인의 표현대로 '쒼나게' 즐기며 살고 있었다.

정말, 진정 내 딸이 맞나? 싶어, 병원에서 아이가 바뀐 게 아닌가 잠시 의심해 볼만큼 우리 집에선 나올 수 없는 특이한 사교성을 가진 아이지만 그런 의심을 품기엔 너무나도 명백하게 나를 닮은 것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무슨 일이 있어서 아이 학교에 갔을 때,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느라 교실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면 반 친구들이 우리 아이한테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러더란다.

"○○야! 저기 교실 밖에 너랑 똑같이 생긴 아줌마 있어, 니네 엄마인가 봐~"ㅎㅎ

저 아이는 내 딸이 분명하다.ㅎㅎ


성격이 워낙 천방지축이어서 걱정했지만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서 목사님 부부와 교회 어른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아니나 다를까 벌써 목사님 뿐 아니라 성도님들 초대로 여러 가정에서 식사대접도 받았단다.

어려서부터 사근사근하고 살가워서 그런지 교회에서도, 유독 어른들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아이였는데 그곳 한인교회에서도 '특유의 상냥함과 미모로 모처럼의 젊은 한국유학생의 매력을 어필했다'는 본인의 증명되지 않은 강력한 주장을 펼쳤다.

걱정과 달리 나는 그쪽으로는 아는 바가 없어 잘 모르지만 무슨 시험에도 패스했다고 하는 걸 보니 그냥 흥청망청 놀기만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웃기는 건, 스페인 남자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문지방을 넘어갈 힘만 있으면 예쁜 여자들을 보고 휘파람을 불어댄다는데 ㅋㅋ(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딸아이 말에 의하면 길 가다가도, 차를 마시다가도 몇 번이나 발 앞에 꽃을 놓고 무릎 꿇고 손에 입을 맞추는 남자들을 마주친 경험이 있다며...

"스페인 × 들은 진실성이 없어, 지가 보기에 좀 괜찮다 싶으면 꽃 들고 와서 무릎 꿇고 손에 입 맞추고 들이대, 미친 × 들이야, 난 내 앞에서 쓰러지는 줄 알았어, 갑자기 무릎 꿇길래... 걔네 문화자체가 그래, 진짜로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가는 인생 망하는겨~"

열을 내며 응징한다.


전혀 다른 스타일로 나름의 경험을 쌓고 있는 딸들... 이제 돌아올 날이 얼마 안 남았다.

큰아이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고, 작은 아이는 그날이 아직도 멀었으면 좋겠단다.


나는?

남편과 둘만 있어서 절간 마당(아! 나 교회 다니는데ㅎㅎ) 같은 집안이 , 그 고요가, 그 평온함이, 그 한량함이, 그 여유로움이, 그 자유로움이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좀 시끄러웠으면 좋겠다. 좀 정신없었으면 좋겠다. 분명 얼마 못 가고 후회하겠지만...

"엄마! 내 스타킹 못 봤어?"

"엄마! 내 하얀 운동화 안 꺼내놨어?"

"분명히 내가 여기다 놨는데 없어졌어, 엄마가 좀 찾아봐 줘"

"이상하네, 엄마만 들어가면 꼭 나온단 말이지"


가족공용어

"왜 엄마 눈에만, 왜 당신 눈에만 보이지? 우리가 찾을 땐 분명히 없었는데..."

남편도, 아이들도, 어느 집이나 똑같다.

온 서랍, 장롱을 다 찾아봤단다. 그것도 두 번, 세 번씩이나...

이쯤 되면 내가 일어나면 공포다. 다들 호달달 떨고 있다. 찾을 테니까...

"끝내 이기리라 " 가 아니라 "끝내 찾으리라"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부터 보인다는 게 문제다.


얘들아~~ 엄마가 다 찾아줄게! 이 예쁜 목소리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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