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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부탁해

그녀들의 귀환

by for healing

그럼 그렇지~

"딸들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좋겠구나"

"예~아버님, 어머님 분부대로 따르겠사옵니다"


좀 떨어져 지내다 만났다고 사람의 근성이 변하는 건 아니더라.

딸들이 돌아오고 한 달 정도는 오늘은 뭘 해서 먹일까? 오늘은 같이 어디로 쇼핑하러 나갈까? 그동안 못 잔 잠 푹 재워야지, 발끝으로 걸으며 아이들 방에 주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면서 잊고 있던 이전의 복작거림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살다가 넷이 되니까 우선은 사람 사는 집 같아져서 말소리도 나고 웃음소리도 나고 다시 '즐거운 나의 집'이 된 것은 사실이나 반면에 일거리도 두배로 늘었다.

여자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빨랫감도 많고 머리카락은 이러다 대머리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집안 곳곳에 수북하게 빠져있고 남편과는 대충 때우지 식으로 먹던 식사도 왠지 신경 쓰이고... 물론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다시 대충 먹게 되겠지만ㅎㅎ

그래도 딸들이라 많이들 도와준다고 나서주는 게 기특하기도 하지만 일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거기에 덤으로 소소로운 다툼도 당연히 일어났다.

모녀간의 신경전은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진기한 장면인가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말속에 날을 세웠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커피 한잔 타 가지고 테이블에 놓으며 TV속 여주인공 험담을 신랄하게 해댄다.


모녀간의 신경전은 둘째치고 일단, 외국에서 돌아와서 가장 먼저 아이들이 시행한 것은 아빠의 보수적인 사고를 개선시켜 보는 것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미국이나 스페인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스위트하기가 이를 데 없고 여자들의 그 자유분방함이 너무나 자연스러운데 반해 아직도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한국의 아빠와 엄마세대를 보는 딸들의 마음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아빠와 엄마의 결혼생활에 대해 태클(?)을 많이 걸었던 딸들인지라 앞장서 일단 우리 집의 구시대적 시스템을 개선시키기 위해 '이 한 몸 바치리라 ' 다짐하고 돌아온 모양이다.


그렇다고 아빠가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이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가부장적인 요소가 있기에 그에 따른 반감이 분명 딸들에게 있어왔다.

언젠가 TV에서 본 장면인데 엄마와 딸들이 재미있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나와서 채널을 뉴스로 확 바꿔버리는...

그 장면을 보면서 우리 모녀는

"어머, 당신이 왜 저기서 나와?"

"아빠! 언제 광고도 찍었어? 아빠가 저런다니까? 인상 좀 봐봐, 심술궂게 생겼지!!"

예를 들어 그런 식이다.

남편이 귀가할 시간이 되면 무심코

"아빠 들어올 시간이다. 집 좀 정리하자~" 하면

"왜애? 아빠가 들어오는데 왜 집을 정리해야 되는데?" 하며 레이저를 쏜다.

같이 쇼핑을 하다가도

"아빠 들어오기 전에 가자, 얼른 가서 저녁준비해야 돼" 하면

"아빠 들어오기 전에 안 들어가면 큰일 나? 아빠도 혼자 밥 차려먹을 수 있어. 그렇게 백화점에서 뛰어다닐 거면 뭐 하러 쇼핑 같이 나왔어? 집에 밥 있겠다, 냉장고에 반찬 있겠다, 배고프면 아빠가 차려먹겠지, 엄마가 자꾸 해 줘 버릇하니까 아빠가 더 아무것도 안 하는 거야. 엄마가 노예야? 엄마 그거 노예근성이야, 알아? 아빠 밥 해주려고 결혼한 거야? 우린 결혼해도 엄마처럼은 안 살아!!!"

이마에 핏줄까지 세워가며 악악거렸다. 아가야, 숨은 쉬면서 말해라, 숨, 숨...

그러고 보니 신혼 때에는 잘 도왔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배짱이가 되어버렸다. 둘이 성장하면서 워낙 엄마를 잘 도와주니까 믿거라 하고 그러나?

화장실, 다용도실 청소는 다 해줘도 절대 주방일은 안 도와준다.


칭찬에 인색하다고 했던가!

식사를 할 때도 맛있는 반찬에는 별말이 없다가 혹, 간이 안 맞으면 좀 짜다, 싱겁다고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 딸들이 누구인가? 정의의 사도 아닌가?ㅎㅎㅎ그들이 달라졌다.

"아빠! 엄마가 애쓰고 수고해서 만든 거잖아요, 앞으로 맛이 없다고 말하려면 맛있을 땐 꼭 맛이 있다고도 말을 하세요"

"어? 어~~ 그래야지, 헛 험~~ 엄마가 해준 거 다 맛있지~"(남편, 사레들 뻔, 애쓴다, 자기가 쏘아 올린 똑똑한 딸들 때문에ㅋㅋㅋ)

그나저나 키하~~ 똑소리 난다. 속이 다 씨~~ 원허네~잘한다, 우리 딸들!!!


아이들에게 뭘 부탁해 놓고도 고맙다는 말은 생략하는 남편이다.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생각이다.

아빠가 부탁한 걸 건네주면서 딸이,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아빠에게

"아빠, 땡큐지?" 하자, 그제야

"어? 어~~ 땡큐" 한다. 아휴~~ 엎드려 절 받기~~


방을 나오면서 막내가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큰아이와 내가 웃음이 터졌다.

"언제 다 가르쳐? 고맙다는 말을 안 하길래 내가 "아빠! 땡큐?" 하니까 처음에는 '응'이래, 그래서 아니, 거기서 '응'이 왜 나와? 이럴 땐 아빠가 "땡큐"라고 해야 하는 거라고 하니까 그제야 "땡큐"라고 한겨..."ㅋㅋㅋ


딸들아, 그래도 어떡하니? 미우나 고우나 니들 아빠인데 내다 버릴 수는 없잖아ㅠㅠ

미안하다, 엄마가... 그런 아빠밖에 너희에게 줄 수 없어서ㅎㅎㅎ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한다. 엄마는 포기했지만 너희는 절대 포기하면 안 돼!!!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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