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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대첩

by for healing

드디어 터질게 터졌다.

한동안 평온하던 집안에 큰소리가 난 것은 토요일 늦은 저녁이었다.

많이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간혹 잘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컴퓨터 사용이 문제였다.

남편이 어떤 서류를 작성하는데 뭐가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이게 또 왜 이러지?'"

'이게 먹통이네, 아까까지 잘 되던 게 왜 이래?'

혼자 방에서 구시렁대더니 급기야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나 보다.

우리 모녀는 거실에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이제 너 부를 거야"

아니나 다를까

"○○야~이거 좀 해봐, "

이름을 불린 큰딸은 들어가면서' 왜 하필 나야?' 라며 눈을 흘겼고, 이름을 안 불린 작은 딸은 앗싸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럴 때 큰아이를 찾는 건 가르쳐주면서 오만 짜증을 내는 작은아이보다 큰아이가 훨씬 순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아니, 역시 그날도, 남편의 잘못이 100%였다.

배우는 자의 자세가 '영 아니올시다'였던 거다.

이미 혼자 여러 번 해보다가 안 돼서 열이 받아있던 차에 딸이 설명해 주는 걸 한 번에 알아듣지도 못해 자존심이 상하다 보니 괜스레 큰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만 것이다. 몇 번을 참고 설명하던 아이가, 즈이 아빠와 똑같이 불같은 성격을 가진 아이가 드디어 아빠에게 소리쳤다.

"지금 아빠가 나한테 부탁한 거잖아요, 내가 도와주고 있는데 왜 나한테 화를 내요? 설명을 못 알아듣는 게 내 탓이야? 이 이상 어떻게 자세히 설명해요?"

하더니 방을 나와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저놈의 자식이, 싸가지 없이!!!" 남편의 놀라고 당황한 목소리... 상황, 끝!!!


그리고 그 부녀는 6개월간 대화가 없었다.

처음에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도 하고 사실 속도 많이 상했었다.

남은 두 사람(작은 딸과 나)이 사실, 자칭 '가족평화지킴이' 아닌가?

하지만 나는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 姓 씨들 사이에서 더는 속 끓이고 싶지 않았고 죽이든 살리든 니들 부녀가 알아서 하라는 심산이었다.


남편에게는 넌지시 '인격이 훌륭한 사람은 딸에게도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흘리듯 말해주었고, 딸에게는 '아빠 표정 보면 모르겠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잖아'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 들으라는 듯이 오다가다 한 번씩

"아이고, 이놈의 집구석, 이 꼴 저 꼴 안 보고 내가 나가야지~" 중얼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주일예배 끝나고 온 식구가 다른 교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공개적으로 자기가 얼마 전에 컴퓨터에 대해서 무언가를 묻다가 큰 딸에게 성질을 냈다며 너무 미안하다고 공개사과를 했다.

얼떨결에 사과를 받긴 했는데 큰아이는 그게 제대로 된 사과인지 의심스럽긴 하나 아빠의 성격상 그것만으로도 큰 용기를 낸 것으로 간주하여 봐주기로 했다고 했다.

이때, 우리 막내의 일침

"아빠는 실력이 없는 데 비해서 참 성질이 거시기해"

지당하신 말씀이신지라, 당사자인 남편도 뭐라고 반박하지 못하고

"그래, 아비가 실력은 없는데 성질만 더러워서 미안하다"

모두의 긍정의 고개 끄덕임 속에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모르겠다.

왜 결혼이라는 걸 해가지고 이 부녀싸움에 끼어야 하는지...

이제 남편도 알았을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아무리 아빠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자기와 똑같은 딸이 있다는 것을...

예전에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윗세대들에게 했던 그대로...

자녀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한다더니...

참 무섭도록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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