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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다가 잘 죽자~~

가슴 먹먹했던 아이...

by for healing

남편이 암 수술을 받은 후 정기검진을 위한 몇 가지 검사를 받고 왔다.

3개월 후에 보자던 의사 선생님의 말이 참 실감 나게 느껴졌었다.

주위에 암치료를 받았던 분들이 했던 이야기들,

"처음에는 3개월에 한 번씩 가서 검사하고 의사 선생님 만나다가, 그 후에는 6개월에 한 번씩 가고 그렇게 별일 없이 5년 정도 되면 완치된 거예요~"


그 첫 번의 '3개월 후'가 코앞으로 다가오니까 잠시 잊고 살았던 불안감과 초조함이 다시 찾아왔다.

다음 주에 의사 선생님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검사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누군가가

'우리는 그저 우주의 작은 먼지일 뿐인데 먼지치고는 너무 고생이 많다'라고 했던데...

어쩌면 그리도 표현을 찰떡같이 했는지...


몇 년 전에 작은 아이가 보는 유튜브중에 20대 중, 후반에 암에 걸려 치료받던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함께 본 적이 있다. 우리 딸아이 또래의 아가씨였는데 이미 10년 가까이 항암치료를 하고 있었다. 암에 걸리자 사귀던 남자친구도 떠나고 몸과 마음이 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 아가씨, 얼마나 긍정적이고 밝던지... 중학교 동창이었던가? 친한 친구 둘이 병원도 번갈아 같이 가주고 일상을 공유하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치료와 재발이 반복되고, 재발되었다는 이야기에 무너지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친구들과 유쾌하게 수다 떨며 여행도 하고...

그 아가씨(아가씨라는 호칭이 왜 이리 어색할까? 우리 작은 딸과 동갑이었던 분이니까 친근감도 느낄 겸 그냥 '그 아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ㅎㅎ) 아무튼 처음 암이라는 걸 알고 그 아이가 보인 반응은 이랬었다. 그 아이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그래, 내 허락도 없이 니가 내 몸에 들어왔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일단은 받아줄게. 대신 다른 데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딱 거기에만 있어. 같이 동거는 하되 다른 데로 옮겨 다니지만 마, 알았지? 안 지킬 거면 방 빼!!!"

이렇게 유쾌한 반응을 보이기까지 20대였던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이 좌절하고 두려웠을까?

결국 그 아이는 오래 항암을 하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세상 떠나기 며칠 전에도 수척해진 모습으로 라이브방송으로 친구들과 호스피스 병실에서 여느 때와 같이 웃으며 그동안 구독해 준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고 그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친구들이 전했다.

그저 딸아이 때문에 몇 번 보았던 영상 속의 밝고 유쾌했던 그 아이가 죽었는 소식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이 휑해짐을 느꼈었다. 딸과 나는 한참을 아무 말 못 하고 있다가 서로의 생각이 같았었음을 알았다.

"엄마, 나는 걔 살 줄 알았어. 너무 밝고 낙천적이고 그동안 그렇게 항암치료를 많이 받았는데도 잘 버텨오길래 이번에 재발된 것도 잘 넘어갈 줄 알았지... "

왜 그리 가슴이 시리던지... 살아온 년 수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암과 싸우다가 간 아이.. 우리 작은 딸과 동갑이었던 웃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던 아이...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좋은 친구들과의 우정이 보는 사람들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던 아이...


요즘 새삼 그 아이 생각을 많이 한다.

젊은 나이이건 우리 남편처럼 나이가 지긋하건, 죽음의 무게는 똑같을 텐데...

며칠 전에는 잘 알고 지내던 청년이 아이들과 오전 내내 놀아주고 저녁에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며 그 누나가 울면서 전화를 해왔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데에는 순서는 없다고 했던가...


그 청년의 문상을 하고 돌아오면서 남편과 이런 대화를 했다.

"우리 나이가 벌써 이렇게 많이 됐네. 세상이 참 그렇다~그러고 보면 이런저런 힘든 일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이 정도로 건강하게 산 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그치? 지금 하나님이 부르셔도 후회 없이 잘 갈 수 있게 잘 살다가 잘 죽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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