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막장드라마

아빠는 가고...

by for healing

엄마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답답한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아빠가 그렇게 싫었으면서도 아빠의 사랑을 대신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고 하면 너무 위험한 생각이었을까? 아무튼 어떤 이유였든 간에 결혼에는 절대 회의적이었던 내가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겉만 멀쩡했던 우리 집, 내 외모의 결점도, 털어놓기 부끄러웠던 집안의 창피한 부분 까지도 다 이해해 주었던, 이모의 소개로 만난 그 사람은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장인, 장모님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엄마의 소원대로 신앙이 좋은 사람이었다.


드디어, 나의 결혼식...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행복한 신부의 모습을 연기했고,

그렇게 또 우리 가족은 서로의 복잡한 생각들을 뒤로한 채 결혼식이라는 한 과정을 마쳤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나는 엄마의 이혼이 곧 현실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어이없이 빗나갔다. 그때만 해도 황혼이혼이라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었는지 아니면, 엄마 성격에 며느리와 사위까지 들어온 마당에 이혼을 한다는 게 창피했었는지...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 마음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엄마는 아빠에게 내려가 있는 시간을 줄였을 뿐 그대로의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이어갔다.

어찌 됐든 뭐, 그건 어디까지나 엄마 인생이고 엄마 결정이니까 하면서도 그때에는 솔직히'그렇게 결단을 못 내리니까 아빠한테 저런 꼴을 당하고 사는 거야'라고 이혼을 부추기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엄마의 말마따나 '의학박사'라는 학위는 어떻게 취득했는지... 귀는 어찌 그리 얇은지... 누가 봐도 입에 발린 소리이건만 옆에서 '박사님, 박사님'해가며 굽신거리면 우쭐해서 세상 다 가진 냥 잘난 척 해대다가 결국 또 큰 사고를 치셨다. 우리 잘난 아버지께서...

그 무섭다는 보증...

그것도 '연대보증'이라는 것을 덜컥, 평생 일구어 온 자신의 병원을 담보로 서준 것이다. 엄마가 없는 틈을 타 도장을 찍어 주고 친절하게 친필 싸인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이제는 엄마의 이혼이 문제가 아니라 병원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그보다 더 문제였던 것은 아빠가 그 자존심에 자신이 늘 '무식한 놈'이라며 무시하던 후배에게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어 혼자 몇 날 며칠을 술로 밤을 새우며 끙끙 앓다가 결국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게 된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빠 병간호에, 아빠에게 사기 친 찾으래야 찾아질 리 없는 후배 찾으랴, 재판에 넘어간 병원을 살려보랴 이리저리 애써 보았지만 보증이라는 게 모두가 알다시피 무서운 것이라 사정 봐주는 것 없이 수십 년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물이었던 병원은 허무하게 넘어가 버렸다. 하긴 누구를 탓할까?

병원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아빠의 처지가 이렇게 되다 보니 아빠의 그녀들은 다 자취를 감춰버렸다. 역시 이래서 조강지처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여기서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아침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우리 집에서 일어났다.


병원이 완전히 넘어갔다는 소식은 그때까지 병원에 있는 아빠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비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병원 마취선생님이 병문안을 왔다가 아빠가 알고 있는 줄 알고 자세하게 그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 주었고 쾌유를 빈다며 돌아간 그 날이후 아빠는 충격으로 의식을 잃었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버지의 딸로 살았던 나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