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 백스터는 문학작품 <아기 사슴 플랙>에서 주인공 소년 조디의 아빠다. 그의 삶을 통해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밖에 없는 사람이 '자기만의 세상(섬)'을 만들어 살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생각해보고자 한다.
페니 백스터의 원래 이름은 에즈라 에지키얼 백스터다. 그는 가난한 전도사의 자식들 중 하나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잘 못 먹고 힘겨운 노동을 하며 자랐기 때문에 발육이 좋지 않아 어른이 되어서도 체구가 어린아이만 했다. 그의 작은 체구를 포리스터 가의 악동 렘 포리스터가 1 페니 동전만 하다고 놀리는 바람에 그때부터 그의 이름은 페니 백스터로 불린다.
페니 백스터는 정직하고 부지런한 데다 말솜씨도 좋아서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자신은 읍내에서 살 때 사람들에게 쉽게 상처를 받았고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사람들의 잔인성을 견디는 것보다 야생동물의 위협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깊은 숲 속의 한 터를 개척해서 마을과 떨어져서 살기로 결심했다.
<아기 사슴 플랙>의 작가 '마저리 키난 롤링즈 히스토릭 주립공원'의 모습, 출처: 구글 지도
그는 서른이 넘어서 자신보다 몸집이 두 배나 되는 통통한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그녀는 다소 무뚝뚝했지만 아기를 잘 낳을 것 같았다. 백스터는 많은 아이를 낳아서 자신이 일궈놓은 세상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실제로 아이를 많이 낳았지만 아기들은 오래 살지 못하고 모두 죽고 말았다. 조디는 백스터의 아내가 임신이 불가능한 나이에 가까웠을 무렵 낳은 마지막 아이였는데,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는 아들 조디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한다.
백스터는 숲 속의 맘에 드는 땅을 구입하기 위해 가진 돈을 다 써버린 것으로 보인다. 자신만의 독립된 공간에서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거의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고 사냥과 농사로 먹을 것을 채우는 등 매우 가난한 생활을 했다.
우물이 없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함락공이라는 곳에서 물을 길어다가 생활했다. 늙은 말 한 마리가 숲 속을 다닐 때 백스터를 태우고 다녔고, 늙은 개와 철없는 두 마리 개가 사냥개 노릇을 해주었다. 가축도 몇 마리 있었지만 자칫하면 곰이나 늑대의 표적이 되었다. 먹을거리는 옥수수, 고구마, 콩 등 곡물을 심어 수확해서 먹었고, 가축의 사료로도 썼으며, 동물을 사냥해서 고기를 얻었다. 가끔씩 사냥한 동물의 가죽이나 고기를 읍내에 내다 팔아 생필품을 사 왔다. 옷은 다 지어 입었고, 자투리 천 한 장도 버리는 일이 없이 요긴하게 쓸 정도로 백스터 부부는 아끼는 생활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한 번은 조디가 아빠에게 왜 이곳(백스터 섬- 깊은 숲 속에 동떨어져 있어 섬처럼 보여서 백스터 섬이라고 부름)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는지 묻는다. 그러자 조디의 아빠는 이렇게 대답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곳에다 자리를 잡기로 결심했을 때, 내가 바랐던 건……."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어서였지.”
"여기서 나는 평화를 얻었어. 곰, 표범, 늑대, 살쾡이 그리고 때때로 네 엄마한테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마는."
그는 자신의 평화로운 삶의 대가로 동물들을 힘들게 하고, 아내도 힘들게 하는 것을 미안해한다.
페니 백스터는 존경할만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아들 조디에게 그대로 물려준다.
-페니 백스터는 정직한 사람이었다. 남의 돈이나 물건은 절대 공짜로 갖지 않았다. 한 번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면서 거스름돈을 1달러 더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이 돈을 돌려주기 위해 느려 터진 말을 몰고 먼 길을 되돌아가 돈을 돌려주었다.
“ 사람 일이란 모르는 법인데 남의 돈을 갖고 있다가 죽긴 싫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난 내 것이 아닌 것은 필요 없어요.”
-페니 백스터는 절대 필요 이상으로 동물을 사냥하지 않았고, 재미로 동물을 죽이지 않았으며, 새끼와 같이 있는 어미도 절대 죽이지 않았다. 그는 조디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얌전히 먹고 있을 때에는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도 꾹 참고 기다려야지. 그럴 때 총을 쏘는 건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짝짓기 할 때도 마찬가지고. 아빠는 식구들을 위해 고기가 필요할 때만 총을 들어. 너는 절대로 포리스터네 사람들처럼 고기가 필요하지 않은데도 그저 재미로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그건 곰만큼이나 비열한 짓이야. 내 말 알아듣겠지?”
작품 속에서 딱 한번 이 원칙을 깨는 사건이 나온다. 페니 백스터가 방울뱀에 물려서 죽을 지경에 처하자 새끼 사슴과 함께 있던 암사슴을 죽여서 그 사슴의 간과 심장으로 해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남겨진 새끼 사슴이 바로 아기 사슴 플랙이다. 조디의 간청으로 그 새끼 사슴을 조디가 키울 수 있게 허락하고 조디가 새끼 사슴을 데려오자 그는 사슴의 코를 만지면서
“귀엽구나. 너를 고아로 만들어서 미안하다.” 하고 말한다.
-페니 백스터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손해인 줄 알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으로 옮길 줄 알았고 남을 속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 딱 한 번 총을 얻기 위해 쓸모없는 개를 포리스터가에 팔아넘기고 총을 구하는데 두고두고 이것을 미안해한다.
시공주니어 문고 <아기 사슴 플랙 2> 본문 삽화 그림 중에서
주인공 소년 조디가 아빠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엄청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페니 백스터는 몸을 너무 혹사시킨다.
작품 속에는 매우 영리하고 교활한 늙은 곰이 나오는데, 이 곰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서도 백스터 가의 암퇘지를 죽이기도 하고, 교묘히 잘 도망 다닌다. 어느 날 이 곰이 갓 태어난 암송아지를 잡아가자 분노심이 폭발한 백스터는 몸을 돌보지 않고 여러 날을 추적해 드디어 늙은 곰을 사냥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듯 백스터는 몸을 돌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가정을 돌보고 삶을 일구어나간다. 그러다 결국 쓰러져 눕게 되고 조디가 일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백스터 섬에서의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처하고 만다.
이야기의 끝부분에, 성장한 사슴 플랙이 농사를 망쳐버리자 플랙을 죽이게 되는 상황으로 내몰리면서 조디는 아빠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집을 뛰쳐나간다. 조디는 며칠간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와 아빠와 화해하는데, 아빠 백스터는 조디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한다.
“너도 진실을 알아야겠지. 아빤 이제 사냥도 못 나갈 것 같다.”
“밭일을 끝내는 대로 제가 가서 윌슨 박사님을 모셔 오겠어요.”
아빠는 가만히 쳐다보았다.
“며칠 안 보는 사이에 많이 컸구나. 이젠 아이 취급하기가 어렵겠어. 조디…….”
“네.”
"우리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하자꾸나. 넌 아빠가 널 배반했다고 생각했지.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사실이 한 가지 있단다. 어쩌면 네가 벌써 알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허물어지는 건 아빠만이 아니란다. 네가 기르던 사슴만도 아니고. 삶 자체가 우리를 배반하게 되어 있어."
조디는 말없이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빤 너에게 고단한 삶을 보여 주기 싫었다. 나보다 더 편하게 살게 하고 싶었어. 자기 자식이 힘겨운 인생과 맞닥뜨리는 것을 볼 때, 부모 마음은 찢어지지.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부모도 겪어 봐서 알거든. 나는 어떻게 해서든 너를 지켜주고 싶었다. 네가 사슴하고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했어. 사슴 덕분에 네가 외로움에서 벗어났다는 걸 아빠도 알았거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외롭단다. 어쩌겠니? 인생이 나를 배반할 때 어쩌겠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견뎌나갈 수밖에 없어."
"집을 뛰쳐나간 건 제 잘못이었어요."
아빠가 일어섰다.
"이제 너도 스스로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컸다. 올리버처럼 바다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만도 하지. 땅이 맞는 사람도 있고 바다가 좋은 사람도 있는 법이란다. 아빤 네가 여기 남아서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구나. 좋은 우물도 파고 말이야. 그래야 언젠가 네 아내 될 사람이 먼 곳까지 가서 몸을 씻어야 하는 수고를 덜어 줄 수 있지 않겠니. 그렇지?"
"네."
페니 백스터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도, 사냥을 할 수도 없고, 어린 아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몸이 되었다. 조디는 백스터 섬에서 사는 까닭으로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된다. 백스터는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조디는 아빠를 돌보며 백스터 섬에서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밖에 없던 페니 백스터가 자기만의 섬, 자기만의 세상을 만든 대가는 혹독했다. 극심한 고생과 몸의 손상, 아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지 못하고고생시켰으며, 아내는 자신 못지않게 고생스러운 삶을 살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들이 자신의 삶을 이어받아 고생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고생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의 인생이 성공적이었는가에 회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위의 인용한 글에서 페니 백스터가 이야기하듯, 허물어지는 건 조디의 아빠만도 아니고, 사슴만도 아니고, 삶 자체가 우리를 배반하게 되어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다. 페니 백스터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 대신 고단하게 사는 인생을 선택했다. 경제적으로 풍부하여 인생이 덜 고단했으면 좋았겠지만 모든 일이 좋기만 한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물질이 풍부하면 그만큼 정신이 누리지 못하는 부분이 커지게 된다.
인생의 모습은 내가 어떤 선택을 내렸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선택의 결과 감당해야 할 대가를 페니 백스터처럼 고스란히 감내하면서 행복을 쟁취하느냐, 아니면 삶의 배반에 무너지고 주저앉아버리거나 현실과 타협하느냐 하는 것은 내가 감당해야 할 나만의 몫일 것이다.
'삶 자체가 우리를 배반하게 되어 있다'는 페니 백스터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인생의 생로병사가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나 자신을 통해서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으나, 내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는 실감하고 있다. 그토록 강인하셨던 분이 서서히 몸과 정신이 약해지고 무너져내려, 결국 생활의 모든 것을 돌봄에 의존하는 처지에 놓인 것을 볼 때에 실감하지 않을 수 없고, 내 삶이 이 모든 것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생각할 때에 두렵고 씁쓸한 마음이 든다.
페니 백스터와 조디와 나와 이 글을 읽어주실 누군가와 함께 푸시킨의 잘 알려진 시 한 편을 나눠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