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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Dec 10. 2022

어느 날 친구의 전화번호가 사라졌다!

드로잉 에세이

언제부터인가, 모르는 전화는 잘 안 받는 습관이 생겼다. 보이스 피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고(속을 뻔한 적이 있음), 보험이나 카드 회사의 홍보성 전화도 매정하게 끊어버리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어서다. 중요한 전화인 경우, 급하면 문자로라도 용건을 말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름이 안 떠서 모르는 전화라 생각하고 받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오랜만에 전화한 소중한 친구라면 어떨까? 

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

졸려서 누워있던 중에 전화가 왔다. 주소록 이름이 뜨지 않는 걸 보니 받을 필요가 없는 전화였다. 그런데 화면에 찍힌 전화번호가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받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색한 말투로 "여보세요?"  했더니 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친근하게. "나야, 잘 지내지?" 하는 것이었다. 전화 속의 목소리가. 어딘지 익숙한 목소리다. "으응?" 하고 헛대답을 하며 누구였더라? 혹시 보이스..? 하지만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 곧 떠올랐다. 오랫동안 통화를 안 했지만 소중한 친구 00의 목소리였다. "아 00구나! 네 이름이 화면에 안 떠서 누군가 했다." 하며 반가움을 표시하니, "왜 안 떴을까?" 하며 살짝 서운해하는 눈치다. 대충 상황 설명을 하고, 오랜만에 한참 동안 전화 수다를 떨었다. 이 친구의 연락처도 안 뜨는 걸 보면 다른 친구들 번호도 기록이 없어졌다는 건데, 나는 주소록의 목록을 살펴보며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들을 생각해보았다.


여러 날 전에 이와 비슷한 일, 그러니까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는데 주소록에 단축키가 보이지 않아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때 주소록을 쭈욱 살펴보면서 사라진 가족, 형제, 친구들의 번호를 다시 입력해 넣었었는데, 아직도 저장이 안 된 친구 몇 명이 남아있었던 거다. 아니면 그 사이 다시 사라진 것일까? 설마!

그런데 엉뚱하게도, 업무상 필요해서 저장해놓은 직장 동료나 업체 관계자 전화번호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실상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번호들.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전에 내 명의로 등록돼 있는 아들 폰의 전화번호를 정리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 아들 폰에서 지워버린 내 지인들 번호가 연동돼서 내 폰에서도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따진다 해도 남아있는 번호들은 그럼 뭔가?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만, 휴대폰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저절로 사라진 거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나 해서 검색해보니,

[갤럭시 스마트폰의 연락처가 갑자기 삭제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삼성전자 서비스> 정보가 뜨는 것이었다.

하나의 구글 계정으로 여러 기기를 사용할 경우 한 기기에서 삭제한 주소록이 다른 기기에서 자동으로 삭제되는 것이 사실이었고,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지내다가 상황이 닥치자 인지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서인지, 구글 계정에 들어가서 다시 살펴봐도 딱히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뭐 이런 황당한 일이 다 있을까, 폰을 바꿀 때마다 전화번호도 저절로 저장이 돼서 참 편했었는데, 이런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다.  


나는 머리를 굴려, 자주 연락하지 않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전화번호들을 거의 다 알아내서 다시 저장해 놓았다. 주로 문자 검색을 해서 알아냈다. 요즘은 카톡으로 주로 하지만 문자 기록이 조금 남아있었다. 두 세명 번호를 아직  찾지 못했다. 요즘 전화번호들은 쉽게 바뀌지 않아서 개인의 고유번호처럼 되었다. 그래서 알고 있던 번호는 더욱 소중하다. 이참에 나와 더 이상 연락할 일이 없는 번호들을 대부분 지웠다. 그랬더니 주소록의 명단이 홀쭉해졌다. 어쩌겠는가. 직장을 안 다닌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관계도 위축되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주소록에서 사라진 사람도 카카오톡에는 친구 저장이 돼 있어서 급하면 카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락을 하기는 살짝 어색하지만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은 카톡에 뜨는 사진이나 메시지를 통해 근황을 확인한다.


여행 사진이 뜨면, 아! 여행 다녀왔나 보구나!

아이 사진이 뜨면, 아이가 벌써 저렇게 많이 컸구나! 유치원 다닐 때 보고 못 봤는데...

참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친근감과 위안을 준다. ^^


당분간 이름 없이 오는 전화를 받아야 할까? 소중한 지인들과 얼마나 오랫동안 통화를 안 하고 지냈으면 전화번호 사라진 줄도 몰랐을까. 나의 무심함이 한심스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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