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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Dec 16. 2022

남편과 소파 싸움

소파 하나도 내 맘대로 못 사는 인생?

곧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낡은 집에만 살다가 새 아파트는 처음이다.


 준비해야 할 것, 사야 할 것을 고민하는 것은 나름 즐거운 일이다. 물건을 많이 놓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 덕분에 꼭 필요한 것만 사야 한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은 식탁과 소파, 그밖에 몇 가지이다.  변변한 식탁도 없이 아이용으로 샀던 낮은 테이블 위에서 밥을 먹은 것이 벌써 몇 년 됐다. 물론 그 전에는 식탁이 있었지만 이사하면서 없앴기 때문에.

새 아파트에 가서도 식탁 없이 살자는 남편에게 식탁만은 꼭 사야겠다고 주장을 해서 이건 관철시켰다.

 문제는 소파였다. 지금 사는 집 거실에 있는 소파는 오래된 데다가 너무 푹신하고 각도도 뒤로 많이 젖혀져 있어서 허리가 많이 불편한 소파였다. 그래서 이사 갈 때는 버리고 가기로 했고, 등받이가 탄탄한 3인용 소파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이삿날이 가까워 올수록 남편의 태도가 변해갔다.


남: 소파가 왜 필요하지? 자리만 차지하고..

나: 소파에 누워서 티브이도 보고, 가끔은 낮잠도 자고..  있으면 당연히 애용하게 되지.

남: 잠을 왜 소파에서 자? 잠은 방에서 자야지..


남편이 소파를 사는 것에 너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나는 소파 하나도 못 사게 한다고 짜증을 냈고, 약간의 우울감까지 왔다. 내가 이런 모습을 보이자 남편은 사고 싶으면 사라고 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소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얼마까지 되냐고 묻자 대답을 안 했다. 비싼 물건 사는 데는 일가견이 없는 남편인 것을 알기에 백만 원 정도로 생각하고 찾아봤다. 내 맘에 딱 드는 소파는 이백 만원 중반 대였지만 가격 때문에 호응을 안 해줄 것 같았다. 한 번은 슬쩍, 맘에 드는 건 이백만 원을 넘는다고 말했더니 놀라는 눈치였다.


그런데 며칠이 못 가 또,


남: 내가 정말 이해가 안 가서 그러는데, 도대체 소파가 왜 필요해? 각자 자기 의자 하나씩 놓고 앉는 게 낫지 않아?

나: 소파가 있어야 한 번이라도 더 나란히 앉기도 하고, 식구들이 거실에 얼굴을 들이밀지.

남: 필요하면 사는데, 필요가 없으니까 사지 말자는 거지. 내 말이 이해가 안 돼?

나: 나이 먹을수록 좌식 생활을 해야 해. 그리고 요즘 유행인지, 거실 바닥이 돌바닥이던데, 돌바닥에 앉는 것보다 낫지.

남: 그럼 당신 혼자 앉을 1인 소파 사는 건 어때? 그건 반대 안 할게.


남편은 소파를 사기 싫어서 툴툴거렸고, 나는 소파를 사고 싶어서 툴툴거렸다.

이렇게 소파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는 데 피로감을 느낀 나는 지쳐서 양보하기로 했다.


나: 그럼 나 혼자 쓸 1인 소파 살게. 비싼 거 사도 되지?

남: 응, 맘대로 사. 어떤 거 살려고?

나: 좋은 거는 3인용 소파 사는 것보다 비싸던데? 글구, 1인 소파는 나만 앉을 거니까 자기는 앉지 마.

남: 당신 안 앉을 땐 앉아도 되지.

나: 싫어, 앉지 마. 나 혼자 않을 거야.

남: 알았어. (살짝 서운해함)


난 1인용 소파만 사는 대신 맘에 쏙 드는 것으로 사자고 맘먹었다.



이때부터는 1인용 소파를 검색해보았다. 저렴한 것들도 많았지만, 웬만한 3인 소파보다 훨씬 비싼 것들도 많았다. 디자인이 예쁜 것들도 많았다. 비~싼 것을 사겠다고 엄포를 놓긴 했지만, 나도 과감하게 돈을 잘 쓰는 성격은 못되기 때문에  너무 비싸지 않은 적당한 가격대에서 고르기로 했다.


그러고서 얼마 후, 시골에 다니러 간 남편이 뜬금없이 또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남 카톡: 소파 대신 스마트폰 사줄까?

나 카톡: 1인 소파도 사지 말라는 거야?


난 어이가 없었다. 스마트폰도 오래 써서 바꾸고 싶은 맘이 있기에 혹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어이가 없었다. 소파 사는 게 얼마나 싫었으면 이런 말까지 할까, 싶어서.




도대체 소파가 뭐길래 이렇게 부부가 마음을 맞추기가 어려운 걸까? 소파는 왜 필수 생활가구가 된 거지?  

난 왜 이렇게 소파가 있었으면 하고, 남편은 왜 그렇게 소파가 없었으면 할까?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파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구는 아니다. 생활방식이 서구화되면서 익숙해진 물건이다. 요즈음 소파는 티브이 못지않게 거실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서 안락함을 상징하는 지위를 누리고 있다.  

시골집에서 자랄 때는 전혀 필요가 없던 소파가 어느 때부터인가는 나에게도 꼭 있었으면 하는 가구가 되었다. 아파트 안에는 빈둥거리며 여유 부릴 공간이 없어서일까.  그 허전함을 소파로 채우고 싶은 걸까?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자 나는 소파 자체가 지겨워졌다. 갈등과 피로감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성향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남편 뜻대로 하기로 한 것이다. 든든한 나만의 암체어 하나 갖고 싶은 욕심도 생겼고.^^


굳이 정리를 해보자면,


내가 소파를 원하는 이유: 거실에서 여유 부리는 것이 좋다. 나이를 먹을수록 바닥에 앉는 것보다는 좌식 생활이 더 좋다.  소파가 있어야 가족이 한 번이라도 더 거실에 모인다.

남편이 소파를 원치 않는 이유: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한다.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


이사 가려면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 우리 부부의 소파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단은 1인 소파를 사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1인 소파 가격이 3인용 못지않은 것을 알면 차라리 3인용 소파를 들여놓자고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덩치가 큰 소파는 어쩌면 짐이 될 수도 있다. 거실을 서재처럼 꾸며서 사는 가정에는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의 경우 거실은 티브이를 보는 장소로 주로 애용된다.  소파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1인용이든 3인용이든, 등받이가 단단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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