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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Dec 21. 2022

<스플랜더> 한판 해볼까?

가족끼리 하는 보드게임 '승부' 이야기

<스플랜더>, 기숙사 생활 하다가 오랜만에 집에  딸아이가 구매한 보드게임이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친구들과 한두 번 해본 딸은 식구들끼리 함께 해도 재미있을 것 같아 주문했다고 한다. 가장 좋아한 사람은 가족들이 모여 카드놀이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

이번 글은 우리 네 식구가 <스플랜더>를 하면서 보낸 유쾌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저 딸과 아들이 박스 안에 들어있는 토큰과 카드들을 꺼내 펼쳐놓으며, 딸이 게임 방법을 동생에게 가르쳐주면서 1대 1로 워밍업 게임을 했다. 난 새로운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관심이 좀 덜 갔다.


'<블루마블> 게임은 그래도 할 만했지, 이건 좀 어려워 보이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졸리는 오후였기에, 방에 가서 드러누워 있었다. 애들이 <스플랜더>를 하거나 말거나.


잠시 후 딸과 아들이 게임을 마쳤는지 이젠 넷이서 해야 한다며 나를 불렀다. 룰을 잘 알고 있던 딸이 이겼다고 했다. 지는 걸 못 견뎌하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니 제법 의젓해져서 져도 잘 받아들인다.^^


드디어 세팅되어 있는 방바닥 보드판 앞에 둘러앉아 게임하는 방법을 설명들은 뒤 남편과 나, 아들과 딸, 넷이서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은 위와 같은 모양으로 펼쳐놓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규칙은 대략 아래와 같다.^^

1. 순서대로(가장 나이 어린 사람부터 시작한다고 함. 먼저 하는 게 유리함) 오른쪽에 있는 다섯 종류 토큰 중에 다른 색깔 세 개(같은 색깔은 두 개)를 가져간다. (노란 토큰은 사고 싶은 카드를 찜해 놓을 수 있는 황금 조커 토큰인데, 찜한 카드를 살 때 원하는 색깔의 토큰 대용으로 쓸 수 있음), 같은 색깔 토큰은 네 개 이상 남아있을 때만 가져갈 수 있다. 토큰은 합해서 열 개까지만 소유할 수 있다.

2. 토큰이 모아지는 대로 카드 왼쪽 아래편에 있는 색깔만큼 토큰을 내고 카드를 구매한다. 찜하고 싶은 카드가 있으면 노란 토큰으로 찜하면 되는데, 찜하는 것 자체가 내 차례를 한 것이 된다.

3. 누군가 카드를 사 가면 왼편의 카드를 하나 채워놓는다.

4. 이렇게 계속 토큰을 세 개씩 모아서 카드를 사고, 카드 왼쪽 위에 있는 숫자의 점수의 합이 15점이 먼저 채워지는 사람이 일등이다.

5. 미리 산 카드는 오른쪽 위 보석의 색깔로 보석 토큰 하나의 기능을 할 수 있다. 좋은 점은 토큰 역할을 하면서도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카드가 많아지면 토큰이 하나도 없어도 카드에 있는 보석 숫자만으로 카드를 또 살 수 있다. 카드와 토큰의 숫자를 합해서 살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 토큰은 내야 한다.

6. 맨 위쪽에 있는 귀족 타일 카드는 총 열개 중에 무작위로 다섯 개를 늘어놓는다. 이 귀족 타일을 구매하는 방법은, 타일 왼쪽 아래에 있는 네모 모양의 숫자와 색깔만큼 카드를 모으면 가져갈 수 있다. 그러니까 각 카드의 왼쪽 아래에 동그라미 모양이 있으면 토큰이나 카드로 사는 것이고, 네모 모양이 있으면 카드만으로 살 수 있다.

7. 두 명이 할 때와, 세 명, 네 명이 할 때, 토큰과 귀족 타일의 숫자가 약간 달라짐, 네 명은 모든 토큰 사용.


위의 규칙에 따라 가장 어린 아들부터 시작하여 왼쪽으로 돌아가며 순서대로 토큰을 가져가고 카드를 사는 작업을 시작했다.

 난 뭐가 뭔지 잘 모르고 그저 규칙대로 대충 하면서 카드를 모으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시작했는데, 순서가 돌아갈수록 남편은 일등 하고 싶은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사고 싶은 카드를 조커 토큰으로 미리 찜해놓는데 열을 올렸다. 딸도 아들도 그랬다. 난 그냥 되는대로 카드를 사는데 집중했다. 카드와 토큰이 섞여 사용되 토큰을 내는데 몇 번 실수를 할 뻔했는데 매의 눈인 딸이 알아채고 바로잡아주었다. 남편도 토큰을 가져가면서 하나를 더 가져갈 뻔하다가 다시 빼앗겼다. 이렇게 나와 남편은 좀 헤맸기 때문에, 아이들은 잘못 내고 잘못 가져갈까 봐 감시의 눈빛을 반짝였다. 아들과 딸은 계산에 거의 오류가 없었다.

그런데 남편과 아들,딸 셋이 원하는 카드를 모으는데 혈안이 된 사이에 내가 모은 카드들이 많아져, 귀족 타일 카드를 먼저 선점했고,15점을 가장 먼저 따내 내가 일등을 했다. 신기하고 기뻤다. 남편이 어찌나 서운해하던지.^^


한 판을 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가족들의 게임 특징을 살펴보면,


남편: 잔머리를 써서 점수를 선점하려고 함. 어떤 전략이 효과적인지 자꾸 머리를 굴리는 형

딸: 머릿속에 어느 정도 전략이 들어있는데 잘 안 맞기도 함

아들: 원하는 카드가 있으면 여러 차례 토큰을 사는데 집중하여 그 카드를 사는 목표를 이루는 식으로 함

나: 되는 대로 하되, 무조건 하나라도 더 카드를 사려고 노력함. 그래서 늘 나는 가장 적은 토큰을 소유하고 있음. 토큰이 모여지기만 하면 무조건 카드를 사버리니까.


그런데 전략적으로 하는 남편과 아이들보다 무조건 카드를 사는 내 전략이 통했던 셈이다.


 두 번째 판을 다시 시작했다. 남편은 이번에는 다른 전략을 써야겠다고 했다. 두 번째 할 때는 남편도 무조건 카드를 사는 전략으로 바꿔서 했는데 중간에 조커카드 쓰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고 다시 찜해서 사는 방식으로 돌아갔다. 공교롭게도 두 번째에서도 내가 일등을 하고 말았다. 아들은 이등에 만족했고, 딸은 삼등에 만족했는데, 두 번 다 꼴등을 한 남편은 많이 서운해했다.


다들 이기려는 분위기가 달아올라서 난,


"보드게임 가지고 다들 왜 이렇게 흥분해?"  

하고 여유로운 말들을 늘어놓았다. 두 번이나 일등을 하니 기분은 좋았다. 식구들이 제일 어리숙하게 한 나의 일등을 아니꼽게 여기는 듯 말해서 어이가 없었지만.^^


우린 배달시킨 치킨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아들의 요구에 따라 토큰을 활용하여 포커카드놀이를 좀 더 한 뒤 이날의 가족놀이를 마쳤다. 말수가 적고 혼자서 게임하는데만 집중하는 아들이 거의 유일하게 가족들과 어울리고 즐기는 것이 이런 보드게임이나 카드놀이여서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다음날인 일요일 오후에도 우리 가족은 <스플랜더> 보드게임을 하기 위해 다시 자리를 깔았다. 난 전날 두 번 이겼기 때문에 여유로워져서 져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했고, 남편은 꼭 일등을 해보리라! 하는 각오가 대단했다. 아이들도 물론 일등을 하고 싶어 했다. 이날도 난 되는대로 카드를 사는 방식으로 게임에 임했는데, 어느 색깔이 유리한지, 무슨 카드를 먼저 사는 게 좋은지 어느 정도 파악한 남편과 아이들은 나보다 더 전략적으로 게임에 임했다. 그래서  세 번 게임을 한 결과, 처음에는 딸이, 두 번째는 아들이, 세 번째는 남편이 순서대로 일등을 했다. 딸은 "예~" 하고 두 손을 들며 좋아했고, 아들은 "으~ 드디어 일등 했다!" 하며 좋아했고,  남편은 "이젠 알겠다. 어떻게 해야 일등 하는지!" 하며 자신만만하게 좋아라 했다. 난 꼴등을 하면 서운하긴 하다는 것을 이날 경험을 하면서 실감했다. 2등이라도 해야 기분이 괜찮았다. 간단히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 애써서 만들어나가는 게임이어서 이기지 못하면 더 아쉬운 듯했다.

세 차례나 게임을 하고 나니 상당히 피곤했다. 아무래도 의자에 앉아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바닥에 펼쳐놓고 하는 것이 피로감을 높이는 듯.


오랜만에 네 식구가 완전체로 즐긴 시간, <스플랜더> 보드게임이 큰 역할을 했다. 별 기대는 없었는데, 어느 정도 머리를 쓰며 해야 하니 오히려 긴장감도 있고, 성취감도 있었다. 혹시 하나 덜 내나, 하나 더 가져가나, 계산을 잘못 한건 아닌지, 서로 감시하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설명서를 보니 개발자가 있었다. 게임도 이렇게 개발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니 새삼 개발자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온라인 게임도 있는 것 같았다.

딸 덕분에 알게 된 새로운 보드게임으로 우리 가족은  모일 때마다 좀 더 흥미진진한 승부를 벌일 수 있게 됐다. 나도 좀 더 머리를 써가며 하고 싶은데 아직은 아이디어가 없다.^^

<스플랜더> 보드게임을 고안한 작가와 그림을 그린 아티스트, 출처: 게임 규칙서
총 40개의 토큰과 90장의 카드, 10개의 귀족 타일이 한 세트다. 보드판은 따로 없다.
다양한 무늬와 색깔의 카드들, 이상하게도 남편과 나만 맨 오른쪽에 보이는 흰색 보석 카드를 검은색으로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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