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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Oct 25. 2022

대형병원의 진료 시스템 속에 들어갔다 나온 이야기

지역의 대학병원에는 자주 다녀봤지만 전국의 환자들이 모여든다는 서울의 대형병원 외래진료는 처음이어서 그 시스템이 어땠는지 나의 경험을 한번 작성해봤다. 이 글은 어느 대학병원을 비판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고, 많은 환자들이 몰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경험 공유 차원에서 작성한 글이다. 제발 이런 대형 병원을 자주 이용해야 하는 질병이 찾아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웬만하면 거주하는 지역의 병원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부득이하게 서울의 대형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겠지만.



9월 초에 약했던 거라 오늘 안 가면 또 한 두 달 늦어질 수 있어서 진료를 보러 가기로 했다. 8월 말 종합검진에서 몇 가지 주의가 필요한 결과들이 나왔는데, 오늘의 진료는 검사 결과에 대한 전문의와의 상담을 위한 외래진료였다. 오전 중에 40분 간격으로 갑상선 외래와 유방외과 외래를 보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갈까 했는데, 남편이 태워다 준다고 해서 갈 때는 차로 가고, 올 때만 지하철을 이용했다. 갈 때 승용차로 한 시간 반, 올 때는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지하철 안에서도 앉아서 왔기 때문에 많이 힘들지는 않았으나 집에 왔을 때는 몹시 피곤했다. 2시까지 점심도 못 먹고 일정을 소화했기 때문인가.  


10시가 다 되어 병원에 도착했다. 일단 접수 수납을 했다.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있는 주요 수납창구보다는 덜 밀리는 곳을 찾는다고 한 층 위로 올라갔다가 자동 창구에서는 접수가 안되어 수납원을 통해 수납을 하느라 10분 이상 기다려 겨우 수납을 마쳤다. 3차 진료기관이라 그런지 의사를 만나는 기본 진료비만 2만 원이 넘었다.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몰라 안내원에게 물어봐서 겨우 찾아갔다. 갑상선 센터에는 많은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착을 알리는 기기에 수납영수증 바코드를 입력해 접수시키니 간호사가 초진에 따른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니,  5분쯤 쉬었다가 키와 몸무게를 재서 알려달라고 했다.


늦을까 봐 바쁘게 수납하고 뛰어오다시피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앉아있었다. 그러고서 혈압을 쟀는데도 혈압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 요즘은 병원에서 혈압을 재면 많이 높게 나온다. 특히 자동혈압계는 더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몸무게는 약간 줄어들었다. 결과를 갖다 주니 혈압이 조금 높네요. 하고 말했지만 더 이상 뭐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고서 진료를 받을 때까지 30분은 넘게 기다린 것 같다. 상담으로 진료시간이 30분 넘게 지연된다고 안내가 되어있었다. 지루함을 느끼며 기다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는 2년 전의 갑상선 검사 자료와 이번 건강검진 자료를 비교해보며 당장 바늘을 찔러야 할 정도의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2년 전에 비하면 확실히 자잘한 덩어리 개수가 늘었고 조금 더 모양이 안 좋아지긴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6개월 후에 초음파 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침습 검사까지 예약해주겠다고 했다. 검사를 하러 오면 의사가 초음파상 갑상선 상태를 보고 침습 검사가 필요하면 할 것이고 필요하지 않으면 초음파만 할 거라고 했다. 그때 가서 결정을 하면 또 기다렸다가 침습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미리 침습 검사까지 예약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밖으로 나와 잠시 기다리니 간호사가 침습 검사 방법을 안내하고 사인을 받았다. 지혈이 잘 안 될 수 있어 혈전 방지용 약 등을 복용할 경우 3-4일 전부터 약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검사 후 15분간은 바늘을 찌른 부위를 정성껏 꾹 눌어줘야 하는 것과, 24시간 동안은 검사부위에 물이 닿지 않게 해야 하는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종이로 한 장 뽑아주면 안 되냐고 했더니 출력은 안된다고 했다. 요즈음은 텝으로 설명을 하고 서명을 받으니 종이자료가 따로 없는 점은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검사 후 당일 진료는 안되고 그때 가서 의사를 보는 날짜를 다시 잡아야 한다고 했다. 검사를 하는 곳은 진료실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그러니까 이 큰 병원에서 검사와 진료를 한꺼번에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워낙 대기 환자가 많아서 그런 것이 주요 이유였고 검사 결과가 나오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지역에 있는 대학병원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같은 대학병원이어도 그쪽 병원과 서울의 병원은 약간 규모와 급 면에서 다른 것 같았다. 의사와 장비의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서울의 병원을 꼭 이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편리 면에서는.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환자들이 서울로 몰리는 이유는 최고의 기술과 수준이 서울의 주요 병원들에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렇게 갑상선센터의 진료는 끝났다. 검사 날짜와 시간 예약은 아래층의 메인 접수창구 중 예약만 담당하는 창구에 가서 해야 했다. 그다음으로는 유방외과로 가야 했는데 시간이 약간 지나버려서 서둘러서 유방센터를 찾아갔다. 어딘지 잘 모르겠고 안내하는 분도 어디 가고 없고 해서 청소하는 분에게 물어봐서 찾아갔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못 찾고 있었음.ㅠ



환자 도착 등록을 하니 간호사가 병력 가족력을 조사하는 종이를 작성하게 하고 혈압을 재라고 했다. 나는 잠깐 걸었으니 많이 올라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 쉬지 않고 바로 쟀는데, 159라는 높은 수치가 나왔다. 그걸 간호사에게 줬더니 깜짝 놀라며 너무 높다고 좀 앉아있다가 다시 재라고 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5분 넘게 있다가 다시 쟀다. 덥게 느껴지는 겉옷을 벗고 안정을 하다 쟀더니 147/90이 나왔다. 갑상선 외래에서는 149/90 쯤이 나왔었다. 어차피 한참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10여분을 더 앉아있다가 다시 쟀더니 139까지 떨어졌다. 혈압은 서 있을 때와 앉아있을 때가 다르고, 앉아있을 때와 누워있을 때가 또 다르게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이만큼 떨어져서 다행이었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조금 높은 편인데 안 좋아진 혈관건강이 혈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도 이제 혈압약을 먹을 나이가 된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또 한참을 기다려서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할 정도로 큰 이상은 없으며 추적관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일단 의사를 만나야 예약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진료를 본 것이고, 진료가 늦어지면 예약이 늦어진다고 했다. 의사는 이렇게 진료가 간단히 끝나지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나의 긴 대기시간과 피곤함을 위로하는 듯했다. 밖으로 나와서 안내된 창구로 가서 유방초음파 검사 날짜를 예약했다. 이곳도 초음파 검사를 하고 바로 진료를 볼 수는 없었다.  진료실 바로 옆에서 검사가 이루어지는데도,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다른 날 와야 했다. 진료 예약 날짜도 검사 일주일 후쯤으로 같이 잡아주었다. 지금 안 잡아놓으면 늦어진다고. 초음파 검사만 하는데도 진료 예약을 따로 하는 것은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었다.


유방 외래 진료를 마치고 아래층으로 갔다. 통합 예약하는 곳에서 번호표를 뽑으니 20여 명 대기자가 있었다. 그래서 20분 가까이 대기하다가 갑상선 검사 예약을 했다. 유방초음파 검사는 2월 중순, 갑상선 초음파(침습) 검사는 4월 중순으로 잡혔다. 나는 같은 날 가능하면 잡아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검진 월이 달랐다.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른다. 하루에 두 군데 진료를 보는 것이 상당히 피곤한 일이라는 것을 오늘 알았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고 나니 12시 반이 다 되었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진료가 일찍 끝날 것 같으니 오랜만에 친구 만나서 점심이나 먹을까?'하고 며칠 동안 여유를 부린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이었는지. 앞으로는 병원 진료일에 누굴 만날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지하철역으로 가서 전철을 타고 중간에 한번 갈아타고 집에 오니 2시가 다 되었다. 그나마 앉아서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집에 와서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었다. 큰 이상만 없다면 그냥 지역 병원을 이용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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