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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판 Oct 29. 2022

별별 걱정

산책길에 겪은 소소한 일과 생각들


집 근처 공원에서 다음 공원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육교가 있다. 폭이 4~5미터쯤은  돼 보이는 제법 넓고 경사가 완만한 육교다. 육교를 건너면서 오랜만에 보게 된 풍경이 있었는데, 바로 커다란 패널을 들고 서서 전도를 하는 분의 모습이었다. 전도지나 작은 말씀판이나 소리를 내서 외치는 분은 본 적이 있지만 어깨 높이까지 몸이 가려질 정도로  패널을 세워놓고 붙잡고 서서 전도를 하는 분은 처음 본 것 같다. 하얀 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눈에 확 띄었다. 마치 1인 시위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스크와 모자를 자연스럽게 쓸 수 있으니 덜 쑥스러울 것 같기도 했다. 지나가면서 슬쩍 보니, 성경말씀은 교회를 안 다녀도 대부분이 알고 있는 말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다. 패널의 위쪽에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교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넓은 육교의 한쪽 구석에서 당당하게 서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육교의 반대편 끝에도 한 분이 서 있었는데, 그분은 옆에 작은 녹음기를 놓고 찬양을 틀어놓고 있어서 옆을 지나는 동안 찬양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나치면서 보니, 찬양을 켜놓고 계신 분의 앞에는 초등학교 4~5학년쯤으로 보이는 남학생 세 명이 다가서서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게다가 전도하는 아주머니와 전화번호도 교환하고 있는 듯 휴대폰을 서로 내밀고 010- 하면서 말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여 나는 깜짝 놀랐다.

뭐지? 왜 전화번호까지 교환하는 것일까! 아는 사람인가? 나는 '얘들아 왜 전화번호까지 교환하니?' 상관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었지만 전후 사정도 모르는 데다가 괜히 참견했다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것 같은 생각에 그냥 지나치면서도 의문이 들어서 그쪽이 자꾸 신경이 쓰였다. 얼핏 들리는 말이 전도하는 아주머니가 오늘은 바쁘니 내일 어쩌고 하는 것으로 보아 언제 전화를 하겠다는 식의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저 아이들은 왜 저분에게 다가간 것일까? 저 교회가 저 아이들이 다니는 교회인가? 그래서 이 교회 다닌다고 아는 척을 한 건가.? 아니면 교회 초등부에 다니는 아이들이어서 전도하는 모습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아니면 그냥 재미있어서?

나는 육교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아이들을 생각했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이니 지나치게 순진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내가 이런 걱정까지 하는구나, 하는 마음에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저 상황에 ‘악의’가 작동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선의에 불현듯 작동하는 악의가 침범하지 말기를. 선의에는 선의만 작동하기를,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 악의가 선의를 이기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오자 또 다른 한 분이 방역마스크가 한 장 들어있는 교회 전도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받고 싶은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지만 산책길에 짐이 될 것 같아 눈인사를 하며 그냥 지나쳤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가기는 하나보다.

교회마다 가을철 전도축제기간인가? 요즈음 전도하는 분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나도 청년시절에는 노방전도도 해보고 청년부에서 길거리 찬양하는데도 참여해보고 했었는데, 그 시절만 해도 그런 것들에 사람들이 지금만큼 큰 거부감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크리스천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보다는 좀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직장 다닐 때는 사람들이 내가 크리스천인 것을 모를 정도로 나의 신앙생활이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그나마 다니던 주일예배도 멈추고 요즈음은 유튜브에서 마음에 드는 대형교회의 예배를 드리는 온라인 예배자가 돼버렸다. 다니던 교회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더라면 반강제적으로라도 다시 다니기 시작했을 텐데 주일예배만 겨우 드리고 있었고, 목사님의 설교가 딱히 감동적인 것도 아니어서 교회에 다시 나가야 할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지라 온라인 예배로 만족하고 있다. 게다가 곧 이사를 가면 어차피 다니지 못하게 될 것 같아서, 이래저래 핑곗거리가 다.


온라인 예배자가 많아지면서  영상예배만 드리는 신앙생활에 대한 걱정과 논란도 많은 것 같다. 나의 경우 계속 온라인 예배만 드릴 생각은 아니지만 교회와 예배, 신앙생활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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