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그저 버티기만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억지로 버텨오는 삶은 겨우 한 발정도 올라탈 수 있을 정도의 외줄 타기와 같다. 온 정신과 몸을 집중해서 초인적인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겠지만 정작 외줄을 타는 사람은 자신을 걸고 반드시 건너야만 하는 가혹한 형벌일 뿐이다. 그럼에도 살고 싶다는 의지가 몸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목적지가 보이지 않지만 중심을 잡고 천천히 가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도착할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다. 현실은 다르다. 살아야 할 이유를 억지로 붙여가며 외줄을 타야 하는 사람의 삶은 아주 작은 바람에도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넘어졌을 때 간신히 줄에 매달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다. 삶이라는 짐을 지고 외줄을 타며 버티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다.
그 짐들은 평소엔 본인도 잘 느낄 수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아주 가끔씩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다. 외줄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다가가 보면 보이지 않던 짐들이 처참히 바닥에 흩트려져 있을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들에게 딱히 무슨 상관일까. 저 가늘고 가는 외줄을 무거운 납덩이들을 짊어지고 건너가야만 하는 삶은 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외줄을 타야 할 이유가 없다. 잘 포장되어 있는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 구경꾼들에게는 저 아슬아슬한 외줄 타는 사람은 그저 신기할 광경일 뿐이다. 그들은 절대로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어깨 위에 짊어진 무거운 짐들이 선명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였을까? 운전을 하다 갑자기 눈물이 뚝하고 떨어졌다. 울고 싶지 않았고, 전혀 슬플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눈물이 터졌다. 첫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니 그다음은 슬픔이 찾아왔다. 인생이 나에게만 특별히 더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도 주지 않았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내 삶은 늘 제자리걸음일 뿐인 걸까.
사실 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인 바로 '나'였다. 내가 마음이 약해서 끊어내지 못했고, 내가 어리석어서 칼같이 자르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나의 문제였다. 나를 힘들게 하는 모두가 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내가 잘못했다고 말한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살 것이냐고 말한다. 이제는 어른이 됐으니 잊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다. 가해자들은 아무런 상처 없이 살아간다. 가해자들은 언제나 참 쉽게 말한다. 어쩌면 그들은 나의 희생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알아서 잘 살고 있어서 참 좋다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 싫었다. 나는 알아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지금처럼 살아왔을 뿐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 그랬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어느덧 내 밥벌이를 하는 게 당연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잘 자랐다고 고맙다고 말한다. 정말 역겨울 뿐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일 순위가 되어본 적이 없다. 모두가 행복하고 밝은 미래만을 말하며 나를 희생시켰을 뿐이다. 나를 위해서라는 그 말에 속아 당신들의 편안한 삶을 보장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모든 것은 내 잘못이다. 내가 속았다. 내가 바보다.
그동안 참아왔던 서러움과 슬픔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나는 차를 세우고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울기도 했고 또 분노에 사로잡혀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들고 부수고 던지기도 했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감정이 진정되는 동안 쉼 없이 울려대는 휴대전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나는 창밖으로 휴대전화를 던져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