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뛰어가 친구들과 함께 유행하던 만화를 꼭 봐야만 했다. 오늘 이야기를 놓치면 재방송이 다시 나올 때까지 다시 기다려야 했기에 TV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만화가 끝나면 다음 이야기를 잠시 보여줬다. 나는 또 TV와 약속을 했다. 주말 이틀을 기다려야 할 때면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 만화방으로 달려가 다음 내용을 미리 본 적도 있었다. 어릴 적 보던 만화에는 설렘이 있었다.
어린이 만화가 유치해질 무렵 자연스레 TV를 보는 시간도 줄었다. 해를 보고 나가 달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시절엔 TV 말고도 재밌는게 많아졌다. 어쩌다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 당구장, 피시방,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주말의 끝은 대부분 TV와 함께 보냈다. 내일 다시 학교에 가야 하는 좋은지 싫은지 모를 기묘한 기분을 프로그램들을 보며 잊었던 것 같다. 다음 날 학교에 모여 전날 보았던 프로그램이 재밌었다고 떠들고 있으면 선생님이 들어와 괜한 신경질을 부리며 앉으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직장인이었던 그 선생님의 월요일 아침 투정이 이해가 된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TV와 함께 자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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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TV를 잘 보지 않는다. 그냥 어릴 적 보았던 만화를 다시 보고 만화책을 찾고 봤던 영화들을 라디오처럼 틀어놓을 뿐이다. 시간이 없어서일까? 나도 세월의 풍파라는 걸맞은 걸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이런저런 이유를 다 찾아보아도 결론은 이거다.
‘그냥 보기가 싫다’.
눈살 찌푸려지는 프로그램들, 스트레스받는 프로그램들을 보고 싶지 않다. 평균을 아득히 넘어선 사람들이 사랑을찾아 나온다. 이제는 엄마 손까지 잡고 나와 맞선을 본다. 왜 이런 사람들의 삶을 보며 설레어하는가? 이혼하려는 사람들도 나온다. 남자도, 여자도 일반적이지 않다.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들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애엄마, 애아빠라는 사람들이 아이를 망치는 모습 덕분에 아이를 낳기 싫어졌다. 연예인들이 먹고 자는 모습을 보며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야’라는 희대의 개소리를 듣는다. 왜 남들의 삶을 보며 웃어야 하는가?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나올 때마다 이제 설레지 않는다. 또어떤 열등감이 나를 불편하게 할까? 또 어떤 비난거리를 찾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래서 보기 싫다. 괜히 몇 번이나 봤던 드라마, 영화를 또 틀어 본다. 옛날이 좋았다며, 이만한 게 없다고 하며 라디오처럼 틀어놓고 딴짓을 한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 불편할 수 있다. 부러워서 비난할 수도 있다. 뭐 어쩌겠는가. 그냥 보다 보면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비난하며 스스로를 깎아먹는 내 자신이 싫다.
문득 예전에 삼둥이들 보며 TV를 꺼라고 했던 매형의 말이 떠오른다.
‘저렇게 키워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