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입학하고 영어 자습서인지 참고서인지를 샀습니다. 그때 별책부록으로 10여 페이지짜리 영어 동화책을 받았습니다. 막 영어를 깨우쳐 가던 시기, 단어를 찾아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고, 말할 수 없는 희열을 경험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신선한 도전이고 설렘이고, 또한 흐뭇한 성취였습니다.
영어교사로 20여 년을 살면서, 영어를 문제 풀면서 정답을 찾아야 하는 고문관으로 대하는 학생들을 만나왔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영어로 된 세상을 즐기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한 채, 괴로움 속에서 단련해야 하는 기능을 키우는 것처럼 영어를 공부합니다.
영어는 외국어입니다. 의도적으로 접촉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이상 늘 수가 없습니다. 이 외국어에 대한 파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문법을 묻는 문제를 푸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문장의 구조(문법)를 익히는 것이 단지 그 자체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된 문장을 이해하고 즐기고, 만들어내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조금 더 즐겁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이유로 영어로 된 아동 청소년(어린 청소년입니다. 14세 미만정도) 소설을 꾸준히 읽어 왔습니다.
첫째는, 제 자신이 영어 직관력을 높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문법사항을 암기한들, 그 지식으로만 암기된 내용이 교과서에 있는 몇 개의 예문을 해석하는 용도로만 이용된다면, 너무 아까운 일입니다.
문법을 이해해서 알겠다는 느낌을 갖는 것과 그것이 머릿속에서 작동해서 문장을 이해하고, 만들어내는데 활용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학생들이 국어 시험은 100점을 못 받지만 우리말은 청산유수로 잘하는 차이, 우리말의 사용은 직관과 경험에 의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인풋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죠.
둘째는, 아동 청소년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 혹은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매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의 감성과 감정, 세상과 어른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인생사에 대한 깊은 통찰이 번득일 때가 있습니다.
중학교에서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이행 과정에 있는 학생들을 대할 때, 제가 답정너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호기심과 인내를 갖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셋째는, 영어로 된 소설들이다 보니 다양한 국가, 문화, 역사적 배경의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말로 타국의 소년소녀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역량 있는 작가님들도 계시지만, 영어를 사용한 작품들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각지를 배경으로 하여 다수의 작품이 있기 때문에 그 지역, 그 시대, 그곳의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넷째는, 아동 청소년 소설에는 즐거움과 감동, 교훈이 있습니다.
비단 영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저는 아동 청소년 소설이 가진 긍정성, 도전, 교훈을 무척 좋아합니다. 좋은 이야기들은 수업시간에도 활용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는 많은 것들은 아동 청소년 소설에 담겨있습니다.
혹시 우울감과 상실감, 다른 부정적인 감정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아동 청소년 소설 읽어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리지만, 죽음, 이별, 학대, 고통, 전쟁, 편견, 장애, 가난, 질병 등 험악한 인생을 꿋꿋이 살아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매거진 '풀다'에서 발행했던 글들을 모아 새로운 매거진으로 엮어가고자 합니다. 이후 추가되는 책들은이 매거진을 통해서 소개하려 합니다.
충실한 줄거리 요약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온전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저의 바람이고, 제 글의 목표입니다.
책의 줄거리를 알고 싶은 분에게는 불친절한 소개글이겠습니다.
대신 20여 년을 교직에 있던 교사, 두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라는 것을 지켜본 엄마, 50년을 살아온 그냥 한 인간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습니다. 친한 친구의 대화를 듣듯이 편안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