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돌아가신 지 1주기가 되는 것을 기념하여, 브런치북을 발행했습니다.
한 땀 한 땀 써 내려갔던 것이 총 41회 차가 되어서, 책을 1,2권으로 나눠야 했죠.
발행하고 나서, 휴대전화로 캡처한 사진을 가족 단체대화방에 올렸습니다.
가족들 중 어느 누구도 제가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눈치를 못 채더군요.
어머니의 이름이 너무 강렬했던 탓이라 생각합니다만, 이미 글쓴이의 존재가 너무나 분명하기에 어떤 이름으로 책이 발행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탓도 있었겠죠.
언니, 오빠와 그리고 나. 또 그에 딸린 확대가족들이 모여 어머니 추도예배를 드리고 돌아온 날 저녁, 딸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브런치 스토리 필명이 뭔지 기억해?"
"음.... 기억이 안 나는데."
"흠. 내가 너한테 헌정하는 나의 첫 브런치 북까지 썼는데, 그걸 잊어버리다니, 엄만 좀 서운하다. "
"에. 미안. 그때 한번 보고, 그 후로는 안 봐서."
"읽어보긴 한 거야? 브런치북 정보로 보면 완독자 수가 나오는데, 그게 1이 안된 걸 보면, 너도 읽지 않는 거 같아."
"헤.... 이상하게 엄마가 썼다고 생각하니까 읽기가 어색해."
"그럴 수도 있긴 하지."
"여보, 당신은 내가 오늘 카톡방에 올린 사진 봤지? 내 필명 어때? 알아?"
"응? 뭐였지?"
"와, 다들 이렇게 관심이 없어서야, 원."
사실 한 번도 언급한 적은 없었고, 캡처 사진을 유심히 구석구석 봤을 거라 기대도 안 했지만, 이건 좀 너무 무심한 거 아닌가?
"내 필명이 점선면인데, 어때? 괜찮지 않아?"
딸이 대답했다.
"별론데."
속으로 발끈,
"왜? 뭔가 이름에 지향점이 드러나잖아.
딱 들으니까 뭔가 떠오르는 게 없어?"
"난, 도형이 떠오르는데. 수학 같아. 세모, 네모, 점, 선. "
오... 이런, 남편은 좀 다르지 않을까?
"여보, 당신은 어때? 점선면?"
"음. 어디 행정구역 이름인 줄. 점선이라고 하는 면이름?"
어머, 지금 이건, 아재개그인가요? 아니면 진지한 당신의 의견인가요?
"와, 사람들이 이래? 점선면 이름을 들으면, 뭔가 직관적으로 딱 느껴지는 게 없냐고?
둘 다 S에스형들이야. 직관형들은 딱 그 느낌 알 텐데."
"엄마, 또 MBTI얘기하지 마. "
남편도 거든다.
"그래, 직관이든 에스든, 뭐가 중요해. 그렇게 대답했다고 에스네, 직관형이 아니라서 모르네 이렇게 얘기하는 게 더 심한 거야."
부녀의 협공이지만, 찌그러들수는 없잖아요.
"와, 그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수학이나 도형, 행정구역이름으로? 아니, 그래도 뭔가 내 뜻을 알아차릴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
"뭔데?"(딸)
"음. 한점 한 점이 모여서, 선이 되고, 한선 한선이 모이다 보면, 면이 된다. 그 한 점을 충실히 찍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면이 완성될 것이다. 이런 뜻인 거지. 나의 깊은 뜻을 내 가족들이 이렇게 헤아일줄 모르다니, 실마-ㅇ이이야아아 아~"
말은 실망이라고는 했지만, 내 가족들을 잘 알기에 이름을 가지고 놀면서 키득거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딸과 장남 삼아 이런저런 후보 이름들도 만들어봤는데, 결국은
"아니, 내가 처음 브런치스토리에 시작한 이름인데, 이게 나의 또 하나의 정체성이고, 바꾸지 않을 거야."로
끝을 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제 정서를 지배한 책 한 권이 있는데, 그 저자가 필명을 사용해서 자신을 감추었었다는 글을 읽고, '언제가 나도 그렇게 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걸 브런치스토리에서 실현했고요, 덕분에 비밀스러운?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로망 하나는 실현한 셈이네요. 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