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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Sep 04. 2023

빛이 있으라

문맹(文盲)을 깨치다

어머니는 30대 후반에 글을 깨치셨습니다.

그 후에 자신만의 시 쓰기 세계에 흠뻑 빠졌고, 60세 즈음에 독서를 시작하고, 70대에 정식적인 시 쓰기, 글쓰기 교육을 받아서 등단하였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시와, 문학, 독서의 세계에서 어머니를 지지하고 힘을 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한수풀도서관 내 소모임 '책사랑모임' 분들입니다.


어머니의 장례 후, 그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형제들이 적은 금액을 기부하였는데, 시골집으로까지 찾아오셔서는 사양하셨습니다. 그래서, 내놓은 절충안이 평소 어머니가 문맹에서 벗어난 것을 큰 감사와 기쁨으로 여겼으니, 문맹퇴치를 위한 활동단체에 어머니의 뜻을 기려 기부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실존하는 분이 아니니 장남인 오빠의 이름으로 기부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뜻을 생각해 주시는 그분들의 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분들의 그러한 마음가짐이었기에, 노년의 어머니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던 것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얼마 전, 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에 대한 감상평을 쓰면서, 문맹자로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a49220c896344b2/127

이 소설에서도 사망한 여주인공의 유산을 문맹퇴치단체에 기부하자는 대화가 오갑니다.

여주인공인 한나가 오랫동안 글을 모른 채 살았고, 그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겼을 뿐 아니라, 글을 몰랐고, 그러기에 무지한 판단과 행동을 했다는 것을, 심지어 자신의 행동의 의미도 잘 모른 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글을 읽게 된 후에야, 과거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을  배우게 되지요.


브런치스토리에 업로드한 얼마 안 되는 제 글에 '책 읽어주는 남자' 말고도, 늦게서야 글을 배우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시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우는 인도소녀 콜리, 오빠의 친구에게 글을 배우는 습지소녀 카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소설에 이렇게 뒤늦게 글을 배우는 여주인공, 남주인공들이 더 많이 존재할 테죠.

현실세계에서 문맹을 퇴치하기 위한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고, 문맹의 세계에서 문자의 세계로 나와오는 실제의 주인공들이 있을 것입니다.


글이란 얼마나 강력한 매체인지!

읽는다(reading)는 행위는 얼마나 강력한 이끄는 힘(leading power)인지!


자신들의 문자가 존재하지 않는 소수민족들이 지구상에 있다고 합니다.

문자가 있어도, 교육 기회가 없어서 끝내 '까막눈'이서, 글자 앞에서는 주눅이 들었던 우리 할머니도 생각납니다.

배움에는 때가 없다고 하지만, 전쟁과 정국의 불안정으로 소년기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지구상의 소년, 소녀들을 생각합니다.


글을 읽기 시작할 때, 더 이상 글을 모르던 때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새로운 국면, '읽기' 그리고 더불어 '쓰기'의 능력이 널리 전해지길 기도합니다.

이 능력이 선함을 세우는 데 사용되기를 기도합니다.


길고 짧은 선과, 크고 작은 원들, 점들이 모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면서 소리를 내어 부른다

그 모양의 약속을 나는 모른다


그에게는 소리, 나에게는 검은 흔적

그에게는 의미, 나에게는 검은 혼돈


알려다오,

글자의 숲 속을 걷는 길을

이 어둠에 빛을 부르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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