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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Aug 30. 2023

과거의 잘못

지금에야 알게 되었을 때_책 읽어주는 남자(The Reader)

The Reader(W&N)/ 더 리더_출처 Daum영화

이李씨(이하 이): 매체의 언어선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독일인 작가가 독일어로, 독일을 배경으로 쓴 소설을 영어번역본으로 읽었어. 영화화되었다길래, 그럼 주인공들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닌가!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았지.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다는 여배우가 독일어도 열심히 연습했겠구나, 생각하면서.


점선면(이하 점): 이 씨가 첫 문장을 쓴 이유를 알겠네. 하하.


: 영화 가득 담겨있을 독일어를 기대했던 는 독일악센트가 담긴 영어가 아쉬웠습니다 그려. 독일어는 1도 모르지만,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큰 지분이 있다고 믿기에.


: 자, 영화산업은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야. 제작진의 판단이 있었겠지. 본론으로 돌아와 책 이야기를 해줘.


: 책은 부제 없이 숫자로 나뉘어서 총 3부로 되어 있어. 1부는 주인공 마이클 Michael(미하엘)과 한나 Hanna의 만남과 성애가 주를 이루고, 2부는 법학대학생이 된 마이클이 법정에서 전범재판의 피고인이 된 한나의 재판과정을 참관하고 관찰하는 과정, 3부는 한나가 수감된 동안 마이클이 책낭독을 녹음하여 우편으로 부쳐준 일, 한나의 사면, 그리고 후일담이야.


영화도 영상미가 훌륭한 수작이긴 하지만, 소설 2부와 3부에 기술된 마이클의 고뇌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아. 왜냐면 영화초반의 두 주인공의 애정행위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법정에서 한나를 보고 난 후 마이클의 심경과 그 이후 둘의 관계에 대한 시선이, 과거 연인에 대한 감정정도로만 보일 수 있거든.


: 과거 인연을 회상하는 정도 이상의 무엇인 있다는 말인가?

: 소설 2부의 키워드를 수치심, 3부의 키워드를 각성이라고 붙이고 싶네.


2부에서는 1부에서 마이클이 언뜻 이해할 수 없었던 한나의 행동들에 대한 이유가 밝혀져. 재판과정에 증거물로 확보된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피고인들끼리 공방이 붙었는데, 다른 피고인들이 전부 한나가 작성한 거라고 주장하거든. 한나는 필적감정을 지시하는 재판관의 명령에, 자기가 쓴 게 맞다고 하면서 자기변호를 할 기회를 날려버려. 마이클은 알게 되지. 한나는 죄가 가중되는 것보다 자기가 문맹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걸 더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와 사랑을 나눈 여름 몇 달간, 왜 그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했고, 모든 활자로 된 것들을 피하고, 무시했는지를.


한나의 수치심뿐 아니라, 마이클 역시 죄책감으로 괴로웠는데, 한나와의 마지막 조우 때 자신이 한나를 배반하는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고, 나치의 전범이 되어 '잔인할 정도로 성실하게'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려 했던 한나의 무지를 보면서 괴로웠어. 그리고,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수 도 있는 치명적인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그로서, 그녀를 그렇게 몰아간 근본적인 이유,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밝혀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지.


3부에 키워드를 '각성'이라 한 이유는, 영화에는 세밀하게 다뤄지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작가의 길고 절절한 자기 고백이 나오기 때문이야. 나치 독일에 부역했던 이들을 부모로 둔 젊은 세대들이 학생운동을 하는 장면이 나와. 그들의 죄를 알지만, 그들을 사랑하기도 하는 젊은이들이 부모들 세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철학적 질문이기도 해. 열다섯 마이클과 서른여섯 한나의 여름한때의 사랑과 그 이후의 찐득한 인연 정도의 로맨스에 머무는 게 아니라, 작가가 나치세대와 전후 세대의 불편하고도 어려운 관계를 비유하는 거라는 인상을 받았어.


한나는 글을 읽지 못했고, 교육의 기회도 없었던 자니 당시에 나치가 어떤 일들을 어떤 목적으로 자행하는지에 대한 판단의 부재까지도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인가?


부모 세대들은 나치에 대한 충성이 민족과 국가의 부흥을 가져올 것이라는 단순한 믿음을 가졌던 것으로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의 무지는 이해받아야 할 측은한 동정의 대상인가?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책임까지 더하여, 전후 새 세대의 비난과 판결을 받아야 할 범죄인가?


마이클은 한나와의 만남이 자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3부에서 각성하게 되지. 한나가 떠난 이후로 그를 지배한 죄책감, 지나간 과거이긴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과거로 남아서 그를 흔드는 존재. 그래서 어떤 여자와도 만족할 수 없는 자신. 책을 읽어 녹음을 하고 테이프를 보내주긴 했어도, 개인적인 서신을 한 번도 보내지 않음으로써 한나와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자기 방어와 회피. 그럼으로써 한나의 행위에 대한 유죄판결에 동조하는 자신을 보는 거야.


한나 역시, 감방에서 독학으로 글을 깨친 후에 나치의 행위를 다룬 책들, 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들을 읽어오면서, 나치의 잔학 행위와 그 가운데서 성실한 책임자로 살고자 했던 자기 행위를 다른 각도로 보게 되었겠지.


: 미성년 소년과 성인 여자의 한 철의 사랑이야기가 아니구나.


: 왜 연상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소년일까, 생각해 봤어. 또래 소녀들의 가지지 못한 성숙함과 강인함.  그 매력에 빠진 순진하고 어린 소년의 욕망. 한나는 마이클의 열망에 가득 찬 시선을 느끼고서도,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한나가 마이클을 대한 방식이 옳았다고 보이지 않아.


한나는 무뚝뚝하게 굴기도 하고, 마이클이 원하는 것을 주는 대신, 마이클에게 요구하고 지배하기도 했지. 순수한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소설말미에, 지역신문에 올라갔던 마이클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한나의 감방 벽에 붙어 있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만으로 한나가 가졌던 마음이 순수하고 아름다웠다고 보이지는 않네.


어리기에 자신의 선택의 옳고 그름, 앞으로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순수한 열망을 이용하는 어른들이 있어. 마이클의 경우에는 육체적인 욕망이겠지만, 현실 세계에서 어린 세대가 가진 욕망은 그것 나뿐이겠나? 미성년자여도 성관계를 갈망하고, 돈을 갈망하고, 인정을 갈망하고, 힘을 갈망하고, 안타까운 경우지만 소속을 갈망하고, 안전을 갈망하기에 좋지 않은 어른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경우들이 있지.  


무지하고 단순한 열망이 어긋난 힘과 만날 때, 정신과 영혼 감정 어느 쪽에서든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을 거야.


: 이야기의 끝을 알려줄래? 감옥에 있던 한나는 어떻게 되었는지?


: 한나는 감옥에서 사면되어 나오는 당일 날,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녀가 돈과 편지를 남겼기 때문에 소설의 끝 부분은 그와 관련된 일화가 나와. 그리고 가장 마지막 화에서 작가는 한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작업을 한다는 걸 밝히지. 과거의 것들이 오늘 현재로 연결되어 있고 변형된 모습을 다시 다가오기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만 글을 씀으로써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면서.


쉽게 읽힌 책이 아니었고, 이번 화 글을 쓰는 것도 쉽지는 않았네.

정말 쉽지 않았어.....


이 마지막 문장으로, 이 책을, 한나와 마이클을 놓을 수 있는 게 나도 좋아.


마이클, 이제는 편안해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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