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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Sep 25. 2023

파괴될지언정

버티며 견디며 패배하지 않는 삶_노인과 바다

이李씨(이하 이): 영미문학 고전 중의 고전,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에 대해 쓰게 되어 기쁘네.


노인 어부 산티아고 Santiago의 망망대해에서의 고군분투만으로 영화가 될까 싶었는데, 약간의 각색을 했더군.

소설에는 존재하지 않는 등장인물인 산티아고의 딸과, 마을 호텔에 숙박하는 미국인 작가 연인이 등장하고, 영화에는 고기잡이를 나간 후, 산티아고의 회상, 산티아고의 귀환을 기다리는 마을 사람들과 작가와 연인, 소년 마놀로Manolo의 삽화가 나와. 이 인물들이 소설 속 작가가 묘사하는 산티아고라는 인물의 특징들과 인생을 대사로 읊어주는 역할을 하고.


점선면(이하 점): 이 씨가 소개해 주는 영화가 '노인과 바다'의 최신판인 건가?


: 1958년도에 개봉된 영화가 있고, 앤서니 퀸 Anthony Quinn이 주연으로 나온 이 영화는 1990년에 개봉했는데 지금은 유튜브에 전체공개되어 있어. 그 후에 다른 영화는 제작되지 않았네.


망망대해에서의  고군분투는 '파이 이야기 Life of Pie'도 생각나게 하지만, 그쪽은 환타지적인 요소도 강하잖아. '노인과 바다'는 철저한 사실주의야.


영화 속 산티아고는 글을 읽으며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건장했고, 햇빛과 바람, 낚시일로 오랜 세월 닳아오고 삭아온 노인의 피부와 손이라고 하기에는 (나에게는) 배우가 너무 고와?보였다는 아쉬운 점이었지만.

 

20대의 나,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바닷가 소년 마놀로 Manolo와 산티아고가 나누는 야구이야기에 시큰둥해졌다가, 산티아고가 바다로 출발하고 나서 과거 회상 이야기 어느 쯤에서 멈추어 '이 지루한 소설이 어떻게 명작이 되었는가?'를 생각했지. 그리고는 멈추어서는 급한 일, 더 감각적인 일에 관심을 쏟아보니, 끝을 못 낸 채 30년이 지났어.


이번에 읽어가면서 이 소설을 읽어 내는 게, 산티아고가 물고기의 제대로 된 모습을 보고 싶어 갈망하며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


'버티어, 견디어, 끝까지 가봐. 그러면 수면에 떠오르지 않았던 물고기가 물밖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처럼, 이 소설의 본모습을 너는 보게 될 거야. '


바닷가마을에서 불운의 상징이 되어버린 산티아고가 물고기와 싸우는 것처럼, 소설을 붙들고 싸워, 끝까지 읽어내니, 아, 알겠다! 이 소설, 인생을 닮았더라고.


원치 않는 힘에 붙들려 고난 속으로 빠졌더라도, 그 끝은 승리를 생각했는데, 아뿔싸, 행복을 방해하는 상어 떼들은 어찌할꼬.


물고기가 그의 미끼를 물었기에 그와 씨름했고, 그의 전리품을 노리고 상어 떼가 왔으니, 힘을 다해 싸웠어.

후회도 했지.

'물고기, 너를 잡지 말았어야 했다.'고. '너무 멀리 왔다'고.

바람의 넋두리도 했지.

'마놀로가 같이 있다면 좋겠어.', '라디오가 있는 배들도 있는데...',

절망이 깊어지기 했지.

상어 떼와 싸우다가 노를 잃고, 칼을 잃고, 몽둥이을 잃고......


하지만, 주어진 인생이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처럼, 산티아고에게 물고기를 낚는 것은 그의 인생 전부이기에, 다른 이들의 평가나 시선과 상관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내일도 그와 같이 살겠지.


: 마놀로라는 소년은 산티아고와 각별해 보이는데, 어떤 이유야?


: 산티아고가 마놀로에게 낚시를 가르쳐줬거든. 마놀로에게 산티아고는 영웅이야. 최고의 어부이고. 마놀로는 산티아고에게 무척이나 헌신적이지. 둘은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고. 나이를 뛰어넘는 소울메이트 soul mate 같은 느낌이야. 십 대의 마놀로이지만, 산티아고의 고독함을 이해하고, 돌봐주고, 그를 찬양하지.


: 마놀로는 힘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산티아고에게 어떻게 위로를 할까?


: 영화의 엔딩은 두 사람이 야구얘기를 하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환한 낮이지만, 소설에서는 고단한 모습으로 잠든 산티아고를 보고 울면서 어둑한 길을 내려가는 마놀로가 나오지.


소설 속 마놀로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처음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잡은 물고기를 보고 놀라서 몰려들었죠. 할아버지가 배를 타고 나간 후 돌아오지 않는 동안,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했어요. 하지만, 그 이야기 들 중에 이런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고 있을 거란 말은 없었거든요.


할아버지가 기력을 찾으실 동안, 아니 그 이후로라도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할아버지를 두고 수군대는 일을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정작 할아버지를 마주 대하면, 어느 누구도 이 물고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 할 거예요. 그냥 물고기 뼈가 파도에 떠내려 가  사라지는 것처럼, 이 일에 대해서 모두가 다 잊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할아버지가 불운의 상징처럼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요.


  아니, 모든 것을 다 잊으면 안 돼요! 할아버지가 그 어마어마한 물고기를 끝내 이기고 잡았다는 것은 기억해야 해요.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 최고의 어부, 아니 세상 최고의 어부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해요. 저는 할아버지에게 배우고 싶어요. 제게 모든 걸 가르쳐 주셔야 해요. 그리고 할아버지의 마음이 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가 되면 이 엄청난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처음 미끼를 물었을 때는 어땠나요? 그 후에 물고기를 어떻게 했는지, 할아버지는 어떻게 했는지, 별과 달은 어땠는지, 바람은 어땠는지, 바다는 어땠는지, 저는 다 알고 싶어요. 그리고, 그 아름다운 물고기를 물어뜯어간 상어들의 이야기도 해주세요.


할아버지의 마음도 말해주세요. 증오하는 마음이 솟아오르면 화를 내셔도 돼요. 서글프면 우셔도 돼요. 고단하면 누우셔도 돼요. 저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차곡차곡 제 마음에 쌓아놓고 기억할 거예요.


  저는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해요. 할아버지는 다른 어부 아저씨들과 달라서요. 다른 어부아저씨들은 늘 불평과 불만이 많죠. 날씨가 좋지 않아서, 배가 좋지 않아서, 어망이나 기구가 안 좋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저는 할아버지가 누구를 원망하는 일을 본 적이 없어요. 날씨나 바다도 원망하지 않죠. 저도 할아버지처럼 바다와 물고기를 아끼고 싶어요. 젊은 어부아저씨들은 바다를 사랑하지 않죠. 물고기를 많이 잡고, 돈을 많이 벌 궁리만 하니까요. 싸워서 이기야 하는 상대처럼 화를 내고 미워하기도 하죠.


하지만, 할아버지 옆에 있을 때 저는 바다와 하늘과 바람과 물고기들과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기분이 좋아요. 순간순간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최선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일들을 생각하며 초조해지지 않거든요.


 이 브리사 바람이 부는 동안 몸을 추스르시고, 얼른 나으셔요. 할아버지가 필요하다고 일러주신 것들을 준비해 놓을게요. 이 바람이 끝나면 같이 물고기 잡이를 나가요. 바다가 우리를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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