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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l 19. 2023

리처드 파커

당신 안에도 살고 있는 존재_파이이야기 life of Pi

LIFE OF PI(Houghton Miffin Harcourt)/ 라이프 오브 파이_출처 Daum 영화

이李씨(이하 이): 이번에도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찾아봤네.


: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봤다니, 영화가 매력적이었나 보네.


: 딸이 졸라서 온 가족이 영화를 먼저 봤고, 영화에 반해서 소설을 읽었는데, 책을 안 읽었으면 내가 원작의 참 맛을 모를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족들에게 영화에 나오지 않은 원작의 에피소드나 영화에서만 나온 에피소드 썰을 푸는 재미가 쏠쏠했어.


: 이를테면?


: 책과 영화의 정보제공방식의 차이랄까.


책에서는 리처드 파커라 불리는 존재가 구명보트를 향해서 수영해 올 때, 왜 파이가 얼른 구해주려 하기보다는 밀쳐내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채로 그 과정을 읽게 되거든.


나중에야 리처드 파커가 사람이 아니라 호랑이라는 걸 알게 되지. 왓! 하는 놀라움의 순간이 오는 거야.


근데 영화에서는 그게 시각적으로, 직접적으로 제공되니까.


그 상황이 놀랍고, 흥미롭고 긴장되긴 해도, 책을 읽을 때처럼, 뭐야? 리처드 파커가 사람이 아니었어? 하는 순간은 생길 수 없는 거지.


글로 쓰기에 가능한, 독자들의 상상을 비트는 재치에다가 소설은 은유와 상징,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느 것을 진실로 믿어야 될까? 하는 의심을 계속 불러일으켜.


실제인지 비유인지, 착각인지, 환상인지, 애매모호하고 기묘한 사건들이 일어나지.


: 뭐니 뭐니 해도, 벵갈 호랑이랑 구명보트에서 수 백일을 보낸다는 설정이 너무 신선하다!


: 그게 정말 벵갈호랑이일까? 아니면 그 또한 작가가 만든 상징적 존재일까? 아니면 다른 것을 대체한 은유적 존재일까? 소설이나 영화말미까지 어느 것이 맞다! 라고 단정하기 어렵게 만들어. 아마 작가가 의도한 바이겠지.


글이든 이미지든,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서 인지적인 오해, 왜곡이 생길 수 있는데, 때로는 작가가 일부러 그런 장치들을 만든것 처럼 보여.


파이가 두 가지 버전을 직접 말하잖아.


구명보트에 올라탄 동물들(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탕)의 이야기. 구명보트에 올라탄 사람들(엄마.선원.요리사)의 이야기.


어느 경우가 되었든, 생존을 위해서 혹은 서로간의 다툼으로 보트에 있던 존재가 하나씩 순차적으로 희생되어야 했어.


그 마지막 생존자가 벵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파이인데, 어쩌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 일 수도 있는 거지.


: 리처드 파커가 파이라는 얘기?


: 영화, 원작을 통틀어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멕시코 해안에 도착한 파이와 리처드 파커가 헤어지는 장면이야.


기진해서 쓰러진 파이의 몸 위를 리처드 파커가 뛰어넘어서서는 해변의 밀림으로 몸을 향하지.


파이의 애절한 시선과 부름을 의식하고 리처드 파커가 잠시 멈추는 뒷모습이 보이고, 그리고는 뒤돌아보지 않은 채 앞으로 힘차게 뛰어가.


파이는 리처드 파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고.

소설에서는 그렇게 이별하는 것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고 했어.


리처드 파크야 말로 표류기간을 버티게 해 준 은인이자, 힘의 원천 아닌가. 그와 공존하기 위해 파이의 정신과 몸의 감각이  예리하게 살아있어야 했으니까.


: 그럼 이 씨는 작가 만들어 낸 은유적인 존재로 리처드 파크를 생각하는구나.


: 영화에서는 파이의 정신적이고, 지적인 세계에 대한 언급이 적거나, 아예 빠져있어.


파이는 평범한 소년이 아니었어.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깊이 관찰하고, 자연에 대해서 사고하지. 종교에도 심취해서 이슬람 성직자, 힌두교 성직자, 기독교 성직자를 두루 만나고 거치면서 신적 존재에 대해서도 깊이 사고하는 이라는 걸 보여줘.


영화에서는 원작에 없는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로맨스가 나오는데, 덕분에 영화의 파이는 좀더 풋풋하고 순수한 인상을 주지.


파이는 구명보틀 탄 채  거대한 대자연의 품속, 대양의 물결 위에 떠 있는 한점 낙엽 같은 신세가 되어 먹을 것도 없이, 내일의 안전도 기약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풍랑과 햇살, 바람, 온갖 자연의 손길을 다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평범한 인간 이상의 각성을 하지 않았을까?


: 자기 구원의 힘은 자신 내부에 있다는 메시지일까?


: 아마도!


독자의 감상이 곧 해석인 것이지, 정답은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인간 자신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점 씨가 말한 문장은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추측할 뿐. 나의 이야기는 아니란 점, 밝히고 싶네.


내가 제목에 리처드 파커가 당신 안에 숨어 있는 존재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야.


위기 상황에 있을 때, 우리가 발휘할 수 있는 초월적인 능력, 감성, 이성, 신성이 작동할 수 도 있고, 반대로 이기적이며, 원초적이고, 사악한 본능이 발동할 수도 있을 테지.


리처드 파커는 두 가지를 다 의미할 수 있다고 생각해.


파이는 망망대해 위, 작은 구명보트 안에서 자신 안에 있는 맹수를 길들이고,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고, 의지하며 살아나갔으니, 멕시코 해변에서의 이별은 분신과의 이별과도 같았겠지.


파이는 생존을 위한 이기적 본능과 대자연 안에서 초월적 존재화 를 때에 따라 바꿔가며 바다 위 시간을  살아 나왔어.


: 이 씨는 리처드 파커가 파이에게 어둠의 힘이자 밝음의 힘이라고 생각하는 거구나.


이: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신성함과 세속을, 영광스러움과 추함을, 사랑과 증오를, 교만과 열등감을, 찬양과 욕설을 하나의 존재 안에 담고 살아. 동전의 양면 같은 두 얼굴이 한 개체의 인간에게, 인류에게 있는 건 아닌지.


얘기하다보니, 다른 이야기가 떠오르네. 인간을 내밀하게 추적하고 관찰했던 인간 아닌 존재. 그에게 인간의 불협과 불일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


: 오호 .. 그럼 다음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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