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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l 12. 2023

원작의 무게를 잘 견딜까?

모스크바의 신사(A Gentleman in Moscow)

A GENTLEMAN IN MOSCOW ( Penguin Group USA   )/모스크바의 신사(현대문학)_출처 yes24


이李씨(이하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소설이라고 생각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해 봤더니 영화화 기사가 있더라고.


: 그런데, 제목은 좀 부정적인 것처럼 들려.


: 원서 분량이 480쪽이고, 번역본은....(검색 중) 724쪽이라는! 한 편의 영화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방대한 에피소드들의 집합체라.


이야기의 장면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읽을 때, 참 재미나고 좋았는데, 이걸 얼마만큼의 시간 안에 욱여넣느냐, 어떤 것을 빼고 넣느냐, 이게 쉽지 않을 것 같아.


: 우리말이라도 724쪽이면 분량의 압박감이 상당한데, 읽기도 힘든 분량의 이야기를 작가는 어떻게 다 써내는 거래?


: 그러니, 나도 궁금해서 작가 검색까지 해봤네.


분량 때문이 아니라, 책에 담긴 서사며, 교양, 역사, 지리적인 언급 등등 읽다가 이렇게 글을 쓰는 작가는 어떤 이인가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더라고.


토종 미국인인데,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국가가 전환되는 시기의 글을 써내는 이! 작가란! 작가에 매료된 기분.


: 훗. 소설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나 보네.


: 역시나 제일 중요한 건, 주인공인데, 아마 내가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 Count. Rostov의 매력에 빠진 데다, 이 주인공을 작가의 페르소나로 느낀 탓에, 이런 멋진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작가도 같은 맥락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거지.


: 자, 그럼 주인공 로스토프백작과 작가를 한데 합쳐서 이 씨를 사로잡은 이 책의 미덕을 세 가지만 골라보자면?


: 독자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다음 세 가지를 꼽을래.


첫째, 아름다운 직조(well-fabricated)

정말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나오는데, 이게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거야.

챕터를 나누고 거기에 맞춰 제목을 달고,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어서 나오는데, 배경이 되는 건조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등장인물들의 개인사와 연결되어 말랑말랑한 서사와 정보가 되는 거야.


둘째, 유머(humor)

읽다가 쿡, 쿡, 웃음이 터지거나 슬면서 웃음이 지어지는 글솜씨. 일단 로스토프라는 인물 자체가 유머감각이 무척 뛰어난 데다가, 주변의 사건이나 인물들에 그가 응대하는 방식이 또 재치 만발이라는 점이지.

등장인물들이 억지로 웃기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작가가 설정한 상황이나 인물과 상황을 묘사하는 글에서 웃음 포인트들이 튀어나오는 거야.


셋째, 인생의 통찰(insight)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가는 역사의 대격변기에 귀족상류층이던 로스토프 백작이 가택연금이라는 형벌을 받아, 메트로폴 호텔에서 보내는 수십 년의 시간 동안, 그가 회상하는 과거의 사건들과 호텔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건들에 대한 그의 시선, 마침내 스스로 세운 계획으로 그곳을 벗어 나온 결정과 그 이후의 행보까지.


곳곳에 작가가 던지는 질문들이 있어. 인생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우연과 계획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 사랑과 책임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우정이란? 헌신과 기여란? 시대의 변화와 과거의 유산이란? 소중한 사람들을 어떻게 기억할지, 어떻게 자유롭게 놓아줄지?


: 이렇게 이 씨에게 행복감을 선물해 준 소설인데, 영화로 나오면 만족스럽게 볼 수 있겠어?


: 그러게.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로스토프 백작, 그의 연인 안나, 사랑스럽지만 당돌한 니나, 조숙하고 배려심 있는 소녀 소피아, 그리고 메트로폴 호텔에 근무하는 등장인물들이 내 상상과 다르면, 실망스러울 것 같아.


아마 나는 영화를 보지 않을 거야. 내 마음 속의 로스토프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흑.


:쯧, 허구의 남자주인공에게 마음을 뺏기다니. 등장인물 중에 그에게 매력을 느끼지 않는 이가 있긴 한 거야?


: 분명한 대척점에 서 있는 이가 한 명 있지. 백작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끼는 이야. 백작을 궁지에 몰아놓으려는 빌런이고.

백작이 별명을 지어줬어. 비숍이라고.


: 대척점에 서 있다는 것은? 정치적인 걸 말하는 건가?


: 가장 기본적으로는 출신에서 출발하지. 백작은 구 러시아의 상류층 귀족이고, 비숍은 그런 배경이 없는 평범, 어쩌면 그보다 못한 계급출신이었던 거고. 그래서 백작이 가진 온갖 종류의 교양을 어떻게든 우스개거리, 쓸데없는 거, 주목받지 못할 일로 만들고 싶어 하지.


물론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에 그 이념에 충실하려는 점도 있고. 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물들은 백작에게 호의적이지. 그가 너무나 매력적이고 인간적이어서. 흣흣.


: 자, 질문 하나만 더 하자. 백작의 연인이라는 안나 말고, 이 씨가 두 여자의 이름을 더 언급했어. 니나와 소피아. 둘은 백작이랑 무슨 관계야?


: 흠흠. 백작과 안나의 러브스토리 라인도 무척 흥미롭긴 하지만, 니나와 소피아도 두 여인도 백작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니나와 소피아는 모녀지간인데, 백작이 메트로폴 호텔에 가택연금된 채로 오래 살았잖아. 그래서 그래서 둘 과 특별한 인연을 맺지.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안에서.


니나가 어렸을 때, 백작은 니나와 함께 호텔 구석구석을 누비며 탐험을 했고, 성장한 니나가 어느 날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는 자신의 딸, 소피아를 백작에게 부탁하고 떠나가.


물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지키지 못했지. 어린 소녀 소피아와 백작의 동거가 시작되는 거야. 그리고...


: 어쩌다가 소피아의 보호자가 된 백작이라, 비로소 백작이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군.


이로서 백작의 인생이 아이를 돌보는 어른의 길로 들어서는 거구만.


: 그렇지. 백작이 소피아의 보호자이긴 했지만, 백작의 삶을 지탱해 준 것이 소피아였어.


물론 연인이 안나도 있지만, 백작은 다른 종류의 사랑을 알게 된 거야.


: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다른 등장인물이 있다면?


: 미치카. 백작의 친구야.


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이고. 백작이 호텔에 감금된 동안에도 둘은 몇 번 만남을 가지는데, 미치카의 인생이야말로 구 러시아의 몰락과 소련의 등장과 함께 한 역사적인 비극을 보여줘. 두 사람의 생과 사가 아이러니하게 연결되어 있어.


결국, 미치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지.


'그 옛날 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 미치카의 말이 소설의 핵심을 다고 있는 거네.

백작은 험하게 흘러가는 시대에, 가택연금이라는 형벌을 받았지만, 반면 그로 인해 인생의 행운을 누린 사나이로군.


: 그저 행운아인건 아니야. 굳이 작가가 제목에 신사 gentleman이라는 제목을 달았는지 이해가 돼.


로스토프 백작을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신사의 모습으로 그려낸 거라. 단지, 로스토프가 상류층 귀족이라는 배경 때문에 '신사'의 자격을 가진 게 아니야. 역사, 철학, 문학, 예술, 음식, 음악에 정통한 데다가 낭만이 있고,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는 따뜻한 인간애가 넘치지.


책 초반에 백작이 되뇌는 말이 있어. 백작의 아버지가 들려준 말로 인용되는데, 다른 이들도 근사하게 느꼈는지 많이 인용되더라고.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지내던 스위트룸에서 쫓겨나 작은 창고방으로 쫓겨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과제를 실감하며 이 말을 떠올리지.


그 이후 삶의 환경은 변했어도 그가 자신의 신사적인 태도를 흔들리지 않고 지켰다는 것, 소설을 그걸 많은 이야기 속에 담아 보여줘. 그게 로스토프의 진정한 매력이었던 거야.


환경과 관계없이 존엄과 고상함을 지킬 수 있다면 당신도 신사.(성별의 구분 없이) 고결한 사람.


: . 신사적인 방법으로 환경을 지배해야겠네.


환경을 지배하고 싶은 자들여, 여기 로스토프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  보시는게 아니라 읽으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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