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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Aug 09. 2023

아빠의 가르침

대지의 심장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이李씨(이하 이): '천붕'이라는 단어를 아는지?


점선면(이하 점): 말 그대로 하자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

: 동료 선생님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다른 선생님이 위로하면서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천붕이라 한다, 하늘이 무너진 것과 같다'라고 하시더라고. 처음으로 그 단어를 들었네.


점 씨에게 말을 꺼내기 전에 사전에서 의미를 찾아봤는데, '친정아버지'라는 특정대상은 아니고 '임금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소개되었더라고.


: 이 대목에 그 단어를 꺼내는 걸 보니, 누군가가 아버지를 잃었구먼.


: 응.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에스페란자 Espenranza가 아버지를 잃고, 그 후부터 고된 시련을 겪기 시작해. 에스페란자의 가족은 멕시코에 살았고, 아버지가 다른 지역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산적대에게 죽임을 당하거든. 아,  이야기의 시대배경이 1930년대, 미국에서는 대공황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고 이야기를 읽어야 해.


에스페란자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는 의붓형제들 중 하나가 에스페란자의 어머니와 결혼을 하려고했어. 그 와중에 어느 날 살던 집에는 불이 나. 에스페란자와 어머니, 그리고 하인 부부와 그 아들 미겔, 이렇게 다섯이서 가진 것 없이 집을 떠나서 미국땅 캘리포니아로 도망 나왔어.


멕시코 고향마을에서 대농장의 딸로 공주처럼 살아왔던 에스페란자가 하루아침에 미국땅에서 이민자노동자가 되어 살아야 했으니, 그 모든 것의 단초가 된 아버지의 죽음이 얼마나 원망스럽고, 아버지가 그리웠겠어? 노동자 캠프로 가는 길, 에스페란자는 미국 캘리포니아 땅을 보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생각하지. '대지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아버지는 멕시코 포도밭 대지주여서 에스페란자에게 자연과, 노동, 결실에 대해서 얘기를 들려줬었거든.


: 에스페란자, 그의 엄마와 같이 같이 미국으로 온 사람들이 하인 부부와 아들이라고 했는데, 이제 미국땅에 정착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런 신분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졌겠네?


: 그렇지. 똑같은 이민노동자의 신분이 되어서, 열악한 노동자캠프에서 살아야 했지. 에스페란자의 엄마는 에스페란자에게 가난하고 헐벗고 초라한 멕시코이민자들의 자녀들과 그녀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우월의식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이후, 에스페란자는 어른들이 일을 하러 간 사이에 아이들을 돌봐주고, 기저귀를 빨고, 청소하는 일을 하다가, 엄마가 병이 들면서 그때부터는 직접 농장에 나가서 일을 하기 시작해.


이제 에스페란자는 하루치 노동이 품삯으로, 그것이 다시 하루의 양식으로 돌아오는 그 소중한 가치를 배우게 되지. 몸이 상하도록 험악한 육체노동에 시달려야 했지만, 엄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비로 돈을 모아야 해서, 에스페란자는 다른 이들보다도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어.


: 부잣집 공주님에서 소녀가장이 되었다니! 그래도 그 노동 속에서 에스페란자가 과거만 그리워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낸다는 게 기특하고 대견하네.


: 옛날을 그리워할 여유도 없었던 거지. 그저 하루의 노동, 하루의 먹을거리를 생각해야 했으니까. 정말로 절실하게 삶이 간절해지니까.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가족부양이 자기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해 봐.


에스페란자는 미국대공황시기에 미국 백인 노동자까지 흘러들어오자 멕시코이민자의 임금을 터무니없이 제시하는 횡포에 멕시코노동자들이 파업을 결행할 때도, 차마 거기에 동조하지 못했어. 왜냐하면, 병원에 계신 어머니의 병원비와 멕시코에 남은 할머니를 데려오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판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대신, 멕시코이민자 파업을 주도해서 쫓기는 몸이 된 동료 이민노동자 마타 Marta를 숨겨주고, 추적대로부터 도망갈 수 있게 해 줘. 그것이 에스페란자가 파업에 가담하지는 못했어도 파업을 지지할 수 있는 방법이었어.


: 멕시코에 남아있던 할머니를 모셔오는 건 성공한 거야? 병원에 있던 엄마는 잘 회복되고?


: 흠, 그것은 비공개. 에스페란자가 그 과정에 좀 마음고생을 하지. 배신감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상세한 결말은 책을 읽은 이를 위한 보너스로 남겨둘게요.


: 그럼, 마지막 이 씨가 보는 이 책의 장점, 그러니까 우리나라 초중등 학생들이 읽을 때 이런 게 좋겠구나 생각되는 점이 있다면?


: 좀 뜬금없는 얘기 같은데....


아들이 군입대를 하고, 어느 날, 중대 현수막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게 너무... 감동이라... 어디서 한 번 읊고 싶었는데, 여기서 한 번 인용을 해볼까 해.


'내가 메고 있는 군장의 무게는 아버지의 어깨보다 가볍다

내가 지금 겪는 고통은 어머니가 나를 낳을 때의 고통보다 가볍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의 무게를 생각했었거든.

13살 소녀 에스페란자의 어깨에 놓인 가장의 무게. 그리고 이민노동자 캠프에 있는 수많은 가장의 어깨에 놓인 무게. 가족들의 식탁에 먹을 음식을 올려놓아야 한다는 절박함. 책임감. 그러기에 노동은 힘든 것이지만, 신성한 것이고, 상황은 열악하지만 그래도 놓칠 수 없는 것이었어.


요즘 젊은 세대가 결혼포기, 출산포기뿐 아니라 '노동 포기'까지 한다는 뉴스를 보니, 저 시대의 가장들이 자신의 몸이 부서지도록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노동에 힘썼던 것들이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인가? 생각이 들거든. 예전에는 당연하던 일들이 지금은 당연하게 아닌 것들이 되는 것들이, 선(善)인지 아닌지 뭐라 말하기가 애매하고, 어려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네.


아, 초중등학생들에게 추천할 만한 점이라는 점 씨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요약.

첫 번째, 가족을 위한 헌신. 어린 나이의 에스페란자가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과 삶을 받아들이고,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

두 번째, 주변의 환경이 변하더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계속될 것이라는 끈기.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향해 고개를 들고, 살아나가려는 하루하루의 노력.

세 번째, 편견과 차별에 맞서기. 미국땅에서 이민노동자의 신분으로 살아가야 했기에 겪는 차별과 편견.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에 대한 시선을 점검하는 기회.



그리고, 이건 나 자신에게 질문한 것인데, 나는 떠나도 내 자녀의 삶을 관통할 나의 가르침, 나의 목소리가 있는가?


에스페란자의 삶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 기둥이 되어주는 아빠의 가르침, 엄마의 사랑, 할머니의 교훈처럼, 내가 세상에 없어도 나를 기억할 때, 내 자녀들이 기억할 나의 목소리를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 이 씨가 기억하는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목소리가 있어?


: 음, 아쉽게도. 아마 그런 목소리는 결정적인 순간, 잊지 못할 장면에 등장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평범한  일상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되어야, 자동재생이 될 것 같아.


그래서 생각하지. 나의 임종 death bed에서 마지막에 내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아니면 내가 매일같이 내 아이들에게 반복하고 반복하고, 새겨지도록 하는 나의 목소리는 무엇인가?  


: 성경  잠언서에서 나오는 '아버지의 훈계와 어머니의 가르침'같은 것이겠네? 이 씨가 남기고픈 어머니의 가르침을 언제고 기회가 되고 나눌 수 있기를!

 


ESPERANZA RISING(SCHOLASTIC)/에스페란사의 골짜기(아침이슬)_출처 yes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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