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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l 24. 2023

어머니, 독립하셔야 합니다

정서적 탯줄을 못 잘라낸 부모

공감의 정의:
Empathy (공감):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을 공유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과 공감을 느낄 때는 그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생각하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깊이 공감합니다. 공감은 다른 사람과 함께 느끼며, 그들의 감정을 정말로 이해하고 공유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예시: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고, 우리도 과거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면, 그들과 공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의 감정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들이 느끼는 슬픔이나 좌절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ChatGPT)


공감이라는 말의 함정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 주라'는 말이 육아 중인 부모와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무슨 만병통치의 명약인것 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해 준다'는 말에서 주의할 부분을 놓치면 어떤 상황이 생기는지 보자.


상황 1

"엄마. 오늘 학교에서 속상했어."

"왜?"

"선생님이 준비물 안 가져온 사람들 손들라고 했는데, 나 밖에 없었어.

아이들이 나보고 준비물도 안 챙겨 왔다고 '너는 또 까먹었냐? 까마귀냐?" 했어.

"선생님이 준비물 안 가져온 사람들 손들라고 한 거야?"

"응."

"아니, 애들이 너한테 그렇게 말할 때 선생님은 뭐라 했어?"

"어, 아무 말도 안 했어.(선생님은 다른 일로 바쁠 수도 있습니다. 준비물 없는 아이를 위해 준비물을 챙겨줘야겠다는 생각 등등 )"


엄마는 아이의 첫마디 '속상'에 깊이 공감됩니다.

친구들이 놀렸다는 말에 '속상'함은 곱절이 됩니다.

이 상황을 만든 선생님이 미워집니다.

자신이 학교 다니던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어서 부끄러웠던 무의식의 감정까지 휘몰아치는 것 같습니다.

왜, 선생님은 준비물 안 가져온 사람에게 손을 들라고 해서, 내 아이를 도드라지게 만들었을까요?

야속합니다. (좀 더 나쁜 상황은, 아이에게 준비물도 못 챙겨갔다면서 야단치면서 한 편으로는 선생님을 비난하는 경우입니다. )

항의를 해야겠습니다.

아이의 속상함을 야기시킨 선생님이 서운합니다.


깊은 공감을 한 나머지, 아이와 똑같은 서운함과 창피함으로 끙끙 앓는 엄마.

아이가 보기에 미더운 어른일까요?

학교로 전화까지 해서, 선생님에게 그 상황을 지적질하고 선생님께 사과받고자 하는 엄마.

아이는 자신의 부족함과 책임의식을 깨닫고 배울 수 있는 경험을 제공받고 있는 걸 까요?


성숙한 공감이 필요합니다.


정서적인 탯줄을 잘라내지 못하고, 아이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분리하지 못한 채

아이의 감정 즉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 휘둘리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가 안정감을 느끼겠습니까?


아이의 감정은 인정해 주되, 성찰의 기회로 배움의 기회로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이의 감정에서 한 발 물러나서 상황을 볼 줄 알고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상황을 보게끔 아이를 다른 입장에 세워 줄 줄 알아야 합니다.


상황 2

"엄마. 오늘 학교에서 속상했어."

"왜?"

"선생님이 준비물 안 가져온 사람들 손들라고 했는데, 나 밖에 없었어.

(듣는 엄마입장에서 속상합니다. 마치 나의 잘못인 듯 느껴져서요.)

아이들이 나보고 준비물도 안 챙겨 왔다고 '너는 또 까먹었냐? 까마귀냐?" 했어.

(엄마로서 한 번 더 속상합니다.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인 실수라서 친구들이 이것을 조롱하는 언급을 했네요.

하지만, 이럴 때 냉정하게 물러서서 공감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친구들이 너한테 그런 말 해서 속상했구나."(공감)


"그런데 선생님은 애들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

"선생님은 애들이 널 놀리는데도 게네들을 혼내지 않아서, 속상했어?"(공감)

"어! 그렇게 놀리는 거 싫어."

"애들이 널 놀리는 게 싫었구나. 선생님이 혼이라도 내주면 좋았을 텐데."(공감)

"선생님이 '거기, 까마귀라고 부르는 사람들 누구예요? 까마귀가 얼마나 기억력이 좋은 새인 줄 알아요?

그래도 조금씩은 잊어버리기도 하는 거예요. 세상 사람 모두 다 전부 모든 걸 다 기억하면, 얼마나 피곤하고 위험해질까요? 우리는 누구나 잊어버릴 때가 있는 거예요.'하고?"(부재한 선생님의 꾸중을 상상으로 대체하면서 긍정적인 메시지로 전환합니다.)


"그래서 오늘 활동시간에는 어떻게 했어?"
"선생님이 주셔서 했어."
"아, 다행이네. 선생님이 주신 걸로 할 수 있어서. 00 이가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다, 그렇지? (선생님의 배려에 감사를 가르칩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매번 대신 준비물을 챙겨서 줄 수 없으니까 다음에는 잘 준비해 가야 할 텐데. 다시 또 준비물을 챙겨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스스로 대안책을 찾게 합니다)

"친구들도 잊어버릴 수 있잖아. 오늘 00 이가 놀림당해 기분 상했으면, 다음에 다른 친구가 잊어버리면 똑 같이 놀려줘야 할까?"(자신이 당한 대로 앙갚음하지 않으므로써 성숙한 행동을 선택하게 해 줍니다.)


조금 이상적인 대화였을까요?

하지만 분명 가능합니다. 다만, 아이의 보호자가 냉정하고 성숙하게 감정을 읽고, 대처하고, (가끔은 판타지를 사용해서 아이의 욕구를 발산시키기도 하고요),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게 해 보고, 해결책을 찾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하게 하려면 부모님이

  

"너무 깊이 공감(아이와 같은 수준의 감정조절)하시면 안 됩니다. 감정은 읽어주되 머리는 냉철하게 한 발 떨어져서 사고하셔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야, 그런 과정을 밟아가는 경험을 하고, 그렇게 사고하는 어른을 보면서 배웁니다.

시간이 흘러, 그런 가르침을 주었던 부모님의 말씀을 더 경청하고 존경할까요?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의 감정조절력을 가지고 해결책보다는 감정의 표출과 비난으로 상황을 타개하려는 부모님의 말씀을 더 경청하고 존경할까요?


어떤 수준의 아이를 자녀로 두고 싶으세요?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이 부모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아, 그나마 그런 아이들이라면 낫습니다.


불운하게 이런 성찰의 도움을 받는 기회가 없는 아이들은, 객관적으로 부모님(포함 다른 이들의 감정)을 살필 지성과 감성이 다 자라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에,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부모님들과 대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신적, 정서적 유아로 남아서 부모님에게 자신의 감정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미루고, 요구하는 아이들 언제까지 감당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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