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들에게 저 단어에 해당하는 가르침이 필요할 때 사용하려고 책을 사긴 했습니다만, 정작 학교에서 훨씬 많이 사용했고, 이 책으로 시작한 아름다운 인성, 가치 덕목에 이끌려서 인성학습도구의 열렬한 애용자가 되었습니다.
좋은 인성을 가진 아이, 청소년 그 너머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무엇이 필요할까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는 절대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보통은 '~을 하지 마라'는 부정형으로 아이들에게 훈계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특성상 인격적으로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인 말과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가치사전에 매료된 이유는, 아이들에게 '어떤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쉽고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 말고, ~하지 않기'가 아니라 '~하기'로 무엇이 더 나은 행동인지 분명하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말할 때도 이 방법은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지각하지 않기'가 아니라 '약속된 시간까지 오는 것'
'큰 소리로 떠들지 않기'가 이나라 '친구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낮춰 말하는 것'
'쓰레기나 자기 물건으로 어질러 놓지 않기'가 아니라 '자기 주변을 말끔하게 유지하는 것'
'-하지 않기/말기'로는 내가 어떤 행동을 원하는지 정보가 전달되지 않고, 아이들은 자기 행동이 부정된다고만 느낄 뿐 어떤 대체행동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아름다운 가치 중에서, 제가 가장 많이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강조하는 덕목이 '존중'입니다.
책에서는 이렇게 '존중'을 설명합니다.
존중이란, 나이 든 어른들을 예의 바르게 대하는 것. 부모님을 공경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것. 존중이란, 숲에 사는 동물들을 생각해 주는 것. 장난으로 나뭇가지를 꺾거나 새를 쫓지 않는 것. 존중이란, 남을 무시하지 않는 것. 남을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는 마음가짐. 존중이란, 친구를 놀리거나, 안 좋은 별명으로 친구를 부르지 않는 것. 존중이란, 내가 형을 부르면 형이 바로 응답하는 것. 형이 나를 부르면 내가 바로 응답하는 것. 존중이란, 학급 회의 때 친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들어보는 것. 친구의 말을 끊지 않는 것. 존중이란, 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보고나 함부로 편지를 뜯어보지 않는 것. 동생의 물건을 내 물건인 양 생각하지 않는 것. 존중이란,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친절한 태도. 존중이란, 얘기를 나눌 때 상대방 눈을 쳐다보고 말하는 것. 내가 하는 얘기를 엄마가 귀담아 들어주는 것. (위의 책 102p~104p)
집에서 온 가족의 사랑을 받던 아이든, 그렇지 않던 아이든 학교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야 합니다. 선생님들과 관계를 맺고, 생활반경의 또래친구들도 넓어집니다. '존중'의 가치가 학습되어야 하고, 학습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이자 태도, 더 나아가 생활의 습관, 더 나아가 인격의 기초석이 놓이는 곳이기에, 다른 가치들보다도 '존중'을 더 많이 자주 말하게 됩니다.
이렇게 된 데는, 동료선생님의 경험담이 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 책을 만나기 전이었는데, 영어교사 심화연수로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5주간 수업관찰, 문화수업을 하고 돌아오신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 초등학교 교실 곳곳에서 '존중(Respect)의 약속', '존중의 자세'를 주제로 엄청난 게시물들이 있었고, 그곳 선생님들이 엄청나게 자주 respect를 강조하시더랍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을 생각해 봐도, 그런 문화는 아니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어떤 아름다운 가치를 선생님들이 말씀하셨던 기억은 (제가 잊은 탓일 수도 있지만) 별로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선배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전까지는 저 역시도 학생들에게 그런 아름다운 가치를 교육적으로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흡수시킬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업 첫날은 강력하게 학생들에게 교사의 인상과 추구하는 가치관을 새길 수 있는 날이기에, 첫날의 시간을 엄청나게 공들여 준비합니다.
2011년부터 그중에 한 꼭지가 'respect(존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남다른 업적을 쌓았거나 사회적인 위치가 높아서 그 대상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admire(존경하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존중'은 상대가 어떠한 상태이던지-가난하든, 나이가 적건, 많거나 간에, 병들었건, 약하던, 소수자이건, 장애가 있건 간에-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자기중심적인 편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허락 없이 그의 정서나 소유, 영역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요즘 부모님들의 자녀교육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고 있긴 합니다만, 저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대학 3학년쯤 그러니까 1993년이네요. 꽤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누가 제 배낭을 뒤에서 툭 치는 것이었습니다. 배낭부터 시작해서 제 등에까지 타격감이 느껴질 정도여서 무척 놀라서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남자아이가, 아마 여서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얼굴에다가 해맑은 미소까지 띠고 저를 올려다보는 거였습니다.
난데없는 상황에 당황했습니다. 저를 쳐놓고 웃는 얼굴은 뭘 말하는 건지! 그리고 저는 정말 지쳐있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이에게 정색을 하고 '치지 마.'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저는 그 아이와 일면식도 없는 데다 무척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부드럽게 타이를 기분도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멈칫하자, 가던길을 계속 걷는데, 뒤에서 아이의 어머니인지 누군지 성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아니, 아이가 좀 쳤다고, 그거에 저렇게 화를 내?'
저보고 들으라는 소리였습니다.
조금 더 기운이 있었다면, 아마 뒤돌아 서서 가서 뭐라도 했을 텐데, 그때는 너무 지쳐있던 터라 어이없는 마음에 한숨만 턱 뱉고, 그냥 걸어왔습니다.
물론, 그 이후로 학교에 신규발령받고 참 여러 가지 경우를 겪었지만, 아마 제 인생에 저보다 어린아이에게 무례함을 당한 첫 충격과 여성분의 비난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았네요. 하하. 어린아이라고 무례한 행동을 했더라도 친절을 베풀어주는 게 좋은 어른인 건 아닐 텐데요.
저의 배낭을 손으로 쳤던 남자아이, 잘 살고 있을까요? 절 비난했던 여성분은 잘 살고 있을까요?
길을 가는 타인의 가방을 뒤에서 난데없이 쳤고, 그것 때문에 화를 내는 사람에게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그런 행동은 해서는 안될 행동이란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 '자기 자식 싸고도는 (잘못된) 사랑에 함몰된' 엄마들은 아마 그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고 다녀도,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보고 좋은 대학 들어가면 자기 자식이 자랑스럽고 뿌듯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부모님들은 부족한 아이의 인성에 마음 졸이고 아파하면서 '사(적)교육 (추가교육, 과외) 이런 걸 시켜볼 생각을 했을까요?
성적은 좋은데, 참 안타깝게도 '존중'이 부족한 학생들도 봅니다. 적어도 나를 만나는 시간 동안은 그래도 '존중'의 가치를 듣고, 목격하고, 자신의 태도를 자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시험문제로 '존중'의 태도와 그렇지 않은 것을 골라낼 줄 알고 정답을 고르더라도, 삶에서 살아내지 못할 거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인성과 태도는 향기와도 같아서, 좋은 가치관과 존중이 기초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에게서는 자연스럽게 배어 풍겨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토양이 없이 자란 학생들이 학교에 오면, 긍정적인 바람이 건데 선생님들과 다른 학생들의 모범을 보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단, 부모님이 훼방꾼이 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본인들이 못 가르쳐준 걸 배울 수 있는 사회의 장인데, 거기까지 쫓아오시면 아이는 무엇을 배우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