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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Sep 01. 2023

가족, 선택하거나 없어지거나

 두 개의 가상 소설

페인트(창비)/멋진 신세계(문예출판사)_출처  yes24/Brave New World(Harper Perennial Modern classiscs)


점선면(이하 점): 한국 청소년 소설과 디스토피아 소설의 고전. 두 소설을 나란히 소개하다니, 오늘의 접점은 무엇인지?


이李 씨(이하 이): 청소년 소설 '페인트'의 저자 이희영 작가님을 학교로 초대하는 행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책을 읽어봤지.


거기에는 나의 고객님들도 한 몫했는데, 수업시간에 'The book was so interesting that I couldn't stop reading.(그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읽는 걸 멈출 수 없었어요.)'이라는 예문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이런 책이 있으면 소개를 해달라고 한 명씩 전부 책 소개를 하도록 했는데, 반에서 두세 명씩 이 책 '페인트'를 언급하는 거였어. 호기심이 생겼지.


읽다 보니, 언제고 북리뷰를 해야 하지 생각하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가 떠올랐어.  내 머릿속에 떠오른 '페인트'와의 연결점을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네.


: '멋진 신세계'의 설정이 혁명적이었던 것은, 가족이란 사회 단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페인트'도 이와 같은가?


: '페인트'에서는 사회적 조직으로 가족이 존재하지. 다만, 정교하게 관리되는 차원으로. 기존 개념의 가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른 점이 추가된 사회야.


 NC(Nation's Children_국가의 아이들)라 불리는 아이들은 가족이 없어-여러 가지 이유이겠지만, 기존 가족의 구성원으로 소속되지 못했기에-국가가 관리하는 아이들이 되어 집단생활을 하다가 18세가 되면 사회로 나가게 되어 있어. 그전에 입양부모를 만나게 되면 NC의 꼬리표를 떼고 가족의 한 성원으로 사회에 나가게 되는 거고.


특이한 점은, 부모가 아이들을 선별  선택하는 게 아니라 NC아이들이 입양을 원하는 예비 부모를 단계별 면접으로 만나고 나서 입양여부를 선택할 수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는 것이지. 페이트는 NC 아이들이 사용하는 은어인 셈이야. Parent's interview(부모 면담)의 줄임말 정도.


입양을 원하는 성인부부 혹은 가족들은 진실하게 아이를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은 정부의 지원금이나 혜택을 계산하고 입양을 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NC관리자들은 심도 있게 부모들의 숨은 동기까지 관찰하고 파악하면서 아이들에게 최적의 부모를 연결시켜 주려고 애쓰지.


: 그럼 이 소설은 이상적인 가족들의 구성으로 되어 있는 바람직한 사회이지 않나? 가족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멋진 신세계'와 어떤 공통점이 있어?


: NC출신 아이들에게 최적의 부모를 연결해 준다는 가정. 이걸 뒤집어 볼까? 현실적으로 이상적이지 않는 가족이 존재한다는 말 아닌가? 소설 배경이 되는 NC 센터의 최고책임자는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받았어. 가장 편안하고 안정감을 누려야 할 가족과 가정이 지옥인 셈이지. 그런 배경을 가진 이가 아이들의 향후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을 이끄는 책임자가 되었어. 얼마나 헌신적으로 관심과 열정을 쏟았겠어?


자, 방금 나는 소설의 설정을 빌어 이상적이지 않는 가족의 존재함을 말했지. 이에 더해 '멋진 신세계'에서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도마 위에서 난도질을 당하는 꼴이랄까? 혈연이라는 관계로 맺어진 이 관계야말로 이상적인 사회로 발전하는데 최고 최대의 걸림돌이자 과거의 악습이었어. 문명이전의 유물이며, 폐기되어 마땅한 사회체제인 것이지.


: '멋진 신세계'는 태아들이 시험관 배양액 속에서 자라고, 계급으로 분류되어 영아 때부터 관리교육된다는 설정인데, 이것이 '가족제도 해체'와도 연관이 있는 거구나!


: 그래, 신세계에서 '가족'은 존재하지 않아. 부모? 왜 중요하겠어? 자기의 자녀? 심지어 그 사회에서는 '어머니' 혹은 '모체 태생'이라는 표현이 가장 음란하고 외설적인 욕이자 저주야.


: 왜 그토록 가족제도를 비난하는 건데?


: 왜냐면, 가족이란 구속은 비합리적이고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래.


사랑이라는 감정이 언제나 늘 한결같이 아름다운 장밋빛 웃음만으로 가득하지 않다는 거,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은 알거라 생각해.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그 반대적인 감정들이 있지. 소설 속, 가족 제도에 대한 저격을 알아볼까?


(중략).. 추악한 모체 태생으로 생식이 이루어진 지던 그 시절...
(중략) 가정이라는 것은 한 남자와, 주기적으로 애를 낳는 한 여자와 나이가 저마다 다른 한 무리의 사내아이들과 계집아이들이 모여서 숨이 막힐 정도로 꽉꽉 들어찬 몇 개의 작은 방으로 구성된다.
집안 식구들 사이의 관계란 얼마나 답답할 정도로 밀착되었으며, 얼마나 위험하고, 음탕하고, 비정상적 요소인가! 어머니는 미치광이처럼 아이들을 품었다. 마치 새끼들을 품는 고양이처럼.
(중략) 가족. 일부일처제. 낭만. 그로 인해 어디를 가나 배타성이 존재했고, 어디를 가나 관심은 한 곳으로만 쏠렸고, 충동과 정력은 좁다란 분출구를 통해서만 발산되었다.
(중략) 내 사랑, 내 아기. 현대인 이전의 한심한 인간들이 사악하고 미치고 비참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어머니들과 연인들, 금기들로 인해 그들은 복종하게끔 훈련되지 않았고, 온갖 유혹과 고통스러운 양심의 가책 때문에, 온갖 질병들과 끝없이 홀로 시달려야 하는 고통 때문에, 불확실성과 가난 때문에 그들은 억지로 강한 척해야만 했다.
(중략) 우리 아기, 우리 어머니, 오직 나만의 소유, 하나뿐인 사랑을 외치고, 내가 저지른 죄, 내가 섬기는 무서운 하나님을 부르며 신음하고,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르고, 열병에 시달려 헛소리를 하고, 늙고 가난한 신세를 한탄한다면, 그런 자들이 어찌 바퀴(사회체제를 의미)를 보살필 능력이 있겠는가?



그리하여 신세계가 내건 모토,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공유한다".


모든 정서적인 연대의 관계를 무너뜨리는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관계만 존재해. 연인사이의 헌신? 사랑? 갈망? 다 헛짓거리가 되는 거야. 그래서, 신세계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사랑의 대사를 들으면서 경멸과 조소를 보낼 수밖에.


가족이 어떤 개인에게 축복일 수도 있으나, 전혀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는 작가의 통찰이 번뜩이지.


이런 책들을 접하면서, 아이들에게 부모님 혹은 가족에 대해 언급할 때 '일반화'를 조심하게 되었어. 학생 각자의 가정사를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늘 너희들을 사랑하시는 부모님'이란 전제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는 거지.  부모와 가족에 대해 얘기할 때, 아이들이 지금 처한 가족의 관계가 누구나가 다 이상적으로 그리는 가족의 모습과 생활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아니까.


: 가족 안에 부부의 관계, 부모와 자식관계, 형제관계 기타 등등 쉽지 않네.


: 그런데 말이야, 이 어려운 관계가 인간사의 기본을 이루게 된 이유는 뭘까?


생물학적인 충동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나은 인간이 되도록 인생의 시험장을 걸어가는 거 아닐까.


아직까지 모체를 통하지 않는 채로 이 세상에 나온 인간 생명은 없었어.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삶, 창조주의 섭리일 수도. 태어나 살아가는 시간에는 의미가 있어. 창조주의 질서를 배워야 하니까.


: 바람직하지 않은 가족들이 존재하는 것도 신의 섭리라고 생각하는 거야?


: 사람들을 고통에 몰아넣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어하는 가학적인 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아니겠지? 적어도 내가 하는 창조주는, 인간에게 선하고 의로우신 분이야. 인간 세계의 고통은 인간 자신들이 초래한 죄의 결과라고 생각해.


어떤 후배가, 고등학교 때까지 교회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세상에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의심을 품었대. 과연 신이 계시다면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회의에 빠져서 믿음을 버렸다 하더군.


그때쯤 나는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었지. 의로운 하나님이 이렇게나 추악한 인간의 죄들을 어떻게 참고 계실 수 있는가? 자기 자식이 잘못된 길을 헤매는 걸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이 하나님 마음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그분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것인가?


: 가족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좀 멀리 왔네.


: 아직.... 끝나지 않았어.

'멋진 신세계'는 이런 사회가 있어요라고 보여주는 걸로 끝나지 않아.


신을, 어머니를, 사랑을, 도덕을 향한 마음을 간직한 '문명화되지 않은 인간 John'이 '문명화된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소설 최대의 갈등이 만들어져.


사회체제를 완벽하게 통제함으로써 사회적인 안정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 안정이야말로 절대 선善이자 신神인 사회에서 John은 자기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게 되지.


휴.

다음에, '멋진 신세계'만을 따로 놓고, 썰을 좀 풀어야겠어. 이제까지 수많은 해석과 자료가 넘쳐나는 걸 알지만, 나의 도전은 계속된다!


: 훗훗. 이 씨, 난 너의 그럼 자세가 참 맘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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