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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Sep 06. 2023

너와 나만의 왕국

영원한 소녀

이李씨(이하 이): 깊고 깊은 숲 속에 비밀스러운 왕국이 있어. 가끔 이 왕국으로 거인들이 쳐들어오기도 하지. 그러면, 이 왕국의 사람들은 성스러운 기도의 장소로 모여서 하늘의 신에게 기도를 했어. 나라를 지켜달라고, 이 왕국에 깃들여 사는 생명들을 구해달라고. 그러면 신비한 하늘의 힘이 거인들을 쫓아내고, 다시 평화를 돌려주었지.


점선면(이하 점): 그런데, 제목을 보니, 이 왕국에는 두 존재만 있는 것 같은데. 너 그리고 나.


: 단짝이라는 말을 알지?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단짝 친구가 있었어. 앞집에 사는 동갑내기 남자아인인데, 거의 대부분 그 애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같이 시간을 보냈지. 학교를 입학하고는 다른 반이 되고, 자연스럽게 이성이다 보니 거리가 생기고, 그래서 중학교 이후로는 말도 서로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어머니가 쓰러지시셔서 시골집에 갔을 때, 그 친구는 벌써 퇴직군인이 되어서 귀향을 했더라. 하루는 우리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점심을 먹었지(그의 가족은 다른 지방에 있고, 그는 혼자. 나는 우리 형제들과 함께). 그로서는 한 40년 만에 우리 집에 오는 거라, 어린 시절 기억과는 사뭇 달랐는지, 얼마간 집안을 둘러보더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느낌 알겠었어. 세월이 흐르는 동안도 옛날 모습 그래로 이듯, 그러면서 더 쇠락한 우리 집. 기억 속에는 반듯하고 컸던 마루와 난간도, 그때 보니 비좁고 낡아 보였을 테니까.


명절에 어쩌다 각자 가족들과 마주친 적도 있었는데, 길게 말을 한 적이 없으니, 참 쑥스럽더라. 사교적인 우리 언니 덕분에 그 자리가 성사된 거였어. 나 혼자였으면 그런 만남도 없었을 텐데.


: 그와 둘만의 왕국을 만들었던 기억이 있는 건가?


: 아니. 시골집이고 아이들보다 키가 큰 유자나무, 귤나무가 들어찬 우영팟을 누비기는 했지만 그런 기억은 없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제시와 레슬리는 미국 시골의 깊고도 울창한 나무 숲에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이름을 지어주었지. 대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온 레슬리와 시골 소년 제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단짝이 되었어.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그런, 뜨문뜨문 집 한 채씩 있는 거주지에서 떨어진 숲 속. 둘은 그들의 왕국에 테라비시아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 왕국의 통치자로서 규칙들을 만들어가.


이를테면, 테리비시 아로 들어가는 의식으로 마른 개울을 건널 때, 그냥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에 매달린 낡은 밧줄을 잡고 공중을 날아서 가야 한다는 것. 그 밖에 테라비시아의 성스러운 기도처에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 등등.


어린 시절, 꼭 숲 속의 왕국은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판타지에 빠졌던 이들이라면 두 사람의 상상과 그것에 기반한 행위가 애틋하고도 사랑스럽지 않을까 해.


: 그런데, 왜 부제에 '영원한 소녀'라고 했는지?


: 나는 내 어린 시절 단짝을 50대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 하지만, 제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어. 제시의 기억 속에 레슬리는 영원이 소녀의 모습으로만 기억될 거야.


소설 전반은 제시가 레슬리를 만나고, 늘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그만의 예술세계(그림)가 레슬리에게 인정받으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성장하는 모습이 나온다면 소설의 후반은 레슬리를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 제시의 성장기라 할 수 있어.


:어쩌다, 레슬리를 잃었는지는 아마 비공개이겠지?


: 그래. 제시는 현장에 있었던 게 아니라, 소식을 전해 들었고, 함께 레슬리와 있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으로 괴로워했지. 제시는 학교 음악선생님의 초대로 다른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거든. 레슬리도 함께 가도 되는지 묻고 초대했더라면! 하는 생각에 괴로워하지. 친구를 잃은 슬픔과 함께 제시가 고통받은 부분이야. 가엾은 제시.


: 제시는 그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나와?


: 이게 좀, 놀라운 부분인데. 이 책을 읽을 때, 한 번도 교회를 가보지 않는 레슬리가 제시의 가족들과 함께 부활절 예배에 가는 이야기, 그리고 제시의 어린 여동생 메이벨의 질문 '레슬리 언니는 그럼 지옥에 가나요?'에 대한 제시 아빠의 대답에서 기독교에 호의적인 감정을 전달받았어.


이 소설에 대한 검색에는, 이 책이 빈번하게 검열의 표적이 되어왔다는 내용이 나오더군.

제시와 레슬리가 자신들의 왕국에서 신성한 의식을 치른다거나,  하나님이 아닌 미지의 존재를 'Lord(주)'라 부르는 장면이나, 레슬리의 죽음과 관련된 지옥이냐 구원이냐의 논쟁문제로.


책은 1977년 출판되었고, 1978년 뉴베리상을 수상, 그 이후로 미국 아동문학의 고전이 되었는데, 그때 이후 종교적인 논쟁거리가 되었다는 게, 너무 경직된 종교적 가치관으로 평가한 게 아닌가 싶어.


: 그럼, 이 씨가 생각한 레슬리의 죽음과 구원은 어떤 거야?

: 교회를 가지만, 예수님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던 제시에 반해서, 교회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나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아름답다고 한 레슬리. 레슬리의 죽음 후에 제시는 레슬리의 구원문제로 괴로워했지. 소설 속 어디에도 레슬리가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언급이 없으므로, 아빠가 제시를 달래주기 위해서, '레슬리 같은 아이라면 지옥에 갈 리가 없다'라는 말 때문에, 기독교도인들의 지적을 받았는지 모르겠어.


소설에서는 현실에서든, 구원의 문제는 제삼자의 목격이나 판단으로 판별되는 게 아니야.

십자가에 고통 속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예수님. 그 곁에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달려 처형당하고 있던 죄수가 있었어. 그리고, 예수님께 구하지.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저를 기억해 주소서."


그들의 대화는 짧았고, 소리는 낮았고, 멀리서 바라보던 이들에게는 목격되지 않은 사건이야. 하지만, 구원은 이루어졌지.


레슬리의 죽음의 순간, 그의 영혼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알겠어?

자기 아들을 주시기까지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믿음의 고백을 한다고 해서 너무 늦었다고 차갑게 거절하지 않으실 거니까.


죽음의 순간, 예수님을 구원자로 초대한 레슬리가 이런 말을 남겼기를 상상해.


나는 이제 가벼워져서 떠오르는 것 같아. 빛이 보인다. 테라비시아를 넘어 새로운 왕국으로 나를 인도할 빛인 가봐. 너무 눈이 부셔. 제시 안녕.


Bridge to Terabithia(HarperEntertainment)/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사파리)_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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