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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Sep 13. 2023

위악僞惡의 옷

따스한 햇살이 벗겨내다

이李씨(이하 이): 명랑, 발랄함이 조금 과한 나머지, 어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은 아이들이 있어. 자기주장이 강하고, 호불호가 분명하며 이에 대한 표현이 명확하고, 어른이나 질서에 순응적이지 않고.

이런 모습의 열한 살짜리 여자아이와 어느 날부터 같이 살게 된다면 어떨까?


여기, 캐릭터는 말괄량이 삐삐, 상황은 빨강머리 앤을 떠올리게 하는 두 인물의 어디쯤으로 보이는 소녀가 있어. 이름은 질리 홉킨스 Gilly Hopkins, 정식 이름은 갈라드리엘 Galadriel Hopkins. 별명은 '무시무시한 질리'. 가는 곳마다 사고를 일으키는 말썽장이지.


소설은 질리가 임시위탁모인 트로터 부인Mrs. Trotter의 집으로 향하는 시점부터야. 차 안에서 풍선껌을 질겅질겅 씹고 앉아 있어. 트로터 부인을 보고 나서 질리는 한층 더 삐딱해지지. 왜냐면 트로터 부인의 비대한 몸과 두꺼운 안경, 정리되지 않는 차림과 지저분한 집안을 보고서 호감을 잃었거든.


대신, 다른 집과는 특이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집에는 어니스트 Ernest라고 일곱 살짜리 남자아이가 있는데,  꼭 맞을 걸 두려워 피하는 것처럼 몸을 움츠리고 방어적으로 행동하고 평상시에도 신경질적인 행동을 하거든. 처음에는 질리도 어니스트를 괴롭히는데 재미를 들였지.


점선면(이하 점): 집 정리도 제대로 안 되는 트로트 부인, 사고뭉치 질리, 이상행동 어니스트까지 세 사람의 동거가 순탄치 않았을 것 같네.


: 질리도 이들과의 생활이 싫고, 어머니가 그리워서 돈을 훔쳐 달아나보기도 했지. 그런데, '스며든다'라는 말을 들어봤지? 트로터부인과 어니스트, 그리고 이웃인 랜돌프 할아버지. 질리는 어느새 그들을 신경 쓰고 마음에 담아두고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 그들에게 베푼 자신의 정성과, 그들에게 받는 정성들이 질리의 마음에 한 방울씩 물감처럼 떨어져, 어느새 질리의 마음색이 달라졌던 거야.


반면에, 친엄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과 기대가 산산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 돼. 질리는 늘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고, 데리러 올 것을 기대해 왔지만, 어느 날 느닷없이 등장한 외할머니의 존재로, 친엄마가 자신과 살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더 이상 찾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뚜렷하게 알게 된 거야.


: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가슴으로 나은 사랑이 피보다 더 건강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같네.


: 그래. 질리는 언젠간 엄마가 자신을 찾을 거란 기대감이 있을 때는 위탁가정에 마음을 둘 필요가 없었고, 마음을 두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못된 짓을 골라하면서 사람들의 실망시키고 화나게 했었어. 그런데 질리는 이제, 정말 누구에게 마음을 두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지.


: 그럼, 질리에게 트로터부인과 외할머니라는 두 선택지가 놓인 거야?


: 인생사가 뭐든 자신의 선택대로만 흘러가겠나? 미성년자 질리는 어른들의 결정대로 인생의 다음 국면을 맞이하게 될 거야. 하지만, 트로터부인의 위탁가정에 보낸 시간은 질리를 변화시켰지. 그것이 진정한 관계의 다른 국면으로 질리를 인도할 것이라 생각해.


교육 현장의 인용구 중에 이런 말이 있어.


가장 사랑이 필요한 아이는 가장 사랑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을 요구한다.


딱, 소설의 초반부를 읽어나가면서 떠올랐던 문장이야.


엄마의 사랑이 그리웠기 때문에, 엄마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안정감을 찾고 사랑받으려 하는 마음조차도 부정해 버리는 위악僞惡. 하지만  트로터부인과 이웃 랜돌프 아저씨, 질리의 6학년 선생님 해리스 Harris 양이 보낸 따뜻한 손길이 그 단단하고 거친 겉옷을 한 꺼풀 벗겨내게 했던 거야.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더 어리고 약한 존재 어니스트에게 사랑을 베풀고 돌봐주는 경험으로 질리는 한층 더 성장했고.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사랑할 대상이 있을 때 그리고, 그 대상과 유대와 소속감이 건강하게 유지될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거였지.


: 그럼, 사랑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사랑을 요구하는 학생들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연민이라고 생각해. 그런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부정적인 환경에 놓였다는 것은, 그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는 고통을 받아왔거나, 고통받는 상황일 거라는 거. 그것만으로도 안쓰럽지.


문제행동은 쉽게 변화되지 않고 되풀이될 수도 있지만, '존재' 자체에 대한 연민을 갖는다는 것은 그 행동을, 아이를 대하는 나의 자세와 마음가짐의 영향을 주고, 결국 그것은 어떻게든 연민 없는 상태에서 아이와 대립할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라서. 그런 감정과 정서의 자기장이랄까 파장은 분명 존재하니까. 그건 해당 아이나 주변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진다고 믿어.


: 이씨, 너무 이상적인 거 아니야? 그게 늘 가능하겠어?


: 쉽지 않지. 하지만, 지향점은 분명해야지.  


정말 자신이 없는 것은, 위악이 아니라 진짜 惡함이 느껴지고 보일 때야. 내가 이렇다고 말해도 되는지, 감히 심판할 자격은 없지만.


현실세계에서 성인이든 미성년 아이이든, 연민이 답이 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무섭고 괴로워.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누군가는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 되는가.

그들의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있었던 것인가, 없었던 것인가?

어둡고 탁한 세력에 빠져드는 것은 본성인가, 온전한 선택인가?

  

: 말괄량이 소녀가 사랑을 배우고,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하다가 끝이 왜 이렇게 무거운 건데?


: 어떤 새드엔딩의 소설(그리하여, 이 소설은 청소년소설이 되지 못했다)에서는 주인공이 밝고 환하고 따스한 세계로 나가는 대신 그늘 속으로 몸을 피하고 어둠에 동화되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냥 주절 거려 봤네.


고드름처럼 뾰족하게 날 선 감정, 봄날의 햇살처럼 푸근한 사랑을 만날 수 있기를.


바닥이 깨어진 독처럼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 영원히 마르지 않은 사랑의 근원에 닿아  채워지기를.


그 온기와 사랑의 여린 줄기, 나를 통해 흘러가기를.


The Great Gilly Hopkis(HaprerCollins)/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비룡소)_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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