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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Oct 09. 2023

강江의 부활

끝나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이李 씨(이하 이): 제주에서 나고 자란 탓에, 서울에서 처음 보게 된 한강의 위용은 정말 놀라웠지. 과연 오 백 년 도읍지의 젖줄이라 불릴만하다, 감탄하며 바라봤어.


강변도로를 따라 늘어서 빌딩과 아파트들, 잘 가꿔진 가로수와 가로등으로 낮은 낮대로 도시의 경관을 보여주고, 밤은 밤대로 반짝이는 조명으로 화려한 얼굴로 바꾸는 도시. 그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강물, 어느 한순간도 멈춰서 있지 않으나, 늘 한결같고 여전하다는 역설.

강은 참으로 매력적이었어.


오늘은 강江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난생처음으로 강의 발원지를 상상해 봤어. 한강 위로 수백 번 지나다니면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물줄기의 시작에 대해.

내가 지나온 도도하고 장대한 한강의 모습이 되기 전, 그 물줄기들은 어떠하였을까?


소설은 강의 여행을 그림처럼  묘사하고 있어. 높은 절벽 위, 질척한 땅으로부터 신비한 힘으로 솟아난 물기들이 모여 흐르고, 물줄기가 되고, 그 물줄기가 모여서 흐르는 물이 되고, 폭포가 되어 바위산에서 떨어지고, 다시 흐르고, 그러면서 점점 더 넓어지고, 격류가 되어 흐르다가, 잔잔히 흐르다가, 멀리 멀리로 흐르고 흘러서, 먼 데  바다와 만나는 곳에 이르기까지.


강의 여행이 시작되는 곳에서 그 이후 모든 여정을 내려다보는 위치의 시점. 아름다운 상상의 그림을 그려보게 해 준 책, '리버보이 River Boy'야.


점선면(이하 점): 소설의 주인공이 발원지에서 강의 여행을 지켜보았던 모양이군.


: 그래. 주인공 제스 Jess(Jessica)는 열다섯 살 소녀인데, 어느 날 검은 머리의 소년을 강에서 만나게 돼. 그 소년은 할아버지의 일로 마음이 괴로웠던 제스에게 해결방안을 제시해 줘.  검은 머리 소년는 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제스에게 강의 발원지가 되는 바위산 정상으로 와달라는 부탁을 하거든.


제스는 약속된 날 새벽, 암벽을 타고 올라가서 소년과 만나. 그리고, '강의 일생'을 한눈에 보게 되지. 마치 사람의 '인생'과도 같은 강의 운명에 대해서 소년이 하는-아마, 작가가 '인생'에 대해 하고 싶은 - 감동적인 문장들을 듣게 돼.


: 제스는 물줄기가 흐르는 강물만 대면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강과 대면하고 있는 듯하군. 강의 시작과 여정과, 그 끝이 있는 것처럼. 인생에도 탄생과 여정과 죽음이 있지 않나.


: 점 씨의 추측이 맞아.


제스는 심장발작을 일으켜서 몸상태가 지극히 좋지 않은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와 함께 여름휴가로 강가 별장을 찾아왔어. 그곳은 할아버지가 열다섯 살이던 해에 큰 화재로 부모님과 집을 다 잃고, 떠났어야 했던 고향이지. 과거와 미래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늘 현재를 붙잡고 현재에 집중하고 충실하게 살라는 할아버지 답지 않은, 과거 찾기였어.


할아버지는 자기의 인생의 막바지에서, 그곳으로 돌아와서 꼭 하고 싶던 일이 있었는데, '리버보이 River Boy'라고 제목을 붙인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었지.


또 한 번의 심장발작으로 더 이상 붓을 들 힘조차 잃어가는 희미한 생명, 제스는 그 마지막 길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작품을 완성하도록 고집스럽게 몰아붙여. 왜냐하면, 그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을 때, 할아버지는 결코 평화 가운데 잠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거든. 할아버지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소녀였고, 할아버지의 고집스러운 성정과, 예술에 대한 집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그렇게 제스에게 할아버지를 몰아세워서라도, 작품을 완성하게 한 동기도, 실은 강에서 만난 소년이었어.


강가에서, 노쇄해지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슬퍼 울고 있는 제스에게 다가와서, 그녀가 할아버지의 팔이 되어주어서, 할아버지의 그림을 완성하도록 도와주라고 했거든. 소년의 말처럼 제스는 할아버지의 손을 감싸 쥐고, 할아버지의 팔의 되어서 함께 색칠을 해나가지.


: 아! 그럼, 할아버지는 그림을 완성했고, 제스는 그 보답으로 소년을 만나러 강의 발원지로 올라간 거구나.


: 실은, 소년이 원하는 것은 발원지에서 만나는 것 이상의 것이 있었어. 하지만, 제스는 그 요청에 대해서는 선뜻 승낙할 수 없었어. 그렇다고 소년은 제스를 기다리지는 않았어.


자기가 해결해야 하는 자신의 문제가 있었고, 거기에 골몰하는 것처럼 보였어. 자기의 시간이 되자 지체하지 않고, 강물 속으로 몸을 던져 헤엄쳐 나가지. 강물을 따라. 저기 멀리 보이는 바다를 향해서.


소년의 요청이 무엇일지, 무척 궁금해지겠지?


한 가지만 알려줄게.


제스가 새벽녘 강의 발원지 바위산을 향해 길을 떠나기 전, 할아버지의 잠든 모습을 보고 집을 나섰어.

소년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제스는 부모님과 할아버지가 브레머스의 병원으로 급하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할아버지의 옛 동네친구가 제스 부모님의 부탁을 받고, 그녀를 기다렸다가 알려주었거든.


그다음, 제스가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은, 그날 밤 아홉 시, 여름휴가를 보내던 별장에서 똑바로 가면 40Km, 차로 가면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 70Km가 되는 브레머스의 한 병원이었어.


제스는 어떻게 그곳까지 갔을까?

검은 머리의 소년은 누구였을까?

할아버지가 그토록 완성하고 싶어 했던 생의 마지막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과정일까?

마지막의 이별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소설은 마치 고요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잔잔히 들려주네.


때로는 격정적인 슬픔의 순간이 솟아났어도 다시 잔잔히 만드는 강의 물줄기처럼, 제스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를 물줄기의 흐름 속에 감추고 거두고 품어 데려가.


비단, 제스의 마음만일까?

우리가 미처 알지 못 하는 수많은 무명의 사람들. 그들의 한, 설움, 바람, 생명과 꿈까지... 미처 알지 못하는 지구 상의 많은 강물들은 그 많은 사연들을 품은 채 흘러왔어.

말없이, 깊은 침묵으로 봉인한 채로.


단, 그가 삼키고 비밀에 부쳤던 사연의 조그만 조각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만은, 강물은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소설의 끝, 제스는 강의 발원지에 서서, 소년이 들려줬던 말을 다시 생각해.

'강은 끝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모습을 부활한다'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지며 제시가 작별을 고하지.

'안녕, 리버 보이.'

River Boy(Simon Pulse)/리버보이(놀)_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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