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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Oct 16. 2023

길 잃은 소녀

알래스카를 걸어 살아남다


이李씨(이하 이): 동물들 중에서 인간과 영토싸움을 한, 인류의 최고 라이벌은 누구였을까요?


인간들처럼 무리 지어 생활하고, 서열체계와 역할분담이 있고, 일부일처제이며, 신체적인 힘은 인간보다 우위에 있고, 영민함도 갖추고 있는 동물.


인간의 견제를 받은 덕분인지, 인간의 동경을 받은 덕분인지, 반인반수의 괴물이라는 상상에  인간이 이 동물로 변화하는 설정이 꽤나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을 만큼, 인간과 정신적 육체적 연대의 대표성이 있는 동물.


점선면(이하 점): 인간의 야수화野獸化라고 하면 단연, 늑대인간 아닌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있고, 그 배경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털이 무성한 고개를 젖혀 울부짖는 머리, 그 아래 우람하고 강인한 어깨!


이 씨가 제목에 쓴 '길 읽은 소녀'늑대인간인건 아니겠지?


: 오늘의 주인공 줄리 Julie는 상상 속 늑대인간들처럼 보름달 뜨는 밤, 늑대로 변하지는 않았어도, 늑대들이 하는 것처럼 웅크려 고, 이를 드러내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고, 배를 보이고 눕고, 코를 대고, 늑대들의 울음을 울었지.


책이 1972에 출판되었으니, 이미 오래전 이야기인 셈이야. 하지만, 당시의 알래스카 이누이트족의 생활상과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점, 작가와 아들은 야생늑대를 연구자들이어서, 실제 늑대와 인간의 교감과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성공한 경험에 입각해서 글을 썼다는 점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진실을 담은 허구라고 볼 수 있어.


: 야생늑대들이라면 인간의 주거지와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었을 텐데, 어쩌다가 줄리는 그런 곳으로 발길을 향한 거야?


: 주인공은 이누이트 족이고, 원래 이름은 미약스 Miyax인데,  엄마를 어렸을 때 잃고, 아빠와 둘이 물개사냥을 위한 오두막에서 지내며 툰드라의 삶의 방식을 익히며 자라고 있었어. 어느 날 사냥을 나간 아빠가 돌아오지 않게 되자, 고모를 따라가서 살게 되고, 서구권 교육이 시작되면서 줄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돼.


하지만, 고모는 따뜻하게 줄리는 품어주는 인물이 아니라서, 줄리가 13살이 되던 해에 다니엘과 결혼을 전제로 그 집을 떠나도록 해. 다니엘은 정서적,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소년이어서, 그 집에서의 삶도 행복하지 않았어.


다니엘의 어머니는 줄리를 인부 부리듯이 몰아치면서 관광객들을 위한 옷들과 상품들을 만들도록 해. 어느 날 다니엘이 다른 한 무리의 청년들에게 놀림을 받은 후, 도리어 줄리에게 화풀이로 폭행을 하지. 이에 충격을 받은 줄리는 몇 가지 물건과 약간의 식량만 챙기고 집을 도망쳐 나와.


이제, 활량 한 알래스카의 벌판에 발길이 닿은 줄리, 우연히 늑대의 무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식량을 구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방법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지. 늑대 무리의 대장에게 인정을 받고, 무리에 들어가야만 했지.


: 이 씨가 제목에서 알래스카에서 살아남았다고 한 걸 보니, 늑대무리가 줄리를 받아주긴 했구나.


: 음. 줄리가 무리의 대장 아마로크 Amaroq를 주목하고 그를 관찰하는 내용, 그리고, 무리 전체를 관찰하고 그 서열과 규칙을 배우고, 무리에게 수용되고 나서, 늑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내용이 흥미진진하지.


동물이지만 고결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표현해야 할까, 대장 아마로크는 줄리를 처음 받아 줄 때, 그리고, 무리의 대장으로서 무리 전체를 책임지는 모습이 위엄 있고, 고상해.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늑대 같다'는 건 욕이 아니라 칭찬으로 들릴 거야, 아마.


아, 물론 늑대의 무리 중에서도 약삭빠르게 굴거나 늦되거나, 책임감이 없어서 무리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축들이 있기도 하지만.


늑대무리는 먹이를 찾아서 이동을 해야 하고, 계절이 변하면서 줄리도 먹잇감이 줄어가는 늑대무리에 계속 의존할 수 없어서, 나름대로의 살 길, 갈 길을 정하고 무리와 이별을 하지.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는 거야.


줄리의 목표는 미국으로 가는 거였어. 미국에 펜팔친구가 있었거든. 항구로 가서 편지를 보내고, 친구가 초대를 해주면 그곳으로 가서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툰드라의 벌판을 걸어. 늑대무리와 지내면서 배운 생존 기술, 아버지에게 배운 생존 기술로 먹을거리를 구하고, 옷을 해 입고, 신발을 기우면서 말이야.


소설의 후반에 줄리의 정신적인 지주와 같던 두 존재, 아빠와 아마로크를 다시 조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두 존재 모두 줄리에게는 큰 슬픔을 주고 말아. 서구화되는 사회, 밝은 빛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도사린 어둠이 있어. 두 존재는 그 빛이자 어둠인 힘에 영향을 받았지. 구체적인 사정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읽어보시기를.


: 마지막으로, 이 씨가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을 말해주고 싶다면?


: 이누이트족인 줄리는 아버지와 이누이트 공동체로부터 삶의 방식을 배우는데, 그들이 사냥을 하면서도 대상이 되는 동물들의 영혼까지도 섬세하게 살폈다는 점.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기에 줄리는 홀로 툰드라 황야 속에 몇 가지 도구만으로 스스로 생명을 지키고 살림을 지속한다는 점.


그들에게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하는 공존의 대상이고, 하나로 연결된 운명공동체 같은 느낌이야. 줄리가 전해주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오늘날 자연을 학대, 착취하는 인간의 이기심과는 대조적이지.


소설의 시간적인 배경은 이렇게 알래스카 원주민 이누이트족의 삶에 균열이 생기는 시점이야.

줄리는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할지 기로에 서게 돼.

줄리의 선택은 어딜 향할까?



오늘의 책은 '줄리와 늑대 Julie of the Wolves' 입니다. 1973년 뉴베리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래전 출판된 책이고, 우리 문화권에서는 그 매력을 잃었는지, 우리말 번역본은 절판이 된 상태네요.

Julie of the Wolves(Harper Trophy)/ 줄리와 늑대(가나출판사)_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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