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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Oct 23. 2023

엄마라고 불러도 될까요?

키가 크고 수수한 당신

이李씨(이하 이): 이 책을 소개하려니, 감회가 새롭네.


2002년 아들을 낳고, 맞벌이로 일을 하려니 아이 맡길 곳을 찾다가 '공동육아' 공동체와 인연이 닿아 동고동락한 지 9년이 지난 시점, 2013년.  


평일 저녁과 밤, 주말, 휴일. 공동육아 공동체 모임 아니면 교회모임으로 짜인 '나 혼자의 시간'을 찾기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가, 드디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기 시작했어.


아이들도 자기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찾을 정도의 나이가 되어, 집에 와서도 우리는 따로 또 같이 한 공간에 머물되,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졌거든.

 

영어교사로 11년 차, 학교일은 익숙해져 가는 대신, 영어는 교과서 교재연구나 연수 말고는 혼자 연습하고, 충전할 시간 없이 소모적으로만 살아와서 내심 불안하고 갈증이 깊어진 시점이었어. 그래서, 마음먹었지.

'영어 원서를 읽자.'


첫 책이 바로 이 소설이었어.

'Sarah, Plain and Tall'


어떤 영어교사가 이 책을 교재로 원격연수하는 강좌가 있길래, 좋은 책이겠지 생각하고 구매했지. 1986년 뉴베리상 수상작이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잔잔한 이야기와 감동, 편안히 읽히는 단어와 문장으로 영어원서 입문서로 지금도 사랑받고 있어.


다만, 잔잔한 이야기와 여운 있는 문장들 행간에 숨은 깊은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아동청소년 독자들 보다는 성인들이 더 수월할 것 같아.


나도 이 책을 읽을 시점에 열한 살, 아홉 살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다 보니, 책에 나오는 아이들의 마음이 깊이 와닿았고. 제목 속 인물 새라Sarah의 감정과도 쉽게 연결되었어.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울림은 못 느꼈을거야.


점선면(이하 점): 제목이 말해주네.  

엄마를 두고 싶은 마음, 엄마라 부르고 싶은 마음!

어떻게 아이들은 새라를 만나게 되는 건지?


: 열한 살 애나 Anna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조금 남아 있는데, 이제 일곱 살이 되는 갈렙 Caleb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 조금도 없어. 왜냐면 엄마가 갈렙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거든.


애나와 갈렙의 아빠 제이콥 Jacob은 미국 중서부 어디쯤 시골에서 농장일을 하면서 두 아이들까지 키우자니 너무 힘에 부쳐서, 신문에다가 신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

그때쯤에는 그렇게도 신부를 구했었나 봐.

마침 그 광고를 보고서 새라가 편지를 보내오지.


: 만나보지도 않고서 바로 결혼은 승낙하는 건 아니겠지?


: 흠. 블라인드 웨딩 같은 게 아니라, 한 달을 같이 지내본다는 전제로 새라가 제이콥의 집으로 와.


새라의 등장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이었겠어. 새라의 첫 편지에 애나, 갈렙, 제이콥은 각자 답장을 써서 보내고, 새라는 또 세명 각자에게 답장을 써주었는데, 갈렙은 자기에게 온 편지지가 헤어지고, 잉크가 번지도록 그 편지를 애지중지하면서 품고 다녔어. 그런 묘사만으로도 갈렙의 기대와 설렘이 느껴지지?


그러니, 두 아이는 새라 곁을 맴돌면서, 그녀가 혹시나 떠나온 고향마을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떠나가지는 않을까, 자기들에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지.


소설은 그렇게 애나와 갈렙, 새라, 제이콥이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어. 요즘 영화나 소설, 드라마의 속도감과 자극적인 사건들에 길들여진 독자들이라면 뭐, 이렇게 심심한가 싶을 정도로 그들의 생활은 잔잔히 흘러가.


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넷이 서로의 관계를 키워가고 싶어서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려고 궁리하고, 그 마음을 담아 건네는 표정과 몸짓, 배려 깊은 말들은 은근하게 빛이 나.


: 소설의 끝은, 해피엔딩이길 바라네.

그렇게 엄마의 다정한 손길과 표정, 따뜻한 품이 그리웠을 두 아이들의 물음

'엄마라고 불러도 될까요?'에 새라가 '노'라는 대답을 하지는 않았기를.


: 흠, 사라입장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 이상의 결정이지. 제이콥의 신부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야.

새라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는 소설을 읽어보기를 권할게.


이런 생각이 들어. 사랑이라는 건 저절로 솟아나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 이상의 다짐이 요구된다는 것.

새라와 제이콥의 가족들은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에게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친밀해져 가. 하지만, 가족으로서 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그들은 '헌신'을 결단해야겠지.


이 소설은 꼭 혈연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서로를 아끼며 세워주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가족을 이야기하기에,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꾸준히 사랑받는 것 같아.  


가족의 성과 해체가 더 다양해지는 요즘 같은 때,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자극적인 표현과 영상으로 담은 온갖 스토리텔링이 난무하는 이때에, 은근한 빛과 온기로 '가족 됨'을 보여주는 이 소설, 참 좋아.


오늘의 소설은 'Sarah, Plain and Tall'입니다.

우리말 번역서는 '엄마라도 불러도 될까요?' 외에, '키가 크고 수수한 새라 아줌마'(현재 절판)이 있습니다.


Sarah, Plain and Tall(Harper Collins)/ 엄마라고 불러도 될까요?(풀빛 미디어)_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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