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Feb 04. 2024

당신과 나의 감옥

그 밖에서 만나요

이李씨(이하 이): 탐스러운 복숭아 사진을 표지로 한 책, 레이버데이 Labor Day(노동절)을 소개할게. 원작은 성장소설이라는 색채가 강하고, 영화는 로맨스 영화라는 느낌이야.

둘 모두 13살 남자아이인 헨리 Henry가 내레이터라는 점은 동일한데, 아무래도 소설은 헨리의 관찰과 느낌이 더 섬세하게 드러나지.


3월  개학을 앞두고 있어서 이 소설이 생각났어.

미국은 노동절(9월 첫 번째 월요일) 다음이 새 학년 개학일이거든.


점선면(이하 점): 그런 휴일 이름이  제목으로 사용된 이유는?


: 영화 포스터에 보이는 남녀 보이지? 여자는 헨리의 엄마 아델 Adele이고, 남자 프랭크 Frank는 노동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 목요일에 헨리와 아델이 마트에서 우연히 만나서 집으로 데려온 사람이야. 데려왔다가 보다는, 자기를 집으로 같이 데려가 달라는 요청에 거절하지 못하고 승낙을 한 거지만.


: 마트에서 마주친 남자인데, 어떻게 집으로 데려올 수 있어? 납득이 안되는데?


: 아델의 정서상태가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고,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아델은 남편과 이혼을 해서 집에 남편이 없다, 그리고 프랭크의 말투나 표정이나 몸짓이 무척 간절하면서 뭔가 위협적인 부분도 있었기에, 아델은 헨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승낙한 부분도 있다는 설정.


제목에 쓴 대로, 아델은 자기 스스로를 가두어놓고 살아가고 있었어. 우울과 고립을 택했던 것이고, 헨리는 그런 엄마 곁에 있으면서 아빠처럼 엄마를 버리지 말고,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고 있었지. 그래서 영화를 보면 헨리의 표정이 어두워. 세상 거칠 것 없는 철부지 십 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


: 프랭크의 요청도 일반적이지는 않잖아. 마트에서 만난 소년과 그 엄마에게 자기를 데려가라고 하다니!


: 프랭크는 죄수였어. 맹장수술을 받느라고 병원에 입원한 사이, 수술 후 정신이 깨자, 병실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주한 거였지. 무려 살인으로 18년형을 받은 살인범이었답니다!


탈옥수였지만 프랭크는 남편, 아빠의 빈자리를 노동절이라는 연휴기간에 빠르게 채우고, 두 사람에게 인생에 오래도록 두고두고 그를 떠올리게 할 사랑의 추억과 더불어 야구하기, 차와 집을 수리하기, 요리하기 등 생활의 기술들을 전수해 주지.


세 사람은 가족은 아니었지만, 이상적인 가족이 누릴만한 서로 간의 유대와 지지, 감사, 행복을 짧은 기간 누리는 거야. 그러니, 그 이상적인 상태를 더 오랫동안 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자연스럽겠지?

그들은 미국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갈 계획을 세워.


하지만, 헨리는 한편으로 엄마가 프랭크를 선택하는 대신 자기를 버리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도 들어. 성장소설이잖아.

사춘기의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느끼는 불안과 의심, 애정이 섬세하게 그려져.


: 어떤 결말인지 무척 궁금해지는데, 아무런 장애 없이 도피가 성공할 것 같지는 않군!


: 며칠 만에 헨리와 아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남자가 어떻게 살인범이 되었는지에 대한 일화가 나오는데, 그 부분이 프랭크에게 딱한 마음이 들도록 해. 억울하고 안된 느낌이 들거든. 그러니, 독자로서 아델과 프랭크가 잘 되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도 생기고.


점 씨가 궁금해하는 결말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분명해져. 헨리가 성인이 되고 한참이 지난 후쯤에나.


수감된 프랭크와 헨리가 연락이 닿게 된 계기가 재미있어. 프랭크가 수감된 감옥 도서관에 있던 잡지에 헨리의 빵집이 소개되어 있는 거야. 헨리의 가게 간판 메뉴인 복숭아 파이, 이 레시피가 프랭크에게 낯설지가 않았던 거지. 왜냐면, 자기가 헨리에게 직접 가르쳐 준 거였으니까!


: 프랭크가 감옥에 갔다니, 그 사이에 한바탕 소란은 어쩔 수 없었을 것 같군. 하지만, 이 씨의 말을 들으니 결말은 따뜻하고 몽글몽글하니 행복하기를 기대하게 되네.


: 이 소설과 연관된, 개인 일화 하나 말할게.

구독하는 월간 출판물이 있었거든. '생명의 삶 Living life'라고. 이 소설을 읽기 전 일인데, 초등교사인 지인이 교도소 도서관에 기부할 책을 모은다고 했어. 몇 년 치 모아뒀던 거를 가져다가 주었지. 그리고서는 잊어버리고 있었지.


그런데, 이 소설에서 감옥에서 들어온 잡지를 읽는 주인공이 나오잖아. 그것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자기의 특기와 관심도 알고, 연습하고, 희망의 빛줄기를 잡게 되고!

내가 보낸 책들이 누군가에 작은 빛이라도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고 뒤늦게 바라고 기도했지.


그때 이후로 다시 차곡차곡 모은 월간지가 성경신구약 전체 한 질 가까이 되어서, (이 말을 '생명의 말씀'사 관계자님들은 싫어하시겠지만), 반복해서 돌려보기 하고 있는 중이야.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책이 성경이라고 생각해. 읽을 때마다 늘 새로우니까.


'생명의 삶'은 성경묵상가이드 책인데, 말씀 해설과 예화까지 있어서 말씀을 이해하고 기도하는데 많이 도움이 되거든. 한번 읽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기도 해서.  성경책 돌려보듯 묵상책도 돌려보는데, 좋아.


몇 해전 책을 다시 펼치면, 이맘때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들이 있었더라, 하고 돌아보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때는 힘들고 어려웠던 것도 시간이 지나니 희미해져 있거나 기억이 안 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망각을 선물해 주신 것이 한편으로는 참 감사하네.


: 소설과 영화얘기하다가 한참을 딴 길로 갔네. 원점으로 돌아가서 정리 좀 부탁해.


: 내가 망각이 허락되어서 감사하다고 했지만, 잊히지 않을, 잊어서는 안 될 일들도 있잖아. 아델과 프랭크에게는 그 해의 노동절 며칠 동안의 기억이 그 후 십수 년 동안 잊을 수 없는 일이 되었어.

인생에 이렇게 결정적인 만남이 있기도 하지.


프랭크는 신체를 가두는 물리적인 감옥에서, 아델은 마음과 정서를 가두는 영혼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인으로 서로를 만날 거야.


보이지 않는 마음의 감옥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아델을 불러낸 사랑과 같이, 지금 갇힌 영혼을 부르는 예수님의 다정한 음성.

그 음성에 반응해서 마음  감옥의 빗장을 열면, 인생에 잊지 못할 만남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맥락 없는 말이라고 노여워는 말아줘.

오늘 나의 마음이 어쩐지 이리로 이끌려 왔네.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방아쇠를 당길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