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李씨(이하 이): 먼저 리뷰한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에서 책이 하위 계층에게는 매력 없는 대상으로 잠재교육이 되고, 권력을 가진 지도계층에게만 비밀리에 허락되는 독점적인 소유물로 나왔었지. '기억 전달자 The Giver'에서도 책은 기억보유자만 소유할 수 있었어.
미래 디스토피아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책'은 불온한 것이거나,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만이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소설에서 책은 '불태워져 마땅한 구시대의 악'으로 묘사되지.
점선면(이하 점): 불온서적 불태우기는 이 씨가 리뷰를 쓴 '책도둑 The Book Thief'에서도 있었는데, 불태워 없앤다는 것은 증오의 대상에 대한 최고의 형벌 같은 느낌이네.
이: 이 소설에서는 책이 숨겨진 장소를 확인하면, 아예 그 집까지 불태워버릴 정도인데, 가끔은 화염 속에서도 책이 있는 집을 빠져나오지 않은 채 책과 함께 불태워지기를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지. 그래서, 방화수(책을 불태워 없애는 일을 하는 자)인 몬태그Montag는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일에 대한 의심에 빠져들지. 하지만,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하루하루 충실히 살아가다가, 그만, 인식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인물을 만나게 돼.
바로 옆집에 사는 소녀 클라리스 Clarisse. 퇴근길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눈 사이인데, 그녀를 만나고 나서 몬태그는 자기가 하는 일, 자기의 세계에 대한 다른 감각, 다른 시선을 가지게 되는 거지.
그 탓이라고 해야 하나,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예전 같으면 일상적으로 해치우던 책의 화형식에서, 몬태그는 남몰래 책을 몇 권 숨겨와서 자기 집 환기구통에다가 숨기고, 읽기 시작해.
사회에서 용납받지 못할 행동을 했으면, 끝까지 비밀로 간직하고 가면 좋았으련만, 몬태그의 아내가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들인 자리, 그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의 부박함에 못 견디게 되어버린 그가 그만, 자기가 책을 읽어왔다는 사실을 공표해버리게 되는 거지.
점: 아내는 몬태그에게 어떤 존재야? 평소의 관계가 그 이후 사건전개에 영향을 줄 것 같은데.
이: 사랑 없는 부부. 그녀가 쫓는 감각과 만족은 TV모니터와 이어폰에 있어. 깊은 감성과 정신적인 영역은 말초적인 정보와 감각들에 밀려나있기에 몬태그의 변화를 이해할 수도 없고, 수용할 수도 없어. 몬태그는 무척 외로운 남자였던거야. 부부사이의 균열이 초래한 결과를 어느 날 몬태그는 충격에 휩싸여서 직면하게 돼. 뭔지는 책으로 확인하길 바라.
어쨌거나, 충격적인 그 사건을 지나면서, 방화수였던 몬태그는 살인자로 신분이 갑작스럽게 변해버리게 돼. 이제, 몬태그는 당국의 추적을 받는 자가 되어서 숨 막히는 도주가 시작. 개인적으로는 이 도주의 서사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봤고, 작가가 말하는 디스토피아는 단지 책을 불태운다는 것 이상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라고 느껴졌어.
이건, 여기서 나누고 싶어서 생각을 풀어볼게.
몬태그의 추적은 동시간대의 라이브 방송으로 생중계 되. 그가 지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경찰들이 준비하고, 추격하는 장면이 송출되고.
이 사회에는 거미를 닮은 모습의 추격견(사이보그 개)이 있거든. 무척 무섭고 혐오스럽게 묘사되는데, 이 개들이 몬태그를 좇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지. 마침내 개들이 몬태그를 따라붙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몬태그의 몸으로 덮치고, 상공에서는 헬리콥터로 불빛들이 어지러이 흩어지며 몬태그의 마지막 모습을 비추지. 방송은 성공적으로 살인자를 처치했다는 소식을 내보내지.
그.런.데,
반전.
(강력한 스포일러를 던지려다가, 숨을 가다듬고 말머리를 돌립니다.)
클릭.클릭. 클릭.클릭.
보고. 듣고, 클릭한다.
탭, 탭, 탭,
보고, 듣고, 탭한다.
생각과 질문의 과정은 생략된다.
감정은 클릭 혹은 탭하는 순간만큼이나 빠르게 전환되어서
충격, 동정, 감동, 연민, 슬픔, 잠시 오는가 싶던 감정과 감성은 클릭과 함께 사라지고, 시선을 붙잡는 다른 감각으로 바뀌겠지.
보여지는것 이면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어.
점: 이건,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과도 비슷하군. 오늘날 숏폼의 매체가 거세게 밀려오고 있어. 자극적이고 빠른 영상들. 책은 미래사회에서 살아남을까?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책도 사라지고, 책이 사라지면 책을 수색해서 불태워야 할 일도 없을 거고. 그런면에서 이 소설은 그래도 과도기의 한 지점이라고 해야겠는데. 이미 어린 친구들은 문자의 정보보다는 시각정보의 세상을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니.
이: 책으로 읽을 때 나의 상상력은 구시대에 머물렀던지, 영화로 표현된 미래세계를 보면서 진일보한 기술의 세계와 복잡한 기계와 통신의 세계를 상상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네.
영화는 공식 트레일러만 봤고 전체를 본 게 아니라서 원작의 내용을 어떻게 가감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몬태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기계문명화된 모습은 현시대의 SF 답다는 느낌이야.
SF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나로서는,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구버전의 영화(1966년 개봉, 프랑스영화 스틸컷 참고) 정도까지가 내가 그려본 미래사회였다는 걸 알았어.
점: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네. 몬태그가 살았던 사회는 권력을 소유한 자가, 시민이 책을 읽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권력을 사용해서라도 책의 존재를 말살하려 했겠지. 왜 그랬을까? 그들이 책을 없앰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 그 대답은 책의 마지막 부분을 참고하면 좋겠군. 이 통제사회를 벗어나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서 남기려 하는 것, 이들의 목숨까지도 내걸고 지키려 하는 것. 그들 자신에게 지운 숭고하고 성스럽까지한 책임의식. 인간을 인간답게, 인류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모인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서.
점: 이 씨, 오늘 너무 불친절하다. 다 애매하고 모호한 말들이야.
이: 가끔은 말을 하는 것보다, 말을 아끼는 것, 침묵하는 게 힘든 법이야.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답을 찾을 곳은 널려있지 않는가. 한 번은 제대로 읽어보시라는 의미에서 말을 아끼며 여기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