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Dec 13. 2023

그리운 할머니

그리고, 이야기

이李씨(이하 이): 두 손녀딸에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애자(화자의 할머니)가 삼십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나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더라. 자식들 성장해서 다 타지로 떠나는데, 제일 병약하고 모험심이 적었던 우리 아버지가 고향에 남은 덕분에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지냈어.


나의 할머니도 정말 멋진 이야기꾼이셨지. 특유의 극적인 성대모사와 동작까지 곁들여 가며 자청비, 설문디 할망, 오백장군 같은 제주도 설화부터, 당신이 어렸을 때 본 도깨비불 얘기, 일제강점기 얘기, 6.25 전쟁 얘기. 그냥 살아온 이야기들을 해주셨어.  아는 내용인데도 또 해달라고 하면, 할머니는 언제든 또 하셨어. 손녀의 부탁이 싫지 않으셨던 거겠지?


이참에 우리 할머니 이름을 남겨보자.

진. 효. 아. 님... 손녀딸이 이렇게 불러봅니다.

할머니, 고맙고, 그리워요.


점선면(이하 점): 오늘 책의 등장인물 할머니와 자네 할머니는 이야기를 잘한다는 공통점이 있군.


: 그렇긴 한데, 조금 다른 면도 있어. 우리 할머니는 당신이 살아온 역사라면, 솔직 담백하게 얘기를 하셨거든.

시집와 보니, 할아버지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어서, 할머니는 이른바 후처가 된 셈인데, 심지어 큰 각시(본처)는 장애가 있어서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지낸 얘기, 할아버지가 한량시절을 살다가 변화된 이야기. 뭐, 손녀딸에게 따로 숨기시는데 없으셨달까?


아니, 그보다는 내가 당신이 살아온 세월의 이야기를 아무런 판단도, 귀찮음도 없어 그저 재미있게 들어주는 손녀딸이라 다른 사람에게는 못 꺼낸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


별다른 여흥거리가 없던 그 시절의 농촌 마을, 넘치는 시간, 무료해질 찰나에 할머니의 연기까지 곁들여진 이야기는 나를 얼마나 매료시켰던가! 할머니도 긴 무위의 시간 중에 이야기를 함으로써 손녀를 기쁘게 하고, 자신의 치유까지 겸하였던 것이리라.


(점 씨의 눈짓을 느낀다)

아! 책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 애자에게는 두 손녀딸이 있는데, 소설의 화자는 작은 손녀, 릴리Lily야. 자신을 조용한 아시아 소녀(QAG_Quiet Asian Girl)라는 범주에 두고, 'invisibility_눈에 띄지 않음'이 자신의 초능력이라고 서두에 자신을 소개해.


할머니와 떨어져 지내던 지내던 Lily의 가족이 할머니와 함께 모여 살기 위해서 이사를 하는 과정이 소설의 시작이고. 한때는 같이 모여 살았던 때가 있어서, 릴리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는 호랑이와 어린 두 자매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어. 우리 전래동화는 해님, 달님이 된 어린 오누이인데, 소설은 자매라는 설정으로 할머니가 우리 전래동화를 손녀들에게 들려줬던 거지.


할머니의 호랑이 이야기를 무척 사랑하는 릴리. 할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호랑이를 모습을 보게 돼.

착각인가? 환상인가? 자신을 의심하던 차에, 릴리는 다시 또 호랑이를 보게 되고. 급기야 둘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


: 와, 호랑이가 백주대낮에 길거리를 활보한다거나, 어린 소녀와 대화를 한다는 설정이면 이건 판타지 아닌가?


: 아무려면 어때. 이야기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잖아. 릴리는 자신과 할머니의 주변을 맴도는 호랑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서, 또 하나의 진실, 할머니가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며 이제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


그리고 우리 할머니와 다른점. 릴리의 할머니는 숨겨둔 이야기가 있었어!


소설은 호랑이와 할머니, 할머니와 릴리, 호랑이와 릴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래서 할머니가 숨기려 했던 것과, 호랑이가 찾으려 했던 것, 릴리에게 숨겨져 있던 것들과 발견하게 되는 것들의 연결이라고 볼 수 있어.

그리고 반복되는 떡rice cake의 등장!


결국, 이 과정에서 릴리는 언니 샘Sam, 엄마,  또래 남자아이 Ricky와 대립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면서 성장하게 되지. 아! 물론 할머니와 보내는 시간, 할머니의 이야기가 릴리를 혼란스럽게도 하지만 가장 릴리를 강하고 단단한 아이로 만들게 해 줘.


: 작가는 어떻게 이런 한국의 전래동화에서 주제를 따와서 소설을 쓸 생각을 한 거지?


: 나도 그게 궁금해서, 소설을 읽기 전에 먼저 작가의 말을 읽어봤거든. 작가가 한국 교포이고, 실제로 할머니에게서 한국동화를 들으면서 자랐다고 해. 많은 부분 리서치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과, 할머니에게 들었던 것들을 연결하여 이야기를 완성하게 되었다고.


소설에서 나오는 일화들이 동양적인 것들, 예를 들어서 고사(제사 지내는 것)와 액땜, 좋은 날 받는 거, 부적처럼 쑥이나 진주를 품는 것들이 있어서, 미국문화권에서는 이국적으로 느껴졌겠다 싶더라. 호랑이라는 동물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은 것도 그렇고.


하지만, 인류보편의 정서. 사랑, 가족, 그리고, 죽음과 이별, 자아의 발견과 성장은 공통된 것이기에, 문학적인 인정을 받고,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는 뉴베리상을 수상(2021년) 했겠지.


: 죽음과 이별이라는 말이 무겁고 아프게 들린다.


: 음. 문학의 일종의 감정의 예방주사 같은 것 아닐까? 내 경험치 밖의 상황과 감정으로 나를 데려다 놓아보는 것, 이야기 속 인물의 생각과 마음속에 들어가 있어 보는 것.


더불어, 내가 경험한 감정과 기억들이 소환되면서, 그 시간을 되새겨보며 뭔가를 배우게 되는 것.


나는 조금씩 죽음을 향해 가는 할머니 애자의 모습 속에서, 지난해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마지막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길. 죽음을 향한 막바지의 걸음.

나이가 든 다는 것. 너무나 당연했던 내 감각과 신체의 기능들을 하나씩 잃어 간다는 것. 거기에 고통까지 더해질 수 있다는 것.

내가 언젠가 겪을 그 길. 그리고 내 가까이 있는 사람이 그 길을 걷는 것을 보게 될 수 도 있겠지.

....... 나는 용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늙음과 죽음이 싫어서 막아보려고, 피해보려고 기발한 상상을 하기도 하겠지.

이렇게 쓰고 보니, 오스카 와일드 Osca Wilde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The Picture of Dorian Gray' 이 떠오른다.


그래, 다음 편엔 그 소설에 대해서 써야겠어!


이번 화의 소개한 책은 'When you trap a tiger'이고 우리말 번역서는 돌베개에서 나온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입니다.

 

이미지 출처_yes24


매거진의 이전글 탈체된 뇌의 지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