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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an 10. 2024

Nomadland 노매드랜드

영화적 각색을 안 좋아해요

이李씨(이하 이): 이전 글-넛지로 배운 인생교훈(책 '개을 훔치는 완벽한 방법'리뷰)-이 느닷없이 집을 잃고 차에서 지내게 된 가족이야기라, 이 책이 떠올랐네.


2021년 영화로 개봉되고, 엄청난 이슈가 있었는데, 영화에 대한 호평 속에 영화보다 먼저 책을 읽었거든.

영화에 대한 리뷰를 몇 편 보긴 했는데, 그때 이후로 영화 전체를 보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


점선면(이하 점): 훌륭한 영화라고, 영화시상식에서 상을 쓸었다는 평을 아는데도, 영화를 볼 생각이 들지 않았던 이유라도 있어?


: 같은 책을 읽고도, 누군가는 이것을 영상으로, 한 사람의 인생으로 스토리텔링을 할 마음을 먹는데, 나는 그런 창조적인 생각까지는 못했다는 게 질투가 난 건 아니고. 후후


책에 담긴 저널리스트 작가의 시선과, 영화에 담긴 각색자이자 감독의 시선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는데, 나는 저널리스트의 기록에 한 손 들어주고 싶어서.


영화 소개해설 유튜브영상 몇 편을 보고 뭔가를 판단한다는 것이 자격이 있는가 싶긴 하다.


: 자, 노매드랜드라는 영화를 감동적으로 보신 분들이 많을 텐데, 이 씨가 책을 선호하는 이유를 말해보시게.


: 첫째, 건조한 논픽션이라는 점.

작가는 길 위를 사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여정을 사실적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바로 지금 그들의 삶과 그들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도 적어가지. 각자가 다른 이유로 그 길에 들어섰고, 하지만 성글게 보이는 연대감으로 모였다가 헤어졌다 하면서 조금씩 더 연대감을 깊어지고, 커지는 과정이 잘 보여서.


영화는 영화적 스토리텔링으로 가상의 주인공 인물이 등장하고 그녀가 겪는 상실에 초점이 맞춰져. 그 상실과 우울, 고독감을 몇 배나 증폭시키는 영상.  흠... 그게 영화적인 승리이겠지만, 책 속에 나온 이들의 감정은 꼭 그런 우울만은 아니었다는 것이지. 이를테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 처럼 분노와 막막함에 바로 집을 나온 그 순간부터 전투적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둘째, 책에 나오는 실제 인물인 린다 메이의 스토리 때문에.

영화에서도 실제 린다 메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지. 영화의 주인공 펀의 여정에서 만나 이야기를 하기도 하거든. 책에서는 린다 메이가 트레일러를 몰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장면부터 시작이 되어서, 아마 내가 그 인물에 애착을 갖는 건지도.


중요한 건, 책의 전체를 관통하여 그녀의 삶이 이어지는데, 그녀는 영화 주인공 펀처럼 자발적인 유동민의 삶에 만족하고 그 삶을 선택하지 않아.

그녀는 계속적으로 그녀가 정주할 곳, 바로 그녀만의 집을 가지기를 소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탐색하고 있다는 점이지. 

책의 말미에 그녀와 작가가 서로 영상통화를 하면서 그녀가 집을 짓기를 꿈꾸는 곳을 답사하는 내용이 있어. 재정적인 여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구할 수 있는 땅이 제한적이고 열악한 조건이지만, 그녀는 그래도 자신의 땅과 집에 대한 소망으로 들떠있었지.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후반부에 스스로 유동민의 삶을 선택하고 계속 여정을 이어간다는 리뷰를 보고, 씁쓸하더라. 금융위기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로 어쩔 수 없이 처음 유동민의 삶을 시작했는데, 영화는 '정주'를 염원하는 이들의 간절함은 보여주지 않고, 홈home이 없는 게 아니라 집house이 없다, 우리는 houseless일 뿐 homeless는 아니다. 그러니, 문제 될 게 없지 않느냐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이지.


셋째, 유동민의 삶도 모두에게 허락된 것은 아니란 점.

이도 책에서는 꽤나 비중 있게 다뤄지지. 영화를 본 분은 알겠지만, 미국의 유동민에는 유색인종이 없다는 사실. 트레일러나 차를 가지고 미국의 대륙을 이동하면서 한시적 일자리를 구하며 살아가는데, 이것도 실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기회는 아니야.


유색인종으로서, 혹은 이주민으로서, 특히나 흑인으로서 유동민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백인들보다 몇 배는 가혹하고 힘든 사회적 조건이라는 것이지. 차를 주차해 두는 것, 근처의 건물들을 이용하는 것, 일을 지원하고 찾는 것. 모두가 그들이 유색인종이라는 사실 때문에 시선을 끌게 되고, 그래서 백인들은 듣지 않을 질문과 점검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


이 세 가지를 총합하여, 내린 결론은

영화는 너무나 영화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진 허상과 같은 느낌이라는 것이야.

원작의 작가는 이 영화를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내가 작가였다면 20퍼센트는 만족, 70퍼센트는 불만족스러울 것 같아.


그녀의 작품이 주목받는다는 사실은 기쁨이었겠지만, 그녀 자신의 목소리는 변색되고, 무디어진 것 같아서 말이야. 실제는 어떨지 모르겠어. 그냥 내 생각일 뿐.


: 흠, 근데, 이 영화 엄청나게 많은 상을 수상했는데, 이 씨의 영화적 소양이 너무 떨어지는 것 아닌가?


: 때로 시상은 상을 주는 자의 권력의 시전 아닌가. 자신들의 리그에서 대상을 길들이는 방법이라는......


물론 아름다운 영상과 잘 짜인 스토리, 감동적인 대사들이 어우러지고, 관객들이 만족하는 걸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그 상으로 영화에 등장했던, 그리고 앞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될 이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이전의 동정보다는 더 많은 긍정? 용기 내지 못했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용기?

영화는 영화일 뿐, 삶 자체는 아니지 않나.

실제 유동민의 삶에 기반한 논픽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였다면 나는 오히려 더 담담했을 것 같네.

아니면, 아예 픽션이었던가.


이 참에, 다음에 리뷰할 책 소개.

유동민의 삶은 2008년 금융위기 전에도 있었지.

미국 대공황기에 말이지.

그때의 이야기 중 하나를  말할게.

SEE YOU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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