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책(분노의 포도) 반납하러 갔다가, 다른 책 세 권을 대출했다.
얼마 전 놀러 간 친구네 집.
친구가 요가를 시작했다고 했다.
나의 요가역사를 아는 그 친구가 갑자기 방에 들어가더니, 벽돌만한 책을 들고 나온다.
요가 이론서였다.
아이쿠! 논문을 쓰려는 거야? 요가는 몸으로 하는 거야!
그래도 자기는 그 책을 다 읽어보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물었다, 이런 책 안 읽어봤냐고.
답은 이미 나왔다.
몸으로 하는 거야, 몸으로 배우고, 몸으로 익히고.
하지만, 사실 나도 요가전문가가 사진으로 아사나를 실어놓은 책을 두세 권을 사서 보기는 했었다.
그래도, 이런 벽돌 이론서는??
8월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일주일에 두 번이 조금 아쉽다 생각하던 차에
12월 중순부터 토요일 오전클래스가 시작되었다.
애교와 웃음이 풍부한 강사님이, 회원들이 힘들어할 때쯤에 꼭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좋아요? 토요일에! 너무 뿌듯하다, 그쵸?"
지난주 가족들과 식사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다.
'나, 이렇게 하다가 시니어 필라테스 강사를 할지도 모르잖아."
띄어쓰기를 좀 바꿔보겠다.
시니어필라테스 강사: 시니어들을 위한 필라테스를 지도하는 강사
시니어 필라테스강사 : 필라테스강사인데 당사자가 시니어인 경우
나의 경우 두가지 가능성 모두 열려있다.
시작할 때 10년을 두고 생각했다. 필라테스를, 그리고 브런치스토리도
존버(이 용어를 모르실지도 모르겠다, 십대 은어인데, 욕설이 포함된 것이지만
이만큼 느낌이 팍. 오는 대체표현이 없다!)가 목표다.
그러고 보니, 일도 그랬구나. 아, 육아도. 교회공동체 생활도.
그러보면 이제껏 살아온 게 다 그렇다.
시간의 누적이 만드는 힘은 생각보다 무척 강하다.
나는 그 힘을 믿고, 찬양한다.
잘 해와서 잘된 일도, 그렇지 못해서 못한 일도 부지기 수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 선택하고, 이것이 좋다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의 복리를 더해 결과를 준다는 걸 많이 경험했다.
그러니, 오늘의 조회수, 구독자수, 라이킷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머물러 점선면의 이름으로 글을 쓰는 행위가 중요하다는 거다.
한편 드는 생각, 나중에 혹시나
이런 부진작가?에 대해서 브런치스토리가 대대정인 정리 작업에 들어가서
혹시나 정리 대상자에 포함되면 어떡하나?
하지만, 수많은 휴면작가님들이 아직 남아계신 걸 보면,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필라테스 6개월 차.
다른 작가님들이 필라테스 입문부터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가는 걸 가끔 읽기도 했는데,
같은 경험인데도 많이 다르구나.
역시나 말빨, 글빨인데, 나는 좀 글렀네.
극N은 감각의 인지도 이렇게 둔해 빠쪘어. 열심히 근육을 쓰고서도 할 말이 없다.
아, 그래도 하나.
처음 필라테스 시작하고, 약간의 반감요인은 계속되는 강사님들의 구령이었다.
요가도 있기는 하지만, 조용히 자기 몸에 의식이 머문채 진행되는거라 아사나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다음은 혼자 진행이 가능하다.
필라테스는 강사님이 동작 시범 보여줘, 동작 가르쳐줘, 숫자세고 때로는 기합도 넣어주고.
일단 공간을 채우는 언어의 수가 많다보니, 이 모든 것이 소음으로 느껴졌다는 것이지.
그러다, 어느 순간, 배경음악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오직 내 몸의 근육과 강사님의 카운트소리만 남는 거다.
와. 그때의 몰입!
그러다 정신이 돌아오면? 다시 배경음악이 들린다.
그러니. 이 놀라운 시간을 나에게 선사하는 이 운동을 조금 더 들여다봐야겠다.
경험상, 운동은 운동을 부른다.
필라테스를 하지 않는 날은 그냥 저녁 일상을 살고 잠든다. 아무 문제가 없이 잘 잔다.
필라테스를 하고 온 날은 적어도 30분 이상은 이런저런 알고 있는 잡다한 스트레칭을 해야 몸이 진정을 한다. 센터에서의 운동도 운동이지만, 이 혼자만의 스트레칭 시간이 주는 만족감도 크다.
그리고. 기분 좋은 셀프 칭찬.
오. 운. 완. (오늘 운동 완료)
어제, 교회세미나에서 강사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이에요." 그러셨다.
나는 필라테스 책 세 권을 읽을 예정이니, 조금은 덜 무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하하.
'분노의 포도'에 이어 소개하려는 책도 어둡고 우울하다. (그래서 쓰다 말았다. 어쩌면 막 읽기를 끝내 다른 책을 먼저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른 주제로 즐겁게 글을 쓰니, 기분이 새롭다.
남편을 웃으면서 맞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오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