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Jan 31. 2024

조용히 하라는 말을 버린 교사

어떤 분이 교사가 되어서 '조용히 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했다고 쓴 걸 읽고 생각해 봅니다.


언제부터 나는 조용하라는 말을 버렸던가.


정확한 시점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꽤나 오래전이었던 거 같습니다.


교실 문을 열고 제가 안으로 들어섰을 때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저를 주시하면서 수업을 할 준비를 완벽히 하기 때문....? 일거라 생각하시면 크게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대단한 카리스마나, 무슨 강력한 주문으로 아이들을 최면상태로 걸어 놓는 신비한 능력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자리에 앉아라", "조용히 해라."라는 말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시작할 때)

교실 앞 중앙에 서서 가만히 기다립니다.

말없이 기다리나, 이것저것 시키는 잔소리를 하거나, 분위기가 정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무언의 메시지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시작할 준비를 했다. 나는 지금 너희들이 시작할 준비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를 집중된 자세와 표정으로 전달합니다.

학급 구성원에 따라서 이 시간이 거의 필요 없는 학급도 있고,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어쨌거나 저는 앞의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고 서 있습니다.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로 갑니다.

"무슨 불편한 거 있어?", "영어 수업시작했어. 괜찮아?" 등 뭐든 말 한마디 건네고 그쪽에서 괜찮다의 반응을 얻어내고 돌아옵니다.


자, 분위기가 안정되었네요.

"시작할까요?", "인사할게요." 등 의 말로 시작합니다.


가끔 교실에서 사건(예를 들면, 누군가 물을 엎질렀다던가)이 있어서 아이들이 무척 어수선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에 지장이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지긋이 바라보면서요.

교사가 뭐라고 말을 할수록 아이들은 교사의 말에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고, 말로 응답해야 하기 때문에 상황을 처리하는 일이 더디어집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난 뒤에 간단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알아서 잘 정리하고 처리한 걸 칭찬해 주면 더 좋고요.


(강의 수업 중)

학생들이 서로 잡담을 하는 것이 포착됩니다.

저는 바로 제가 말하던 것을 멈춥니다. 그리고 그곳을 응시합니다.


너무 재미있는 주제여서 대화 중인 아이들이 저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에 다음 두 가지 상황이 생깁니다.

첫째, 옆에 있는 아이들이 신호를 줍니다.

두 번째, 제가 직접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 곁으로 갑니다. 그리고 몸을 조금 숙여서 그 아이들의 대화를 경청합니다. 가끔 맞장구도 쳐주고요. 너무 중요한 내용이면 이야기를 마치라고, 시간이 필요하냐고 묻기도 합니다. 오래 걸릴 얘기면 수업 끝나고 진행해 줄 수 있냐고 부탁도 하고요.

그리고, 앞으로 돌아와서 수업을 이어가려면 어디까지 했는지 확인을 하면서,  나도 사람이라 이렇게 말을 하다가 맥락이 끊기면 버퍼링이 오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자주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이야기합니다.


(모둠의 대화에서 전체를 집중시킬 때)

수업에 모둠활동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넣으려고 합니다. 여러 장점들이 많은데  이 글에서는 생략할게요.


모둠별 과제를 주게 되면 모둠 안에서 대화가 진행됩니다. 과제를 다 마친 모둠은 주제가 구렁이 담 넘듯 다른 내용으로 넘어갑니다. 온갖 다양한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엿듣는 거라기보다는 정보 채집의 시간으로 사용합니다.


이렇게 모둠 과제를 줄 때는 협력하는 시간을 주고, 활동을 끝내기 전에 마감시간을 화면으로 제시해 줍니다. 남아있는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가 가장 효과가 좋습니다.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고요, 종료 시에 확실한 신호음이 나오니까요.


활동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시간을 제한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처음부터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저도 먼저 완료하는 모둠과 진행이 늦은 모둠을 돌아보면서 다른 활동을 하도록 하거나, 더 붙어 서서 더 많은 지원을 해주자 훨씬 편안하게 진행이 되더군요.


학급의 단위가 클 때는 모둠활동에서 전체주의 집중을 위해 타이머 종료신호음(이건 끝났다는 신호일 뿐이므로) 후에도  차임벨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하는 '조용히', '집중'이라는 말소리는 아이들의 말소리에 묻힐 뿐입니다.

말이 아닌 다른 청각자극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학생들에게 미리, 이 소리의 약속이 무엇인지 설명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소리가 나면, 제가 희망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는 압니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저는 제가 원하는 메시지를 저의 음성신호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전달합니다.


그리고 가장 강하게 나의 요청을 전달하는 방법은 "쌍방향 구호?"입니다.

학급이나, 학년 모임의 크기가 어떻든지 간에 동질집단의 구호를 선정하고 저와 주고받는 약속을 정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작년 2학년 3반 담임이었으니까,

저는 "2학년"을 외치면 아이들은 "3반"이라고 대답하는 약속이지요.


이 부름, 제가 직접 목소리를 쓰는 구호는 저로서는 가장 강한 호소입니다.

제가 상대하는 집단 전체에게 이제 "나(교사)"에게 집중하라는 메시지입니다.

"3반으로 대답합니다.

2학년!"

그러면 학생들 중 몇 명이 "3반!"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미처 저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다른 학생들에게 신호가 됩니다.


'조용히 해.'라는 말은 효과적인 말이 아닙니다.


첫째, 아이들은 자신들의 말하는 행동이 일단 부정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교사의 강제 명령이지요.

일단 감정적으로 반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고 말을 무 썰듯이 뚝 자를 수도 없는 거고요. 그래서 그 말에 '조용히 하는'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둘째, 이런 비효율의 언어 사용은 선생님 입장에서는 지치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그 말을 듣고 바로 조용히 해주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교사가 하는 말의 영향력이 계속적으로 줄어드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 선생님 입장에서는 하면 할 수도록 지치는 악순환만 만들어질 뿐입니다. 선생님의 에너지는 소중하니까요, 이 말을 하느라 너무 힘을 빼시면 안 됩니다.


셋째, 말하지 않고 선생님의 요구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대체 표현들이 있습니다.


이른바 넛지 nudge이지요. 팔꿈치로 툭 쳐주는 것으로 상황과 맥락에 맞는 목표행동이 나오도록 하는 의도적으로 고안된 넛지들을 사용하는 것으로 명령의 언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명령받았다가 아니라, 협력한다, 참여한다, 선생님의 요청에 반응한다라는 기분으로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학교에서. 후배교사들에게도 말하지 않는 개인적 방법입니다.

도움이나 조언을 요청하지도 않은 상대에게 '이럴 때 이렇게'하는 식의 말은 삼갑니다. 꼰대의 잔소리가 될까 봐서요.


더군다나 개인의 성정과 역량이 다른데 '내  방식이 최고'라는 선배님들의 조언이 되려 아직 미숙한 내 부족함을 지적질하는 것 같은 역반응을 수차례 경험해 봤기 때문에요.


자기만의 방식과 속도로 익히고 배우고 그러다가 절실하게 묻기. (아마 답을 듣고 싶은 선배를 찾았다면 그에게 묻겠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현실 학교였으면. 그냥 듣고 있었을 상황인데. 여기 브런치스토리는 내 앞에 후배가 없는 공간이라  끄적여봤습니다.


선생님과 학생모두 "조용히 해!"라는 말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면서요.





















매거진의 이전글 꿈이 없어도 너는 소중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