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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an 24. 2024

꿈이 없어도 너는 소중하다

진로탐색 중인 이들이여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진로희망사항이라는 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기록하도록 되어있지요.

학교에서는 이 내용을 가정통신문으로 보내고, 학생이 적어놓은 진로희망사항을 학부모님의 서명까지 받아서 회신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대부분, 부모님의 서명까지 아이들이 알아서 작성하고 제출합니다만, 교사입장에서는 꼭 확인을 하긴 합니다.


'부모님도 너의 진로희망에 동의하시는 거 맞지?'


학부모님들 중에는 학교생활기록부의 존재나, 진로희망이란 항목의 존재를 모르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끔은 자녀의 진로와 진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신 분들이 이 내용으로 학교 쪽에 어려운 요청을 하기도 합니다.

카더라 통신의 내용을 옮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 '진로희망확인서'라는 가정통신문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그 내막을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진로희망은 동일 학년도 내에는 변경이 가능하지만, 과년도의 내용을 정정할 수 없다.'


왜? 이런 고지내용이 굵은 글씨체로 나올까요?

대입에서 학생이 진학희망하는 과에 경쟁력이 있도록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용을 역으로 맞추고 싶어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음.을 (학교는 이런 사례가 얼마나 많으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그것이 시끄러운 파장으로 연결되는 경우에는 차우의 그런 잡음에 대한 방지대책을 세우게 되는 겁니다.) 말해 주는 것이죠.


해마다 학생들의 진로희망서를 받아, 그 내용을 입력했습니다. 뭐라도 그 자리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선생님, 저는 희망직업이 없어요. 뭘 하고 싶은지 몰라요. 아직 몰라요.' 하는데도 교사는 빈칸을 용납할 수 없기에, '뭐든 적도록' 했습니다. 좋아하는 거라도 써보도록요.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를 적어 내기는 했습니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병폐에 대한 보완책으로

'진로탐색 중임'이라는 어구를 적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며칠 전 교회 세미나를 오신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우리 가정은 친가나 외가 쪽으로 목사님들이 많이 계셨어요. 남자 어른들이 모이면 열에 아홉은 목사였습니다. 어린 저는 세상에 직업이 목사가 다라고 생각했어요.'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의 이런 얘기도 생각납니다.

'엄마 아빠가 전부 농협에 근무했어요. 저는 직장이 농협이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매체가 발달해서 이런저런 직업군의 사람들을 알게 된다고 해도, 현재 존재하는 그리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나 앞으로 생겨날 수많은 직업을 이제 십 대 초반인 아이들이 얼마나 헤아려 진로를 희망할 수 있을까 합니다.


마음 아픈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진로탐색 중이에요.'라는 자신의 처지를 당당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는 꿈에 대해서 강조합니까?

초등학교에서는 부모님을 모셔놓고 자신의 꿈을 발표하는 걸 공개수업 주제로도 한다지요?

세상에 태어나 채 십여년도 세상을 경험하지 않는 친구들이요.

물론, 그렇게 자신의 다부진 꿈을 발표하고, 친구들과 선생님, 부모님의 격려를 받는다는 것은 좋은 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특정 직업명으로  제한을 두고 꿈이라 명명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은 부정적인면도 있습니다.


꿈, 비전, 목표 이런 단어들을 품은  매서운 매질이 당해본 친구들은 , 자신이 추구하는 뚜렷한 꿈, 목표점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됩니다.

'꿈도 없는 아이'. '꿈이 없는 아이.'스스로 그렇게 자신에게 딱지를 붙여서, 주저하며 진로희망회신서를 냅니다.


십여 년 전에는 자기 객관화가 미숙하여, 그저 축구를 좋아하면 축구선수, 노래를 좋아하면 가수 이렇게도 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조차도 아닙니다. 아이들도 너무 많은 걸 알아서요.

그저 노래하는 걸  좋다고 가수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거죠.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의사가 되는 게 아니란 걸 아는 거죠.


진로희망회신서를 받고 나서 꼭 말합니다.

지금 너희들이 여기에 뭐라고 써야 될지 모른다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 잘 못하는 게 아니다.

지극히 정상이야. 너희들이 경험한 세상이, 너희들이 경험한 너희들이 잠재력이 이제 십여 년인데!

진로탐색 중인 것은 괜찮은 거야.

이건 정답이 없는 거고, 누구도 너희들을 평가할 수 없는 거야.

너희들이 사회로 나갈 때, 그때 어떤 직업이 있을지, 없을지 그것도 모르잖아.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보다 너희들 자신에 집중해도 돼. 너희들이 뭘 잘하는지, 뭘 즐거워하는지. 뭐에 보람을 느끼는지. 그것도 어려우면 그냥 생각 안 해도 돼. 그냥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십 대에 확신에 차서, 어떤 분야를 정확히 언급하는 것, 그런 학생들이 비범한 extraordinary 것이지요.


아이들이 학생인 지금과 사회로 진입하는 시기 사이 세상은 변할 겁니다.

누가 그랬다죠.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요.


그 미지의 시간을 향해 걸어가는 어린 영혼들에게

'꿈! 꿈! 꿈!'이라는 말, 아름다운 이 말이 잔인하게는 남용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꿈의 유무와 꿈의 종류로 평가당하는 일이 없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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