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딸은, 엄마 글을 읽는 게 쑥스럽다면서 여태껏 완독을 하지 않았네요.
아들보다 작은 아기로 태어나서, 남편은 많이 놀랬었나 봅니다. 장난 삼아 가끔 그때의 남편의 말을 인용합니다.
저의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출산소식을 전하며
"어머니, 애기가 너무 작아요!" 라고 했다죠.
이 작은 체구의 여인에게서 얼마만큼 큰 아기가 태어나길 바랐던 걸까요? 하하.
그 조그맣던 아기가 저보다 키를 훌쩍 넘겨 자랐고, 19번째 생일을 지나며 정식적인 성년이 되었습니다.
생일날 아침, 안방에 앉아 편지를 쓰고 자기 방에 있는 딸에게 전해주고 돌아왔습니다.
저의 반려악기 우쿨렐레 퐁이를 만지작 거리고 있기는 했지만, 웬일인지 저 건넌방에서 제 편지를 읽고 있을 딸의 마음에 대한 동감인지, 기대인지, 뭔지 모를 마음에 제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까지 남편과 제가 곁에서 성장을 바라보고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
잘 자라준 것에 대한 감사,
앞으로의 당부,
이제 나이 들어가면서 노쇠해지고, 세상살이에 조금씩 느려질 저를 이해해 주고 도와달라고 썼었거든요.
얼마 뒤, 슬그머니 문이 열렸습니다.
.
.
.
'엄마...'
눈물 콧물 흘리며 얼굴이 구겨진 딸이 문간에 잠시 더 있다가 들어왔습니다.
딸아이와 다를 바 없이, 저도 우는 얼굴로 일어나 딸을 안았습니다.
그렇게 서로 안고 함께 훌쩍였습니다.
어느 정신과 의사분이 20대의 과업은 '일과 사랑(관계)'이라 하신 게 가슴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돌아보니,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20대, 십여 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냈나 싶습니다. 그래서, 다시 청춘의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요'라고 답합니다.
사회로 나오기 전,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과연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어떤 효용과 가치와 실력이 있는가에 대한 반문, 질문, 회의.
사회초년생이 되면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오가는 영향력들,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세워나가기 위한 분투.
어리숙한 판단들과 치기 어린 시도들. 고집스러운 자기 확신이 가져온 경솔한 다짐들과 실패들.
그러던 어느 날,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비로소 알게 된 절대의 사랑.
그 힘으로 다시 일어나기 위해 애쓰는 내 곁을 지켜준 지금의 남편과 결혼으로 20대의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
완전한 평화와 행복만으로 가득 찬 20대의 청춘을 보내기는 이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마다의 사연대로 구르고, 깎이고, 치대어지면서 부모의 품을 떠나, 인격적인 재정적인 물리적인 독립을 만들어왔을 것입니다.
지금의 20대는 오히려 부모세대들이 지내온 것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말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부모 세대가 누리지 못했던 문화와 기술, 편리가 나날이 번창해가고 있지만, 어쩌다 이 청춘들이 살아나가야 사회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더 깊어지는 걸까요?
무엇을 해라, 무엇을 더 해라, 더, 더, 더...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염려, 그래서 하는 잔소리가 외려, 그렇지 않아도 자기 하나 지켜 세우고자 분투하고 있을 아이들에게 부모의 걱정이라는 짐까지 줄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어려운 세상살이, 사회생활에 대해 지레 주눅 들고 무기력해지게 지나친 사전교육을 할 필요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