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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Apr 17. 2023

젖은 마음을 말려요

4월 햇살아래 서서

2022. 4. 18.(월)

어제저녁, 어머니의 식량줄 콧줄이 빠졌다.  잠시 장갑을 벗겨둔 사이, 콧줄이 어머니 손가락가까이 내려가 있었고, 그 참에 줄을 빼버린 거다. 오빠가 기겁을 하면서 비통해하는데도 어머니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너무 지치셨을 거다. 병원에서도 콧줄 시도가 연이어 실패할 때, 어머니가 '지쳐, 지쳐.' 하셨는데, 자식들은 왜 이렇게 콧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가.


일단은, 굶길 수는 없다는 마음. 뭐가 됐든, 그게 비록 유동식이라 할지라도 끼니를 먹어야, 약을 드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그리고, 시골집이라 콧줄이 한 번 빠졌을 때,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기 어렵기에 빠른 대처가 안된다는 점.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당장에 해결해야 되는 문제를 떠안은 마음에 고심초사하게 된다.


간병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위루관(위장관에 바로 음식을 넣도록 하는 관)이나 비루관(코로 삽입해서 위장에 이르는 관)이 필요한 환자들이 식량을 공급받지 못해서 사망하는 경우, 보호자들이 '살인'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를 받는다. 어머니의 콧줄 삽입 시기에 위루관과 비루관, 콧줄에 대한 기사와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만난 실제 사례들이다. 보호자들이 적절한 영양공급을 하지 않는 것은, 사망 상황이 예견됨에도 그냥 방치한 것이므로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어머니가 콧줄을 거부해도, 다른 차선책을 찾아내던지, 우격다짐으로 콧줄을 다시 삽입하던지, 양분과 필요한 약물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여기서도 통하지 않는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전문가분이 있고, 제가 아는 바가 틀린 것이라면, 알려주시길 부탁합니다.)


황망한 오빠 곁에서, 알아봐 뒀던 제주시에 한 의원으로 전화를 해서 문의를 했다. 가정방문간호사님과는 5월 중순에 예약되어 있었지만, 응급한 상황이니 오늘 와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간호사님은 오후 한 시 20분쯤 집으로 왔다. 3월 대학병원의 인턴들보다 훨씬 능숙한 손놀림이었다.


콧줄은 잘못 삽입이 되면 입안에 감기면서 머물러 있게 되거나 제대로 위로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대학병원에서는 꼭 엑스레이 촬영으로 삽입성공여부를 확인을 했었다. 하지만 가정집이라 그런 절차는 없었어도, 노련한 경험 덕분인지, 1차 시도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하고 2차 시도를 했다.  시험적으로 물을 비루관으로 흘려보내고. 물이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간호사님, 오빠, 내게서 '아!' 하는 안도의 낮은 탄성이 나왔다.


어머니의 마음이 어떤지 알지 못하면서, 우리 남매는 어머니가 콧줄로 물과 끼니를 드시게 된 것에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양손을 장갑에 넣었다. 콧줄을 빼는 일이 없게, 그리고 콧줄을 머리 위쪽으로 고정시켜 놓았다. 콧줄이 아래쪽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지만, 그 일을 하며, 마음은 더없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이 시점에서 진정 원하시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집을 나와 마당을 건너 귤나무 밭어귀로 간다. 마당과 텃밭사이 시멘트를 거칠게 바른 돌담이 경계로 서있다.


집안은 아직도 냉기가 있지만, 마당 밖은 4월의 햇살로 눈부시고 포근하다.


햇볕에 따끈하게 데워진 돌담을 양팔로 안으면 시린 손가락뼈마디 사이까지 온기가 전해지고, 가슴과 배로 뜨끈한 기운이 들어온다.


그 사이 내 뒤통수와 어깨 위로 햇살이 내려앉으며 몸을 데워준다.


눈을 감은채 그렇게 돌담을 한참 안고 있으면 내 마음의 냉랭하고 못된 기운도 빠지는 것 같다.


햇빛 아래에서 젖은 마음이 말라 간다.


그러다가 텃밭 커다란 감나무 가지와 이파리들을 바라보면 난 무척 행복해진다.


연둣빛 잎은 반짝이는 생명력이다.


그렇게 감나무 담벼락 아래서 시간을 보내고 뽀송해진 마음으로 다시 어머니를 보러 간다.



내일이면 인천으로 돌아간다.


오늘은 날이 흐리다.


돌담 아래 앉아서 감나무를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난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어머니의 진짜 마음을 안다는 자신.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이제 아주 단순한 단어만 말할 수 있다. 어머니의 생각과 마음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짧은 말이 애달프다. 


어머니의 치료에 대한 결정이 어머니의 것이 아니었고, 앞으로는 어머니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4월의 쨍한 햇살이 더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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