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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Apr 18. 2023

솔비투르 암불란도

마음을 다해 걸었습니다

2022. 4. 20. (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 판타지 영화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 덕분에 '해리포터 시리즈' 소설을 읽었고, 영화를 봤다. 

말 그대로 아이들 덕분이다. 해피포터의 세계관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 중 하나, 영화의 절정에서 나오는 주문 '엑스펙토 팩트로눔'은 얼마나 짜릿한가. 수호신을 불러내어 극대화한 마법의 힘으로 디멘터(악의 사신)을 물리친다니!


기독교인이 이런 말을 쓰고 있는게 이상할 수도 있지만, 종교를 떠나서  작가의 창작력,  문학적 세계관이 가진 독특함과 장대함은 인정해 줘야지않겠나. 


인간에게 내재된 창조 본능도 하나님한테서 온거라고 믿는다. '그분 자신이 위대한 창조자이시기에. 그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들은 끊임없이 글을 짓고, 노래를 짓고, 집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건축물을 만들고, 조각을 하고.. 뭔가를 만들어 내며 희열을 느낀다!' 는게 내 생각이다. 


오늘의 제목도 해리포터 시리즈에나 나올법한 주문처럼 들리지만, 어디선가 주워듣고 오래기억하고 싶어 담아둔 표현이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라틴어: 걸으면 해결된다)


4월 19일 인천으로 돌아왔다. 벚꽃은 어느새 지고, 대신 공기에 따스한 기운이 더했졌다. 

고3인 딸아이를 학교에 차로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근처 공터를 걷는데, 날이 너무 좋았다. 

어머니의 말이 마음에 맴돌고 있었다.


'걷젠.'


표준어로 옮기자면, '걸을래, 걷겠다.'정도의 느낌이다.

어머니는 마비환자가 되었지만, 화장실에 가고 싶어질때는 나를 불러 화장실로 데려가라고 했다. 

그리고 자주 그 말을 했다.


'걷젠.'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발 한자국씩 내딛었다. 내가 무심히 디디던 이 한걸음이 어머니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바램이었던가. 


조금 용기를 내어 동네를 벗어나 인근 산으로 갔다. 

숲속으로 들어서니, 나무냄새, 흙냄새, 새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지나는 소리. 평화로운 장면이 평화로운 시간위로 겹쳐 흘렀다. 


어머니처럼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어르신과 딸인듯, 모녀지간처럼 보이는 둘이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울컥, 내가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이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걷젠.'


나는 오늘 주문을 외우는 마음으로 걸었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이 주문을 수백번 외워서 어머니가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면...


그럴수 없다는 걸 안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산과 나무가, 하늘이, 햇살이, 바람이 나를 맞는다. 

이 좋은 것들이 나에게 값없이 주어졌다.

창조주가 주신 선물이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걷는다는 것은 신비한 일이다.

아기의 첫 걸음마를 본 적이 있는가? 생애 첫 발걸음. 그 성취감. 그 희열. 아기의 표정이 말한다. 

아직 인간의 걸음을 완벽히 흉내내는 기계를 본 적이 없다. 

인간의 동작에는 신의 손길이 깃들여있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이 한 걸음을 감사한다. 이 호흡을 사랑하게 된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이 걸음이 나를 데려간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때로는 원치 않는 곳으로 갈 때도 있을 것이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시간을 걸어 생의 끝에 다다를 때가 올 것이다. 

이 한 걸음을 걷는 시간도 역시 선물로, 사명으로 받은 거였다. 

이 생(生)에 감사한다. 이 하루에 감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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