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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Mar 22. 2023

코로나 음압병동

생(生)과 사(死)는 예측불허

2022. 3. 15. (수)

3월 12일에 어머니가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 오빠말로는 체온이 조금 높다 싶었는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바로 코로나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자마자 음압병동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뇌경색환자이니, 간병인도 함께 음압병동에 격리되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체온은 이튿날 정상으로  돌아왔고 별다른 코로나 증상도 없었다. 하지만 7일 격리는 피해 갈 수 없는 조항이라  오빠도 꼼짝없이 어머니와 음압병실에 갇힌 꼴이  되었다.


틈틈이 오빠는 전화로 병실의 상황을 중개했다. 누가 새로 왔다, 누가 나갔다, 간호사들이 어떻게 했다, 의사들은 어떻다 하면서. 본인의 괴로움도 후렴구처럼 반복되었다. 어머니가 대소변처리할 때, 부끄러움에 맘 편하게 오빠에게 맡기지 않아서, 더 힘들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식사를 조금밖에 못하는 것도 속상하고, 의사회진도 원격으로 하는 거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르겠어서 속상하고. 자기도 코로나에 걸리면 어떡하냐고 걱정.


쓰고 보니, 오빠를 폄하하는 나쁜 여동생 같다. 인정해 줄 만한 남다른 면도 있다. 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 가정에서 본인이 요양보호를 하려고 요양보호사자격증까지 따 놓았다. 직업 없는 낭인이지만 본인 말에 따르자면 자격증은 스무 개가 넘는다. 지금은 농부라는 직업군에 속해있지만, 농사일에 애착이 없다. 그러니, 어머니를 간병인에게 맡기는 대신 자기가 간병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오늘 오빠의 전화 용건은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같은 음압병실을 쓰던 70대 여자 환자분이 갑자기 사망한 이야기.


오빠가 전하는 바, 코로나 증상도 심하지 않아서 건강상태도 좋고, 전날 저녁 식사도 잘했는데, 밤중에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어떤 신호가 전달이 되었는지 간호사들이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의사도 들어오고, 한바탕 어수선한 소동이 일어나서, 어머니까지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았다는 거다.


그 환자분은 음압병실을 떠났다. 오빠로서는 그 장면이 충격이었는지, 소식을 전하면서 감정이 격앙된 게 느껴졌다.


'건강하던 분이 갑작스럽게 떠났다'


그분은 코로나 환자라는 판정 때문에 코로나사망자가 되었을 것이다. 격리기간만 끝나면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을 당사자와 유족들에게 허망한 이별이다.


어머니에게 이 세상을 떠나는 시간은 언제 올까? 어머니의 죽음을 생각하는 딸이라고 나를 욕할 것인가? 그래도 좋다.


어머니는 70세 이후 노년이 인생의 황금기였다. 건강하게 살아왔다. 우울증을 이겨냈고, 시인이라는 직함을 얻었다. 글쓰기와 신앙으로 당신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았다. 도서관 책사랑모임으로 사람들과 연결되었고, 최고연장자의 타이틀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모임에 마음을 쏟았다.

잘 살아오셨으니, 어느 날 어느 시에 가시더라도, 담담히 받아들일 테니 아프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병으로 아픈 것보다, 병원이라는 시스템 때문에 아플까 봐 나는 걱정을 한다. 언젠가 있을 어머니 생의 끝. 거기까지 당도하는 길이 길지 않고 아프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병원을 벗어나서, 어머니가 평생을 살아왔던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만나러 오는 이들과 인사를 하고, 고요히, 편히 가시기를 바라는 게 나의 마음이다.


물론, 나의 예상과 다른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자식들이 한 번에 어머니 병상에 둘러서 만나는 것도 안 되는 시국이니, 병원의 삶이 간병하는 자식에게도 고되기가 곱절이다.


오빠는 이런 생각에 펄쩍 뛴다. 병원에서 치료를 해볼 때까지는 해봐야 한다고 한다. 나를 이상하다고 한다.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란다고 한다. 고쳐볼 생각도 안 한다고 한다. 개똥으로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좋은 거라고 한다. 자신은 신앙도 없어서 누이동생들이 말하는 천국을 믿지도 않으니, 죽으면 끝인데 죽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사는 게 좋은 거라고 한다.


졸지에 나쁜 딸이 된 나는 황당하다. 죽음에 이르기 전단계(이런 전제조차도 오빠는 싫어한다.)에 평생에 써온 의료비보다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 병원에서 점점 시들어가는 거라면, 그 시간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어머니의 인생 마지막 국면에서 병원치료를 거부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를 다 하지 못하는 파렴치한 짓이라는 건가?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오빠가 엄연한 주보호자이며, 주간병인이니 내가 먼 데서 뭐라 뭐라 하는 것도 미안해진다. 입을 다물어야 한다.


살고 죽는 게 사람의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기 몸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도 모르는 존재다. 혈관이 막히고. 암세포가 자라는 동안도.

그러기에 겸손하게 살도록 지어진 존재다.


쓰고 보니, 내가 먼저 오빠를 향한 날blade을 거둬들여야 하겠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어떻게 장담할 것인가.


티끌처럼 작아진 마음으로 기도한다.

사랑이 많으신 주 하나님께.

부족하고 어리석은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어머니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어머니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기를.

우리의 선택이 그래도 최선과 가까이 있기를.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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