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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Mar 23. 2023

이제 제 차례입니다

돌봄을 돌려드릴게요

2022. 3. 18. (토)

이틀 전 코로나 제한조치가 완화되었다. 오빠는 하루라도 빨리 간병릴레이의 바통을 넘겨주고 싶어 했다. 병원생활이 힘든 것도 이유였고, 밭에서 나날이 과숙되고 있는 적양배추를 처리해야 했다.


오전 제주대병원으로 전화를 해서 문의를 했다. 문의라기보다는 코로나제한 조치가 완화되었으니 간병인 조건을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성 전화이기도 했다. 3차 접종 후 14일 경과라는 예전 조건으로는 나는 22일이  되어야 간병인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전화 응대자는 새로운 조항을 만들어 공식화하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그날 오후 전화를 받았다. 간병인이 24시간 이내 실시한 신속항원 검사 음성판정 확인서를 지참하고 병원에 간병인 등록을 하면 된다고 했다.


 오늘, 어머니의 격리 해제일이다. 어머니가 일반병실로 옮기는 그 시간에 나는 동네 의원에서 코로나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음성판정서를 들고 비 오는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신속하게 움직였다. 음성판정서를 무슨 귀중문서처럼 (아니, 귀중문서가 맞다!) 고이 가방에 집어넣고, 제주도로 내려갈 집을 챙겼다. 일주일간 병원생활을 할 때 필요한 물건들을 방바닥에 줄지어 늘어놓고, 빠진 게 없나 살펴봤다. 내 살림 말고 어머니 머리 빗겨드릴 머리빗. 바디로션, 샴푸대용 타월, 티슈형 구강청결제도.


병원 출구에서 오빠와 짧은 만남. 어머니는 기분도 좋고 정신도 맑다고 했다. 수고하라는 오빠의 말에 경례로 답하고 병실로 향했다. 


오후 여섯 시 어머니를 만났다. 막내딸을 알아보셨다. 눈물이 났다. 담담하고 씩씩하게 말하려는 데도 눈이 자꾸 뜨거워졌다. 바로 어머니의 저녁식사시간이 되었고, 환자식을 드려야 했다.


어머니에게 나타난 증상은 오른쪽 편마비였지만 삼킴도 잘 안되었다. 내가 아기를 먹이듯이 숟가락에 음식을 떠 넣어드려도 잘 삼키지 못하고 입에 물고 있거나 정말 힘겹게 조금 목 아래로 넘겼다.


"어머니, 이거 조금만 더 먹어봅써."

"뭐 안내카마씨? 바나나 안내카?"

"아이코, 어머니, 잘 해신게. 이초록 잘 먹어사 빨리 나슬거 아니?"

"이번만 더 삼켜봅써. 꿀꺽허여. 꾸울꺽~"

어린아이에게 밥 먹이는 엄마처럼, 내가 어머니를 어르고 달래가면서 밥 한술 더 입에 넣어드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머니가 힘들게 음식을 받아먹으며 말씀하셨다.

" 아이고, 우습다."


그러다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울기 시작하신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얼굴도 일그러지고 있었다.


어머니 눈물을 닦아내다가 내 눈물을 닦아내다가 어머니. 나. 어머니. 나.. 이러면 안 된다. 그만. 그만.


이제, 어머니가 나의 아기가 되었다. 기저귀를 갈고, 음식과 약을 입에 넣어드리고, 몸을 움직여 체위를 변경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병원으로 가기 전 기저귀 가는 법, 머리 감기는 법, 옷 갈아입히는 법, 체위 변경하는 법 등등 간병인 공부를 했는데도, 직접 하자니 땀이 뻘뻘 났다.


내가 땀이 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내 간병기술로 해결되지 않는 어머니의 괴로움을 보는 것이었다.


심한 가래와 목통증.  어머니는 쓰러지시기  얼마 전부터 읍내 병원에서 진통제를 처방받아 약을 복용 중이었다.  책 읽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거북목이 되고. 통증이 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도 추정일 뿐, 지금 어머니의 통증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설명할 언어를 잃었다. 틀니가 없으면 조음이 제대로 안되어  얼마 안 되는 말소리도 불분명하게 흩어졌다. 마치 아기의 옹알이처럼. 내가 들을 수 있는 말만 들렸다.


통증이 어머니를 밤동안 못살게 굴었다. 몸을 일으켜 앉으면 조금 편해지는지 

'일리라(일으켜라)'

'눅지라(눕혀라)'  명령어가 반복되고 그때마다 나는

침대를 올렸다 내렸다 하고, 어머니를 일으켜 앉아 세웠다 눕혔다 했다.


가래  끓는 소리는  듣는 이를 못살게 굴었다. 5인실 공간은 소리가 공유될 수밖에 없다. 어머니 몸의 괴로움이 소리가 되어  병실에 번져나갔다.


호흡이 잘 되게 하려면 가래를 제거하는 석션 suction을 해야 하는데. 이게 어머니에게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렇게 첫 불면의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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